지금 내가 하는 일이다.
깜냥도 안 되는 글을 쓰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도, 거짓의 감옥에 갇혀버릴 수도 있는 위험.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의미 있게 살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내가 못하는 것, 스스로 바보라고 여기는 많은 허들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가져올 수 없다.
나는 나의 잠재성을 알고 있나?
모른다.
그러니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내 능력을 발견하려면 어려움 구덩이로 들어가야 한다.
발 빼지 마라.
영이 살아있는 한 영의 명대로 가야만 한다.
고집은 불순종이다.
고집부리지 말고 오늘 내게 떨어진 사명을 기쁘게 수행하라.
예술가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과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포즈를 취하는 사람, 낭만주의자(대개 낭만적 실패자), 자기도취에 빠진 사람, 또는 삼류 배우에 불과하다. 진정한 예술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직관에 사로잡힌다. 반 대편의 거부와 비판 또는 현실적, 재정적 실패의 가능성이 예상되더라도, 더 나아가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는 기꺼이 직관을 따른다. 마침내 예술가는 성공해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또는 한때 이해되었으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새롭고 더 좋은 것으로 대체한다).
나는 예술가인가?
창조물을 낳는다면 예술가다.
사실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도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직관을 따르는 나.
나의 직관을 믿는가?
과거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믿는다.
예술가는 미지의 것을 의식적이고 사회적이고 명료한 세계 쪽으로 더 가깝게 이동시킨다. 사람들은 그 예술품을 응시하고 드라마를 보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깨달음을 얻지만, 그 깨달음이 어떻게 오고 왜 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 예술품에서 위대한 가치,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가치를 발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인공물이 위대한 예술작품인 이유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조던 피터슨의 이 말이 더 밀착하며 와닿는다.
미지의 것을 명료한 세계 쪽으로 더 가깝게 이동시키는 예술가의 손에 축복을 내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가 많다.
어느 세월에 읽을지 모르는 책들이 내 주변에 있다. 그리고 다른 책들도 속속 도착할 예정이다.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게 떨어진 특명에는 독서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얼마나 즐거운 기쁨인가?
책들엔 우리가 알 수 없는 시간이 쌓여있고 그 시간이 내게 도착하기까지는 몇 겹의 시간들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책 안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쌓아 올려 테트리스처럼 떨어뜨린다.
그래서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말해지지만 그걸 알아들을 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비로소 책표지가 열리고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요정이 모든 것을 들을 수 있는 귀를 탄생시킨다.
* 인용 : 질서 너머, 조던 피터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