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궁리하여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생각하고 궁리하면 알게 되는 것이 맞는가, 했을 때 머릿속에 의문부호가 뜬다.
한눈에 보이는 바구니가 있다고 하자.
그 바구니 안에는 물건이 몇 개 있다. 바구니는 깨달음을 담고 싶지만 바구니 안의 물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궁리한다고 깨달음을 바구니에 넣을 수 있는가?
어쨌든, 화학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어떤 반응이 나오려면 무언가와 접촉해야만 한다.
하다못해 공기라도.
그게 내겐 책이다.
책에 빠져 사는 요즘, 이 화학반응이 보인다.
작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이 반응을 돕는 무리들이 있다.
'엄마의 유산' 팀이다.
소심한 나는 혼자서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못한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대단한 일을 간이 올챙이처럼 작은 사람이 무슨 수로?
그 일이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주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난 누구에게도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내 안에는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라면 말이 달라진다.
선한 동기를 가진 여러 사람이 모인다면.
선한 것이 없는 내게(그렇게 보인다)선한 동기, 선한 불쏘시개가 되어주는 손과 나뭇가지들,
산소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준비를 위한 깨달음의 문을 발견했다면, 그 앞에 서있다면, 문을 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내 생각이 나를 막는 걸림돌이라면, 생각을 치우면 그만이다.
깨달음이 있는 것 자체가 삶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산 것은 정말 산 것인가?
살았다고도, 아니면 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도 여행의 일부분이므로 그렇게 말하면 산 것일 테다.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산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신영복 선생의 20여 년의 감옥생활.
그는 그것을 스스로 대학이었다 이름하며 그때까지의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의 확장을 경험했다고 한다.
밀착된 만남,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밀착성을 얘기하며 자신의 사회학, 역사학 교실이 그곳이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서만 경험했던 것에서 벗어나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것들이 자신을 확장시킨 사회학이었다고!
그들에게 담겨있던 사회학과 역사학의 교실에서 다양함과 방대함을 만났다고.
이 말은 예전에 국문학개론에서 처음 듣고 이번에 두 번째로 듣는 말이다.
대학에서 들었던 것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비극의 아름다움은 정직함에 있다.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과 세상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성찰, 세계 인식과 직결된다.
아름다움은 '앎'이다.
아름다움의 반대는 '모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의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주 1)
거기에 비추어보면 난 모름다움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욱 행복하다. 깨달음의 현관 앞에 서있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니까.
깨닫는다는 것은 얼마나 벅차오르는 일인지!
비록 조금 있다가 나 자신의 깊이가 발에 닿을 만큼 얕다, 는 사실에 놀랄지언정
깨달음의 뚜껑을 발견하는 일은 자진모리장단에 추는 춤처럼 구성진 일이다.
섬세하고 명랑하고 차분하면서도 상쾌한 선물을 받게 된다.
비극이 아름다운 이유는 1인칭의 고독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비극미는 그 비극의 주인공의 직접적인 각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아름'에서 나온 말이다.
'아름'은 껴안는 행위다. 껴안지 않고 어떻게 그것에 대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나!
비극이 갖는 미적 구조는 껴안아 알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게 뭐냐?
모르던 걸 알게 되는 게 삶이다.
즉, 각성하는 게 삶이란 얘기다.
신영복 선생이 머물던 비극적 공간.
감옥에서 그는 치열하고 냉철한 인간에 대한 각성을 만났다.
지식인은 자신을 끝없이 추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해방이다.
이것이 비극이 가진 성격이다.
통절한 각성은 행복과 열락이 만연한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공부는 우리의 동공을 외부로 향하여 여는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향하여 심화하는 인간화가 아닐 수 없다고,
선생은 말한다.
내가 머물던 인식의 감옥에서 나를 구해줄 이는.
의식이다!
내 인식의 바구니 안에서 굴러 다니다 책의 문장을 만나서 깨지고 바스러져 화학반응을 일으킬 그 무언가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엄마의 애정이 듬뿍 담긴 미역국을 먹은 나는 그 미역국만큼의 따끈한 성숙과 영양 많은 깨달음을
매일 길어 올릴 것이다.
아자!!!!!!!
주 1),*, ** 담론. 신영복. 2015. 돌베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