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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와 걷는 하루의 기쁨

by 캐리소

소로우는 그의 일기에서 '오늘은 한 해의 가장 완벽한 오후다*.'라고 했다. 그의 책을 읽고 있는 이곳 책상에서 나는 무거운 색의 구름이 가볍게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구름이 오늘 하루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다.


오늘은 오늘만큼 완벽할 것이다!


새들은 구름을 이고 지저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자연과 나란한 하루를 산다.

이처럼 완벽한 하루가 있을 수 있을까?

창문 바깥에는 벌레 한 마리가 방충망 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벌레를 보고 싶지 않아서 홈키퍼를 들고 설칠 때가 있었다. 칙 뿌려서 내 시야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무엇인가를 밟고, 죽이는 일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뭘 두려워하는 것일까?

두려움은 홈키퍼로 쫓아내야 하는 감정일까?


그저 내 인식 한편에 자리한 감정 때문에 어떤 생명은 사라진다.



우리가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을 비난하며 스스로 기쁨을 망쳐놓고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오후, 천상의 오후는 생겨나지 않는다. 자신의 가련한 처지나 잘못한 행동 따위를 생각한다면 나를 찾아온 이런 영예로운 나날에서 기쁨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젊음의 시절이 지나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한 지식이 나의 만족을 망쳐놓는 불순물이 되기 쉽다. 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온전히 끊을 수만 있다면, 나의 나날들이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 P.250



나를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에는 변명거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을 본다. 그건 일면 나 자신의 코앞에 증명을 들이대거나 납득시키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설득하고 설명해야 욕구도 마음도 한 발을 뗄 테니까.

또 한편으로는 자기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의 구덩이에서 가만히 발을 빼는 용기를 일으켜본다.

용기에 힘입어 나를 비난하는 마음도 조금씩 놓아버린다.


비난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절대적 영향이 있는 일이다. 작은 일상을 더 작게 옥죄며 심장이 뛰는 소리를 잊어버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여러 번 부끄러웠지만 더 여러 번 잊어버리기를 거듭했다.




- 어제 따스방 단톡방 질문은 이것이다.


비가 그치고 한층 가벼워진 여름바람이 부니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그간의 불안과 긴장을 말리며 분주히 움직였다. 비를 맞으며 쑥쑥 자란 논가의 풀을 벴고 무너진 논둑은 손으로 일일이 다져 올렸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유실된 것이 복구되고 불만과 한탄 속에서도 일상은 되돌아왔다.
여름을 통과하며 열매에게 자연은 때론 친교적 선의를 가지고 손을 내밀지만 때론 환경적 조건의 반응 외에는 어떤 기제도 없는, 생명과는 무관한 존재들처럼도 느껴졌다.

- 첫여름, 완주. (김금희)

Q. 자연이 당신에게 ‘친밀한 위로’처럼 느껴졌던 순간과, ‘무정한 타자’처럼 느껴졌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소로우의 글을 읽는 요즘, 거의 매일 친밀한 위로를 받아요.
오늘 아침 그는 '오늘은 한 해의 가장 완벽한 오후다'라는 문장으로 아침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 문장이 하늘에 시선을 두게 했고 무거운 구름이 가볍게 흘러가는 하늘의 표정도 읽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글 말미엔 '내면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밖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하고 말합니다.
자연이 '무정한 타자'의 느낌을 준다면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이 무정에 점령된 것이 아닐까요?



⁠꿈결에 쏙독새 소리가 들려옴직한 곳에서 잠들어보라!*



소로 씨에게 중얼거린다.

저도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소로 씨,

어쩌면 제게 들리는 생애의 마지막 소리라고 해도 꽤 행복할 것 같습니다.



*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빗 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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