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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혜력 Oct 17. 2024

잊히면 안 되는 이름 - 2화

우리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질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의 가는 길



나는 나 하나인데 이 모든 일을 동시에 감지한다. 응급실에 내 옆에 있었던 여자를 봤다. 잠깐씩 여린 의식만 돌아와도 두려움에 떨던 그 여자. 내가 내 육신을 벗어난 순간 그녀의 존재도 내 시야에 잡혔다. 그녀의 병실, 팔을 내저으며 누군가를 거부하는 그녀의 얼굴 자체가 극심한 공포였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주검으로 극구 다시 돌어가고 싶은 여자의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겁먹고 슬픈 눈으로 누군가에게 사정이라도 하는 듯 두 손을 싹싹 빌었다. 그녀의 눈에만 보이는 그 어떤 존재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기라도 한 걸까? 그녀는 격렬한 몸짓과 함께 금세 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도 그녀의 의지는 아니었다. 나는 그걸 나는 어떻게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 빛이다! 정말 밝고 따스한 빛이다. 너무 완벽한 밝기와 온도를 갖췄어. 몸뚱이도 없는데 이런 걸 감지한다는 게 신기하다. 이 빛 속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고통도 엄마에 대한 원망도 동생들을 포함한 세상의 매정함도 완전한 만족감으로 대체된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의 빈틈없는 두 손이 나를 손바닥 안에 두고 완전히 감쌌다. 물 샐 틈 없는데 어둡지 않다.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 이런 걸 안식이라고 하는 것일까?                    

 

따뜻하다.







인생의 파노라마



자유로워진 찰나에 파노라마와 같은 나의 52년 인생과 직면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잊고 싶었던, 그리고 사랑했던 순간까지도 모두 저항할 틈 없이 공개되었다. 이 파노라마의 관객은 누구인 거지? 나 자신뿐인 것인가? 너무 적나라하잖아. 편집이 필요한데 여지가 없다. 한 번에 내 일생이 동시상영되는 드넓은 공간. 이것을 하늘이라고 해야 하나. 그 공간 그 사건마다 내가 있었다. 


내가 내 삶을 복기했다. 그때의 그 사건과 감정이 고스란히 다시 내 것이 되었다. 다만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생전과 달랐다. 이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서 내가 알고 있는 바 시간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겠다. 

1989년 가을, 나는 그렇게 죽었다.






나에게는 삼 남매가 있다. 남편과 헤어진 뒤로, 아니 남편이 집을 나간 뒤로, 아니 엄마한테 그가 쫓겨나간 후로, 막내 밀감이가 핏덩이일 때부터 나는 홀로 아이 셋을 키웠다. 아니, 방치했다고 하는 게 옳다. 혼자서 돈도 벌어야 했고 집안 살림도 해야 했던 나는 늘 아팠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약골이어서 동생들에게 까지 항상 손을 타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것이 부모의 역할을 회피하기 위한 적절한 핑곗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랬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 아버지 슬하의 우리 육 남매는 부모를 닮아 손재주가 좋았다.  1970년대 중반, 밀감이를 낳고 나는 작은 양장점을 차렸다. 수선도 할 수 있고 새 옷도 맞춤으로 지을 수 있는 가게였다. 겨우 입에 풀칠은 하게 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밀감이를 선물로 주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상하게도 그가 손대는 일은 잘 풀리질 않았다. 그를 맨 처음 엄마 아버지에게 소개했을 때, 엄마는 그를 일컬어 남동생과 둘이 사는 천하의 고아라고 하며 싫어했다. 근본이 없다고 했다. 사람은 가는 순서만 다를 뿐이지 언젠가는 모두 고아가 될 수밖에 없건만 어찌 그런 말로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를 하는 걸까?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 이제 내가 이렇게 죽어서 나의 삼 남매는,  엄마의 첫째 딸이 낳은 외손주들은 엄마가 말한 그 근본 없는 아이들이 되었소. 심정이 어떻소? 내 마음은 영 아닌데... '


나는 죽어서도 엄마에게 이렇게 원망을 하고 있다. 


