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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박처럼

by 캐리소

햇살이 없는 날이지만 난 습관대로 양산을 펴고 길을 걷는다. 항상 양산을 들고 다니다 보니 양산이 없으면 모자를 쓰지 않은 야구선수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지갑을 빼놓고 외출한 것 같은 뭔가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심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 하루치의 운동을 마치고 스포츠센터 앞 횡단보도를 막 건넌 참이다.

무심코 앞을 보니 머리가 하얀 분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이사오기 전 집의 이웃 할머니다.

난 4년 전에 지금 사는 집과 같은 동네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집에 살았었다.


할머니는 손에 들고 있는 가방에서 뭔가를 찾으시는 듯했다. 비가 올지도 모르는 흐린 날씬데 손에는 우산도 없다.

속으로 내가 쓰고 있는 양산이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 동시에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자동반사 미소와 인사가 함께 나온다.


우산도 안 갖고 어디 가세요? 비올텐데...

잉, 나 병원에 가는디... 우산 요깄어. 가방에.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말씀하시는 게 선생님의 질문에 순하게 답해주는 학생의 모습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 그렇네요. 잘 다녀오세요.

그려,


작별인사를 하며 이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나를 쓰담한다.


잘했어. 캐리소야.

비록 내 양산을 드릴 일은 없었지만, 그런 마음을 먹은 를 칭찬한다.


별내용 없는 대화였지만, 할머니와 나는 가까운 이웃이었을 때도 잘 지냈다. 늘 눈을 맞추고 소소한 것들을 나누면서.




내가 나를 관찰하는 일은 때로 당혹스럽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망상을 떠올린다거나,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결정을 갑자기 훅 내려버린다거나 할 때면 '얘 또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대로 나는 나를 따라가는 편이다. 뭘 하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저 지켜본다.



사진을 찍고 보니 무지 커보인다. 사실 내 손바닥 두 개 정도를 합쳐놓은 아담한 사이즈의 수박이다.


까망 애플 수박 국내산,

전북 고창.

까만 껍질 속 빨간 속살을 가진 미니 사이즈 수박. 국산의 힘 농가에서 클로렐라 농법으로 건강하게 키웠습니다.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라고 적혀 있다.


과육은 일반수박보다 부드럽고 씨가 많지 않다. 칼로 썰어보니 칼날이 스무스하게 들어가고 껍질이 얇다.

일반 수박처럼 거대하고 묵직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소박한 껍질이 전부다. 껍질 부분에서만 칼을 쥔 손에 힘을 주면 나머지는 스무스하게 들어가서 자르기도 수월하다. 과육이 서걱이지 않고 밀도가 높은 부드러움이다.


반쪽을 다 썰어 갈무리한 뒤 나머지 반쪽을 썰다 보니 익음의 농도가 짙어졌다. 붉은색이 선명하지 않고 '잘 익음'의 정상을 찍고 서서히 하강하는 붉은색이다. 수분이 살짝 빠진 것 같고 당도도 조금은 줄어든 맛이다.



사진이 이상하다! 분명 껍질이 더 까맸는데 말이다.



수박 하나를 씻고, 만지고, 썰고, 바라보고 들여다보니 적당히, 알맞게 익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빠진다. 수박에게 부여한 '적당히, 알맞게 익은 정도'도 사람이 세운 기준이겠지.

수박은 사람에게 선택되기 위해 생겨났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수박도 누군가에게 선택되어서 씹고 삼켜지고 소멸되어야 자신이 가장 맛있을 때, 자신을 맛 보일 수 있다. 잠시동안이겠지만, 그에 따라 맛있다! 별로다! 그런대로 괜찮다! 하는 각양각색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지금 나는 잘 익었나? 아직 설익었나? 잘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수박도, 나도 각자에게 부여된 길을 가는 거겠지?

수박은 수박의 길.

나는 충만한 인간의 길*


그래서 나는 붉은 수박처럼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쫙 쪼개져야 내 속살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확인되는 날, 내 숙성도도 평가받을 수 있겠지?





* 지담 작가님이 읽어주신 책 속 한 구절, 짐작컨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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