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 먹게 될 줄 몰랐습니다.
전 입이 짧은 사람이거든요. 이 말을 하면 상대방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저를 훑어봅니다. 입이 짧다는 말이 무색하게 푸근해(?) 보인다는 뜻이겠죠?
미역국 이야기입니다.
우리 다섯 가족은 생일이 모두 겨울입니다. 저와 아들이 1월 같은 날 생일이고 남편은 저와 6일 차이가 납니다. 두 딸은 각각 1월, 2월이 생일이므로 무려 1월 생이 4명, 2월이 한 명이네요.
그런 이유로 미역국은 1월과 2월에 몰아 먹습니다. 그것도 물려서 나중에는 제 생일엔 미역국을 패스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3월부터 6월까지 미역국 구경을 못합니다.
곧이어 6월엔 큰손자 생일, 9월엔 작은 손자 생일, 12월엔 사위 생일이 있어서 다시 미역국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젠 그 루틴이 깨지게 되었어요.
큰딸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6월, 9월, 12월 미역국 루틴이 끊어졌습니다.
거리도 멀고 부산의 가족들 생일에 맞춰 방문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3월부터 12월까지 미역국을 만나지 못하는 구간이 생겨버렸습니다.
뭐 그까짓 미역국이야 먹고 싶을 때 끓여 먹으면 되지 하시겠지만, 정말 그렇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오랜만에 미역을 불렸답니다.
근데 미역이란 건 다 불리고 나야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재료라는 것을 잠시 망각했습니다.
편식쟁이 아들은 안 먹을 테고 저와 남편 둘이 먹을 양으로는 무지하게 불어버렸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양 그대로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정말 한 6인분이 되어버렸어요.
하루 먹고 놔두었지요.
참, 제가 입이 짧다는 말씀은 드렸지요?
한창때는 하루에 국이나 찌개를 연거푸 상에 올린 적이 없을 정도로 입도 짧고 손도 작아서 일 인분이나 이 인분의 식사를 만들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젠 식사 준비보다는 취미생활이나 멍 때리기나 독서 같은 것에 더 비중을 두는 생활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간소한 식사를 위해선 여러 끼를 만들어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지요.
혼자 식사하더라도 전 식탁에 이것저것 차려놓고 먹는 걸 좋아라 했는데 이젠 책을 펴놓고 음악을 들으며 먹으려니 괜히 그렇게 식탁을 차리는 게 번거롭습니다.
또다시 미역국을 먹다니 정말 싫군, 했지만 그냥 미역국에 후루룩하게 되었네요.
게다가 독일에 사시는 유정 작가님 브런치를 읽다 보니 (유정 작가님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미역국 사진이 있어서 다시 미역국 버튼이 눌러졌습니다.
지난여름에(이 글을 쓴 시점은 2023년이에요) 한국에 방문했던 유정 작가님을 만났던 추억을 떠올리며 또 미역국을 후루룩 먹었답니다.
아, 맛있다.
미역국 얘기를 하려니 눈물로 먹었던 미역국 생각이 나네요.
둘째 아이를 낳던 날이었어요. 첫째를 낳을 때는 열 시간 동안 진통을 해서 둘째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겠지 각오하고 있었는데 웬걸?
다섯 시간 만에 둘째를 만났습니다.
퇴근하고 병원으로 온 남편은 제 침대 발치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잠들었어요.
이른 저녁을 먹은 저는 둘째가 빠져나간 속이 얼마나 허했는지 배가 너무 고팠답니다.
얼른 자고 일어나 아침에 미역국을 먹어야지, 생각하며 잠을 청합니다.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십 분이 지나 있고, 다시 확인해 보니 이십 분이 지나 있습니다.
아... 전 배고픔과 시간의 굴레에 빠진 것입니다.
고민하다가 자는 남편을 깨워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하니까 뭐라는 줄 아세요?
그냥 참고 푹 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아침이 될 것이니 그때까지 눈을 붙여 보랍니다.
에휴.
지금 같으면 냅다 소리부터 지르겠지만 그때 전 아직은 순한 새댁이었어요.
남편 말 잘 듣는 착한 아내처럼 다시 눈을 붙여 봅니다.
자려고 누웠고 분명 많이 잤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맴 맴을 돌고 있습니다.
밤이 얼마나 굽이굽이 지루한지 제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었어요.
겨우 동이 트려고 할 새벽, 저는 친정으로 전화를 했지요. 병원과 친정이 그리 멀지 않았거든요.
부리나케 제 전화를 받은 엄마는 얼마나 배가 고팠겠냐면서 왜 미리 전화 안 했느냐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제가 전화를 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따뜻한 미역국과 몇 가지 반찬을 갖고 오셨습니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오르는 그것을 한술 뜨는데 울컥 눈물이 나옵니다.
너무 따뜻하고 달큼해서 이 세상이 저를 다 이해해 주는 듯한 맛이었습니다.
곁에 앉은 엄마가 볼까 봐 나오려는 눈물을 얼른 감추었습니다.
눈물과 국맛이 섞이니 묘하게 간이 맞더라고요.
그날 엄마의 미역국은 제 영혼을 따끈하게 데워주었어요.
목을 미끄러져 넘어가는 부드러운 미역은 아이 낳느라 고생했다, 제 맘을 위로하는 엄마의 진심이었고 실하게 씹히는 쇠고기는 그런 딸에게 힘을 주는 응원이고요.
밤새 광야처럼 허허로웠던 뱃속을 따끈하고 그득하게 채우는 건 국에 녹아진 애정과 사랑이었습니다.
역시 내 새끼를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는 건 엄마밖에 없더군요.
나중에 듣기로는 주무시다가 갑자기 받은 전화에 엄마는 당장 집에 미역이 없다는 걸 아시고 당황하셨대요.
가족처럼 지내는 옆집 친구분을 깨워 미역을 빌려서 국을 끓여 허둥지둥 병원으로 오셨던 겁니다.
이 얘기는 지금도 종종 남편의 무심함을 타박하는 에피소드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딸들은 이구동성으로 엄마한테 아빠가 잘못했네. 어서 사과하셔~! 합니다.
이처럼 미역국은 가장 흔한 음식이지만 제겐 고향 같은 음식입니다.
이젠 엄마가 안 계셔서 엄마 음식을 먹을 기회는 없지만 엄마 사랑을 듬뿍 머금은 저는 지금도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습니다.
미역국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유들유들하지만 속은 영양으로 꽉 찬 사람.
사람을 데워서 따끈하게 해주는 국 같은 사람이요.
들에 허다하게 핀 들풀처럼 소박하지만, 없으면 허전하고 그리운 사람이요.
모든 것이 없더라도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요.
스스로를 가여워하느라 한순간도 허비하지 않는 사람으로
그런 사람이 살다 간 자리는 좀 더 좋은 세계가 되는 그런 사람이요.
미역국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흘렀지만, 삼천포를 구경하고 다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오늘은 눈물의 미역국을 기억했다면 내일은 그 미역국으로 씩씩하게 나아간 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2023년 10월에 쓴 글을 다시 손 보아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