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루한 날들에 과연 끝이란 게 있을까?
먹고, 자고,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일하고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또 먹고, 자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제야 돌아보니,
고맙게도 아이들은 자기 나이테에 맞게 라인을 넘어 진학을 하고 사회로 나가고 부모를 뛰어넘어 삶을 이뤄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일상이 직선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작은 토네이도의 입김이 일상을 이곳저곳으로 옮기고 움직이고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변화의 조짐은 비오는 날 밖에 내놓은 화분 안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어떤 그릇에든 담겨 있는데 그걸 알아보는 눈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언제나 내게 급작스럽게 여겨졌다.
이미 내정되어 있는 일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내 앞에서든 뒤에서든 일은 제 길을 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꿈 꿔야 할 때 꿈을 꾸지 못했고 돌이켜야 할 때 돌이키지 못했다.
어떤 문제제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무력감을 온몸에 장전하며 매일의 날들에 진심을 다하지 못했다.(바보)
모든 일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결말이 포함되어 있음을, 그러니까 오늘의 몫을 오늘 다 소진하고 잠들어야 함을 모른 채로 살았다.
똑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루한 일상과 평범한 날 속에 모든 씨앗이 들어있었다.
배움의 씨앗,
사유의 씨앗,
성장의 씨앗,
자립의 씨앗,
앎의 씨앗.
이 씨앗들의 성격은 수많은 하루하루를 물처럼 흡수해야 특별한 열매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근시안적인 내가 갑자기 거시적인 시선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 열리는 의식이 신비롭다.
그래서 쓰고 또 쓰는 일은 이러한 나의 성장기록이 된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안목과
안목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내게 오는 사태가 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날 데려간다.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한다.
그릇과 그릇의 이야기를 듣는다.
물이 쏟아지는 음률 속, 퍼뜩 떠오르는 문장을 붙들기 위해 고무장갑을 벗는다.
미천한 문장일지라도, 지금 내 인식을 지나가는 것이라 반갑다.
안 써지는 글이라도 좋다.
안 써진다는 건, 곧 써질 것을 전제하는 상태이므로 고맙다.
전제된 것을 완성하는 어느 시점을 기다리며 나는 쓴다.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엇이 내 속에 있으니, 금은보화 가득 찬 묵직한 상자를 앞에 둔 듯 기대롭다!
평범한 날은 길에 구르는 돌처럼 보인다는 맹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연금술을 위한 재료다.
귀금속을 제련하려면 '평범한 날'의 총량을 쌓아야 한다.
무료하다고 착각했던 평범한 일상은 나의 특별한 날을 준비하는 시간이며, 절대자가 나를 익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잘 지나온 자에게 내미는 선물이다.
선물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으나 내가 받을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다.
특별한 링 위에 오르는 날이 그렇게 내 눈앞에 선물처럼 온다.
그걸 알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번뜩 그날이 오면 갑자기 내게 왔다고 착각한다.
어느 시간, 어느 시점에 퍼즐이 딱 맞춰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알아차리는 순간의 번뜩임.
그때, 그 일은 이때를 위함이었다는 것을.
크로노스의 시간을 지나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일반적인 인간의 시간,
그 시간의 역사를 쌓으면 특정한 일이 발생하는 신의 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