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음' 쌓기
여름과 가을을 선 하나로 죽 나누어 버리듯 날씨가 갑자기 가을로 하강해 버렸다.
떨어진 기온 때문인지 몸도 적응하느라 내분이 일어난다. 목도, 눈도 뻑뻑하고 불편하다.
오늘따라 책상 앞에 앉은 나는 다리를 덜덜거리고 책 읽다가, 글 쓰다가, 자료 찾다가, 물 마시다가, 연필 깎다가 한다.
운동가야 하는데 '가기 싫다'는 마음이 들면 '일단 가는 것까지만 하자'라고 나를 달랜다.
가서는 반만이라도 하자, 하고
하고 나서는 장하다, 해준다.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게 쓴 책들은 몇 문장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읽다가 손가락이 힘을 잃어 그만둬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진민 작가님이 '공부를 많이 하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더 잘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설득당해서 다시 공부모드를 켠다.
셀프 쓰담쓰담하면서 맘을 고쳐 먹기를 여러 번 한다.
컨디션 엉망이어도 책상 앞에 앉는다.
안 읽혀도 읽는다.
실패해도 해야 할 건 한다.
지속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내게 특명된 가장 위대한 것을 이루려면 작고 괜찮은 일들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다.
이런 하찮음의 연속이 내 일상 전반의 모습이다.
이렇게 나는 나의 비루함과 게으름을 사소한 '하찮음'을 쌓는 루틴으로 대체하고 있다.
오늘은 '하찮다'라는 말에 꽂힌 날.
많지 않다.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대단하지 않다. 보잘것없거나 대수롭지 않다.
하찮고 작은 나를 일으켜 하찮고 작은 일을 계속 쌓는 일.
소소하고 일반적인 사람들 모두가 속해 있을 것 같은 이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 알 것 같다.
하찮은 루틴 몇 개가 쌓이면 밀도가 생기고 그 밀도는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 새로운 영토 하나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좁은 내 세계가 내 언어 때문인 건 확실하다.
그래서 내 사고도 가다가 멈추는 때가 많다.
어휘의 빈곤함에 빠져 한숨이 나오지만 이때도 하찮음을 쌓는 일은 계속된다.
쓰고 읽고 읽고 쓴다.
나의 언어가 풍요롭고 싶다. 가을들판의 노랗게 익은 벼처럼 그득하니 바람 불 때마다 넘실넘실 문장의 물결이 춤춘다면 얼마나 글이 풍성해질까?
하찮음의 씨앗들이 알알이 엮여서 내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고 밝히는 별빛이 될 것이니 오늘 하루의 하찮음을 하찮지 않게 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