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대화를 이어갈 때 나는 잠시 이상한 차원을 만난다
대화중인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존재를 느낄 때가 있다
그는 이 자리에 함께 있다
숨소리가 바람결처럼 내 피부를 스친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한 줄 한 줄 그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
이야기들이 사색의 세계로 빠진 그의 머리카락 근처에 매달려 흔들리는 것
그런 것들을 지켜보며 영혼의 날이 서서히 창밖으로부터 개어 오는 것을 본다
아까까지의 어둠을 휘장처럼 걷어내고 내 앞으로 바짝 다가온 부연날의 해맑음을 온몸으로 맞아들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참된 나'가 내 눈앞에 있다 그가 나에게 손을 흔든다
그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은 온전함으로 내게 있다
그럴 땐 걸핏하면 눈물이 차올라 혼자여도 난감하다
문장을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누군가의 삶이 아주 조금 이해가 되어 공감의 옷자락이 펄럭일 때면
그가 느끼는 마음이 내 마음으로 스며들 때면
누군가가 존재만으로 향내를 뿜어 올릴 때면
마음의 우물은 차오르다가 이내 눈밖으로 넘친다.
이 놀라움을 한낱 갱년기로 치부해버리지 않으련다
그러면 얕은 물을 건너는 발목의 차가움밖에는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캐리소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단 한 시간도 같은 시간이 없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 나무의 두 잎사귀도 같아 본 적이 없다. 진정한 미술이란 자연과 같이 서로 달라야 하는 것이다.
- 존 컨스터블(구름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영국 풍경화가)
인간의 삶이 진정한 미술이 아닐까?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그들이 이고 있는 하늘도 시시각각 다르다.
미적표현 일체를 인생의 자리에 쫙 깔아놓고 매일 자신만의 삶을 색칠해 나가는 존재.
그래서 인간도 자연이며 자연처럼 서로 다르다.
자연을 만나면 인간은 오묘하고 신묘막측한 작품 앞에 망연자실하여 입을 헤 벌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그 신묘막측의 자연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그들 안에 커다란 우주가 숨 쉬고 있으며 단 한 시간도 같은 무늬를 갖고 있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매일'이라는 도화지에 지푸라기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