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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가 없다

- 외로운 사람의 대화법

by 캐리소


그는 친구와 함께 할 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듯이 책장 위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몽테뉴는 스물다섯 살에 보르도 지방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스물여덟 살의 작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에를 소개받고 단번에 우정으로 피어난다.

이미 서로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던 둘은 이름만으로도 기꺼운 존재였다.

그는 보에티에와의 만남을 300년에 한 번 생길까 말까 한 사건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우정은 영혼들이 한데 어울리며 녹아들기 때문에 두 영혼을 결합한 솔기마저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 <수상록> I



몽테뉴는 그만이 자신의 진정한 초상을 들여다볼 특권을 누렸다고 회고한다.

그런 그에게 라 보에티에의 죽음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의 상심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수상록>에서 자신의 진정한 초상을 창조했던 것이다.

라 보에티에가 인정했던 자신을 그는 수상록을 저술하면서 이루어갔다.



그의 책은 특별히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말 걸기였다
그는 서점을 찾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자아를 표현하는 행위의 역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역설에 감사해야 한다. 저자들이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까닭에 씌어진 책들의 수를 감안하면 서점이야말로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목적지가 아닐까?**


영혼의 짝을 잃은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의 이야기를 책에다 옮겨놓는다.

그의 상심의 밀도와 나란히 할 나의 상심을 생각한다.

엄마를 보내고 나는 내 근간을 잃어버린 듯 공허했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빼앗긴 상실감에 매 순간 발이 땅에 디뎌지지 않았고 진정으로 살지 못했다.


나와 엄마는 결이 다른 모녀 였지만, 서로를 의지한채 이 불친절한 세상을 잘 버티고 살았다. 살아계실때 엄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어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생을 자신의 내밀한 소망을 펼치지 못하고 가신 엄마의 이야기는 내게 깊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때 엄마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딸들)이 나의 유일한 우정이었다.


어떤 개인에게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나는 대중에게 말한다. 그리고 나의 가장 은밀한 사고들을 꿰뚫고 있는 서점의 진열대를 나의 가장 충직한 친구라고 부르고 싶다.
- 수상록 III


나는 친구가 없다.


초등, 중등은 혼자 그림자처럼 지냈고, 그래서 고딩친구 네 명, 다른 고딩 친구 세 명이 전부다.

그러나 그들과는 나를 나눌 수가 없다.

우리는 고딩때의 아주 적은 나의 일부만을 연결해서 친구로 지내왔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당장 내일부터 그들과 끊어진대도 아무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의 부피를 가지고 있다.


나의 내밀한 정신, 생각, 사상은 그들에게 가닿지 못한다. 우린 생의 일부만 나누었고, 그것도 아주 기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의 진정한 초상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몽테뉴가 라 보에티에를 잃고 평생토록 비탄에 빠졌다는 사실이 그의 저술과 출간에 더 박차를 가할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몽테뉴처럼 진정한 초상을 창조하고 싶다.

모든 사람을 향한 말 걸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비록 어눌하고 떠듬거릴지라도 문장 위에선 한걸음이 시작이다.

말을 걸 사람들을 찾지 못한 나에게 자아의 내밀한 언어를 펼쳐놓을 문장이 있다는 건 무엇보다 반갑다.


때론 짧은 독백도 독백을 풀어놓은 대상에게 작은 점이나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외로운 사람의 대화는 일방적일 수가 없다.

그가 풀어놓은 수많은 독백의 옆에 나란히 놓인 괄호 안에는 언제나 수많은 저자의 코멘트가 달리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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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단순한 읽을거리로 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지적세계의 창문'(움베르토 에코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대담집<책의 우주>) 이라고 한 에코의 말이 큰 힘이 된다.

창문 너머로 달려나갈 일이 내게 있다.


그 말에 덧붙이자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 작업이 내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가치있는 목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이므로.

진정한 초상을 창조할 시작은 한문장으로부터이니까.



*,**,*** 알랭 드 보통. 철학의 위안. 청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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