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유독 입이 짧은 아이였다. 먹성 좋은 남동생들 사이에서 비교될 만도 한데 엄마는 가려 먹는 나를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밥상에서도 마른반찬만 깨작거리고 국이나 김치는 손도 안 댄 채 숟가락을 놓아도 야단치지 않으셨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나라면 회유에, 협박에, 애원에, 가스라이팅이라도 불사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 콩을 가려먹길래 억지로 먹게 했더니 두 녀석이 다람쥐처럼 콩만 입속에 모았다가 11층 베란다에서 밖으로 몰래 날렸었다고 고백했다. 역시 용의주도한 내 딸들답다.
내 딸들과는 다르게 난 보드라운 엄마를 둔 덕분에 식성이 좋은 두 남동생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식사를 편안하게 했다. 그래서 나도 그때는 내가 입이 짧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대차게 밥상을 헤집는 두 남동생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웬 돼지들인가 싶어 체머리를 흔든 기억이 난다. 지금 두 남동생들은 흡사 어깨들처럼 키도 훤칠하고 덩치도 크다.
난 성장하다가 성장판이 낮잠을 자는지 작달막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내가 어릴 때 입이 짧고 음식을 잘 먹지 않았다고 말하면 막내아들은 예의 그 입술에 비웃음을 달고 헐! 한다거나, 그럴 리가 없다는 투로 두툼한 내 배를 퐁신퐁신 주무른다. 마치 '입 짧은 햇님'이라는 유튜버가 결코 진실로 입이 짧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모두 안다는 투다. 그럴 때 나는 너도 나이 먹으면 자신이 이렇게 두둑하게 변하는 날이 올 거라고 소심하게 항변한다.
예전의 호리호리한 나는 대체 어딜 간 걸까?(어딜 가긴, 시간이랑 함께 보내버렸지)
그렇게 입이 짧고 입맛이 까탈스럽던 내가 유일하게 즐겨 먹었던 반찬은 총각김치라고 불리는 총각무 김치였다. 아삭하니 단단하고 하얀 무에 알맞게 버무려진 김치 양념은 그야말로 입 짧은 내겐 밥도둑이었다. 엄마는 전라도 여자다운 야무진 손맛으로 동네에서도 유명한 김치 솜씨를 발휘했다.
내 학교 친구들도 이웃들도 엄마의 김치를 맛보러 일부러 집에 들르기도 했었다. 적당히 익은 총각무 김치의 오도독 씹히는 식감은 늘 기운 없고 소심한 내가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에 날듯이 달려 나가서 재밌게 놀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밥때가 되어서 엄마가 부르면 냉큼 들어와 밥상에 놓인 총각김치 하나 들어 (그것도 꼭 손으로) 베어 물면 입안에 퍼지는 깊고 삼삼한 식감이 웅숭깊은 엄마 냄새를 느끼게 했다.
결혼을 하고 몇 번 직접 알타리를 담가봤지만, 언감생심 엄마가 담근 알타리 맛은 낼 수가 없었다.
이젠 엄마도 안 계시니 그 맛을 볼 수는 없지만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표 알타리가 너무 생각난다.
지금도 반찬 가게에 가면 유일하게 입맛을 사로잡는 건 역시 총각김치다. 가게마다 맛은 다르지만 그리움의 맛으로는 역시 최고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밥에 총각무 한 입 베어 물면 어딘가 깊고 뭉근한 포인트에서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더라도 곧장 한국의 맛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어 엄마가 떠오른다.
총각김치는 엄마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