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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계

by 캐리소


의식 수준의 큰 도약에는 항상 '나는 안다'는 환상의 내맡김이 선행한다. 사람이 변화하려는 자발성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종종 '바닥을 치는' 것, 즉 어떤 행동의 동선을 헛된 신념체계가 무너져 내리는 그 끝까지 따라가는 것이다. 닫힌 상자에는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파국이 갖는 긍정적인 면은 앎의 높은 수준을 향한 파열일 수 있다.


만일 삶을 스승으로 바라본다면, 삶은 그런 것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겸손해지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교훈을 성장과 발달에 이르는 통로로 바꿔내지 못한다면, 우리 자신이 다룬 그런 교훈은 낭비된다.


-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무엇에 도전한다는 것은 기존의 나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나를 바라보는 행위다.

제대로 보기 위해선 과거의 것을 부정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곧 파국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라서 그렇다.

오늘보다 정제되고 수준 높은 지점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할 일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

정금을 얻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 속에 넣었다 뺏다 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뜨겁기도 하고 자신을 찌르는 자각으로 생채기가 나기도 한다. 또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찌그러진 나를 직시하는 일은 굴러오는 바위를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공포스러운 것이다.




오십 대가 되고 달라진 것 중 하나는 관계망이다.

가볍게 아는 지인들 위주였던 얼기설기한 관계망에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내겐 특별한 관계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영혼을 나눴다고 생각했던 선배언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세상에 고립되었다.

'말과 대화로'가 아니라 '글과 눈빛'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던 사람과의 갑작스런 이별은 시야를 자르고 통로를 앗아갔다. 그렇지만 세상에선 세상 언어로 살아갈 수 있었다.


가족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냈고 사회생활도 그냥 했다.

건조한 모래사막이 바람의 대지를 밟고 지나가듯 나는 그냥 살았다.

언니가 떠났을 때 나는 윤기 나는 영혼도 언니와 함께 보냈는지도 모른다.

그녀와 헤어진 지 3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늦게나마 인문학을 만난 나는 닫힌 상자 속에 넣어두었던 영혼에게 말을 건다.

영혼의 창고에 햇살이 들어오니 그때에서야 비로소 내 얼굴을 식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색한 나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책을 읽으면서 늘 관념에 금이 갔지만 인식의 두께가 두꺼울 때는 금 가는 소리에도 놀랐다.

때론 그 소리가 음악소리처럼 기쁘게 들리기도 했지만 금이 갔다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므로

아픔이 예비되고 있다는 징조라 두렵기도 하다.




조금 달라진 시야로 돌아보니 내 주변에 포진한 가족들, 글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문우들이 보인다.

내 얼굴에 비친 그들의 표정과 마음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제까지처럼

내게 삶은 스승이다.

자상하지만은 않은 스승,

고통을 선물이라며 내미는 스승,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며 시련과 사건을 곳곳에 깔기도 하는 스승.


하지만 확장해 보면 삶은 곧 나이고 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새로워지려면 헌 것이 물러가야 한다.

아프게 하고 더 완성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 미련으로 남기도 한 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시작해야 한다.

겸손하게 삶이 주는 것을 받아 수행한다.

그것이 나를 바닥으로 데려갈지라도 피하지 말고.


나는 나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특별한 관계는 특별한 연결을 허락한다.

나를 연결하고 있는 사람들과 특별한 불꽃을 만들려면 내가 불쏘시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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