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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이다

- 프롤로그

by 캐리소

제목을 이렇게 적어놓고 당황했다.

내가 어떻게 사랑일까?

나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언젠가부터 가슴이 답답했다.

뭔가 걸려있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내 안에 있었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가 쌓여서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렇다고 내가 형이상학의 그물에 걸릴 정도로 높은 수준을 가졌다거나 평소 닦아놓은 학문이나 지식이 깊고 출중한 것도 아니다.


지담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듣기만 했다.

한마디도 할 수 없이 두 손 놓고 말이다.

그런데도 내 안에서는 리듬을 탄 대화로 들리는 것이었다. 꿈틀거리는 것들의.

난 한마디도 안 했는데 가슴속에 뭉쳐져 있던 게 저 혼자 슬슬 움직이더니 턱 풀어지지 뭔가.

그 있잖은가.

코도 빠뜨리고 얼기설기 떠놓은 뜨개질거리가 저절로 살살 풀어져 다시 짱짱하게 완성되려고 하는 마술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내 속에 생명의 씨앗을 감추고 있다가 뭔가의 건드림, 또는 촉발로 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나 보다.


한 마리의 연약한 나비가 봄하늘에 날아오르기까지 겪었을 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 겨우내 잠자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해 왔던 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

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기고....,

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는, 그것이 비록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다가옵니다. 주 1)


아아,

이제야말로 나는 번데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이 보이지 않게 움직여서


생명 쪽으로

성장 쪽으로

승리 쪽으로

자꾸 꾸물거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사랑이 전해지는 경로이지 사랑의 근원이 아니다. 영적 진전은 은총의 결과며 개인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주 2)


어떤 은총이 내게 닿았는가.

나는 의식의 힘이 어제와 같기를 원하지 않는다.

어제보다 조금은 더 크고 넓어지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좁은 나에게서 넓은 나로 건너와야 한다.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남을 사랑할 수도 없다.
이는 자기 훈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자녀에게 자기 훈육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주 3)

즉,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보다 많이 얻는다.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이다 주 3)


희생해야 한다.

희생이 없는 대가는 있을 수 없다.

몇 시간을 잡아먹는 TV드라마도,

즐거운 오락도,

쉬고 싶은 상태도,

게으르고 싶은 마음도,

핑계 대고 싶은 욕구도.


목요일에 그린 돈나무 화분. 이화정


아직 어딘가 모나고 찌그러진 채 해결되지 않아서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가 있다.

단정하게 나를 정돈하고 키워서 불같은 에너지로 바꿔 새롭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싶다.

안주하려고 하는 나와의 싸움,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두리뭉실함 속에 숨으면 정체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밀려나는 것이다.


스캇 펙은 말한다.

내가 알기에 많은 사람들은 발전의 이상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의지력은 결핍돼 있다. 그들은 훈육을 거치지 않고 성자가 되는 지름길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뿐 아니라 바라기까지 한다. 주 4)


이것과 저것이 만나는 중용 안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기적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 기적을 만나기 위해 물밑에선 새로운 우주가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경험에서

삶에서

배워서 익히는 사랑으로라도 그쪽으로 가고 싶다.

언젠가는 완벽한 사랑 쪽으로 나를 이끌고 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의 시초는 '나'라는 자신이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내가 없으면 우주도 잠들 수밖에.

그런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수많은 '나'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문장을 시작하고 싶다.

쓰는 '나'는 '나'를 쓰지만 잠시라도 독자 안에 있는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우주에서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사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이 순간에 각자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안다. 모든 생명체는 완성을 향해 진화하고 있고, 우리의 삶은 우주와 의식을 지배하는 법칙과 맞아떨어지고 있다. 주 5)


새로운 것을 배우려면 오래전에 형성된 낡은 자신을 포기하고 낡아빠진 지식을 죽여야 한다.

주 6)


나는 지금까지의 좁디좁은 방구석에서 큰 우주로의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주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돌베개.

주 2)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놓아버림. 판미동.

3)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율리시즈.

주 4)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율리시즈.

주 5)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율리시즈.

주 6)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 펙. 율리시즈.


*대문사진 : 크레시다 캠벨/플란넬 꽃/2013년/목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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