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고독을 통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삼을 수 있다는 이익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을 상대로 삼지 않는다는 이익이다.*
내가 지적 수준이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고독의 이익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한 융화를 꿈꾸는 일은 말 그대로 꿈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중이다.
과거에 나의 관계망은 직장과 연관된 사람들을 포함해서 일 년에 두어 번 만나는 친구들이 다였다.
외롭지는 않았으나 그들과 같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처럼 고적한 건 마찬가지였다.
함께 있지만 물리적 시간에 한한 것이지 정신이나 영혼을 교류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고립무원의 경지를 찬탈하기에 이르렀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의 거의 전부가 사교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정신의 평온은 상당한 고독의 힘으로 존립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의견에 힘입어 요즘 나의 고립과 고독은 코로나 때의 비자발적인 것을 넘어서서 가슴 밑바닥부터 든든하면서도 기꺼운 자발성을 띤다는 것이다.
고립무원(孤立無援)
폭설이 내려 발이 묶인 것도 아니고, 도움을 청할 어떤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고독을 향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은 정신의 유익함 면에서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사실 홀로인 것이 그다지 생경하고 어색한 성향은 아니라서 혼자라는 것이나 어디에도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것에도 감정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혼자서도 잘 놀고 스스로 도움을 주는 다양한 경로를 탐색할 수 있다는 것도 한몫한다.
이건 나 혼자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니라 조금은 생의 원리를 맛본 자의 증거라고 해두자.
그저 난 홀로 있을 때 가장 나답게 지낼 수 있다.
고독(孤獨)
'홀로 고'에 '홀로 독',
얼굴을 대외용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가장 본질에 가까운 표정으로 지낼 수 있다는 건 고독의 달콤함이다.
무언가에 몰입한 자의 '찡그림'이라든가 집중의 '입내밂'이 그리 부끄럽지는 않다는 말이다.
내면 깊숙이 안온한 자유가 활기롭다.
그런데 굳이 난 왜 찬탈이란 표현을 쓴 것일까?
'홀로 있는 시간'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는 일부러 챙기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전리품이다.
사교모임 안의 소란과 고독 사이의 자리다툼, 정권탈취를 위해 나는 찬탈을 택할 때가 있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가족들이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 소리에 고요가 쫓겨나고 숏츠와 OTT에 고독의 시간은 멀리 달아난다.
아마 성현들이 현재의 사태를 바라본다면 자신들이 이 시대를 통과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하고 여길 것이다.
고독은 고독하지 않을 때 더 빛을 발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 찬탈을 택하는 것이다.
빼앗는 행동은 빼앗겼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아주 작게라도 고독이 아쉬울 때는 다시 가져와야 할 명분이 된다.
지금 우리는 고독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빼앗기고 있는 중이므로.
들여다보기,
관찰하기,
생각하기,
해부해 보기,
자신과 자신 아닌 것을 연결해 보기,
고요의 자유를 만끽하기,
이런 것들은 고독 안에서 이루어져야 자신의 현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사수하고 찬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내면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크면 클수록 필요로 하는 외부의 것은 그만큼 적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 고립도 좋은 선택이다.
정신이 뛰어나면 그만큼 비사교적이다.
그렇다. 사교의 질이 사교의 양으로 메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화려한 사교계로 나가서 사는 것도 보람이 있는 일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리석은 자 백 명이 현자 한 명에 미치지 못한다. *
고독한 숲으로 들어간 소로우가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만의 자연과 자신만의 대양을 탐험하는 소로우의 고독은 깨달음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도록 한 셈이 되었다. 숲과 한 세계의 주인이 되기 위해 고독을 택한 결단은 자기 수양을 이루어 낼 만큼의 유익이었던 것이다.
고독은 홀로 있으나 홀로이지 않은 것이다
심심하지 않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는 예술활동.
창작의 시간은 고독이 길어 올린 맑은 샘물이다.
나는 고독 안에서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
깊은 고독의 숲으로 걸어가 확인해야겠다.
* 인생론, 쇼펜하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