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잊히면 안 되는 이름
숨이 가쁘다. 왜 이러지. 물을 잔뜩 먹은 솜이 저 혼자서 내 호흡기로 어느새 들어와 나의 숨을 앗아가고 있는데, 식구들은 이걸 해결해 줄 생각은 없고 그저 울고만 있다.
‘엄마, 울지 말고 내 숨통 좀 열어줘. 정숙아, 내 입을 벌리고 저기 핀셋으로 얼른 이 솜 좀 쭉 빼내라니까.’
나는 외치고 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한다. 갑자기 방 안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더 모여든다. 동생들의 목소리이다. 어쩌지? 우리 애들이 없는 것 같아. 애들은 어디다 두고 자기들끼리만 와서 날 구경하고 있는 거야?
“애들은?”
정숙이 목소리다.
“막내가 데리러 갔어. 곧 올 거야.”
큰 남동생 목소리.
“흑흑 우리 큰 딸, 연임아! 애들은 어쩌고 이 에미를 앞서 네가 먼저 가려 하누?”
냉정하기만 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낯설다.
‘그러니까 이 솜 좀 빼줘!’
숨통을 조여오던 솜뭉치가 더 묵직해지더니 나의 코구멍까지 올라오려 하고 있다. 입을 열면 숨을 좀 쉴 수 있으려나.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고 혓바닥은 입천장에 접착제처럼 딱 붙어서 달싹도 할 수 없다. 애들 밥 먹여야 하는데. 분명히 점심때가 지났어. 온몸을 누가 몹시 때린 것마냥 아프다. 안 아픈 곳이 없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한숨 자고 나면 머리라도 개운해질까? 아파도 밥은 먹여야지. 컥! 솜이 내 코끝까지 막았어.
“언니,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해. 애들이 오고 있대. 엄마 만나러.”
아, 코 막혀!
“누나, 듣고 있지?”
솜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우리 아이들 이름이 뭐였더라? 정신 차려!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내 새끼들 이름! 필사적으로 삼남매의 이름을 떠올려 본다. 내 분신들. 금이, 강산이, 밀감이...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고 호흡이 편해졌다. 애초에 솜은 없었다. 코끝까지 훑어서 숨이 완전히 빠져나갔다고 생각되었지만 어느 때보다 살아있는 느낌이다. 나를 옥죄던 옷을 벗은 듯 자유롭다. 방 안에선 흐느낌의 덩어리들이 더 이상 내가 아닌 나를 붙들고 오열한다. 흰 가운 입은 사람이 방을 나간다.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이보다 완벽한 앎은 없다.
내 눈은 감고 있는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는데, 한 모금의 목소리도 내뱉을 수 없는데 나는 사방에 아니 십이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모두의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봤던 적도 없다.
병실 한가운데 침대에 미동 없이 누워있는 내 눈가에 눈물 자국이 보인다. 오오, 우리 아들 딸들이 도착했어. 얘들아, 엄마는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우리 큰딸, 우리 아들, 우리 막내딸... 우리 애기... 가슴이 너무 아프다, 너희들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 세상을 잃은 세 마음을 너무 잘 알겠어. 할 수만 있다면, 저 연약한 육신으로라도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서 힘을 다해 너희들을 안아주고 싶어.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어. 딱 한 번만 너희들을 만지고 싶어. 그리고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엄마, 엄마도 울지 마. 엄마는 강하잖아. 남서방도 없는데 우리 애들 잘 부탁해.
우리 아들 딸, 너희들의 이름을 절대 잊지 않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