엄마는 그를 두고 끈기가 없고 적개심이 많은 인간이라 하며 싫어했다. 무능하고 재수에 옴 붙은 인간이라고 싫어했다. 꽃을 재배하려고 치면 우박이 내렸고 장사를 하려 하면 누군가로부터 사기를 당했다. 돈벌이를 못하니 사람취급을 못 받았다. 쫄딱 망해 처가의 문간방에 얹혀살기 시작하자 엄마의 핍박은 날로 심해져 갔다. 사람은 자신의 본질이 못났거나 잘났거나 지속적으로 못난 인간 취급을 받다 보면 자신도 정말 그러한가 하고 헷갈리는 법이다. 그는 나의 친정식구들에게 잉여인간이 되었다. 집안에서도 밖에 나가서도 늘 주눅이 들어있는 그의 어깨를 보면 내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갈 곳이 있어 문간방에 얹혀살고만 있지 않았더라면, 내 육신이 강건해서 아무일이나 닥치는대로 억척스럽게 해낼 수만 있다면, 이 문지방을 걷어차고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텐데!


순종적인 자신의 큰 딸이 자신이 극구 반대하는 남자를 만나 살림을 꾸린 것이 그렇게도 용서가 안 되는 엄마였다. 그래서 그 모든 이유를 다 끌어들여 그를 저주하고 있는 것일까? 남자라 하면 아버지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굳은 지론이다. 나도 아버지 좋아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이고 아버지는 유일하다. 아버지는 엄마의 남자고 내 남자는 엄마가 좀 모자라다고 여기든 아니든 또 다른 사람이다. 모자라기로 치면 엄마 딸도 뒤지지 않는다는 걸 엄마가 제발 인정하셔라. 


엄마는 일제강점기를 겪고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집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고고했다. 이전에 아버지가 지역유지로 지낼 때의 엄마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 엄마의 각박함은 시대에 치여 몰락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다. 가세가 그렇게 기울어진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논하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엄마였다. 


이렇게 사람을 사람이 되게도 하고 병신이 되게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이 물질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돈이라면, 엄마의 딸 내외를 향한 핍박은 녀석을 숭배하는 것과 다름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이 원리가 내 친정을 지배하고 있었다니. 늙은 부모에게 얹혀 살고 있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왜 이리 서럽지? 엄마, 건강도 돈도 너무 없어서 엄마에게 신세 많이 지고 가요.


하지만, 약간의 빚은 갚았다우. 엄마의 성격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아 가장 부족한 당신의 큰 딸이 엄마 아버지를 근 십년을 모셨지 않았수?


두 분의 반찬 투정도 옆에 있지도 않은 남서방을 힐난하는 숱한 말들도 살림 못한다고 나에게 끊임없이 쏟아냈던 엄마의 말을 이 모지리 큰 딸이 다 받아주지 않았소?  왜 그랬냐고? 안타깝고 불쌍해서 그랬수.


엄마, 이젠 그 어느 것도 죽음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온 나에게 더 이상 관여하지 못해. 나는 물질세계로부터도 자유로울 뿐 아니라 그것을 숭배하는 많은 탐심의 숭배행위로부터도 자유로워졌어. 나도 남서방도 엄마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그저 벌거벗은 존재일 뿐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






이런저런 생각을 두서없이 해 본다. 


그 모든 시대의 각고 끝에 지금까지도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어떤 비결을 간직한 사람들일까? 그들도 아버지처럼 독립자금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을까? 아버지가 현재 이전의 지위와 부를 여전히 거머쥐고 있다면, 엄마는 지금 나의 남편에게도 동정을 베풀고 힘써 돕는 예전의 일면을 발휘했으려나?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엄마는 내가 믿고 싶어 했던 허상의 인물이었을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활자로 짐작만 할 뿐 실상을 전혀 모르고 살았나보다. 살다가 또  살다가 슬쩍 어정쩡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됐나보다. 실상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 보여주는 허상만 쫓아 살다가 결국 마지막까지도 허상 속에서 유체를 이탈했나? 내 눈앞에 펼쳐진 나의 주검도 진짜 내 것이었나 하는 의심마저 솟구친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들을 알면 또 뭘 어쨌을까 싶기도 하다. 세상에서 한창 뒤떨어져 사는 나의 삶에 대한 억울함만 더해졌을까?  내 눈에 나보다 더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의 군상과 비교하여 그나마 내 생은 좀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았으려나? 아니면, 이 모든 인간의 일들이 이전에는 나였으나 죽음 앞에선 더 이상 내가 아닌, 변태과정 속에 존재하는 허물의 잔주름과 같은 것이라며 삶을 초월했을까? 


나는 죽어서도 생각이 참 많구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원망



먹을 밥이 없어 아이들이 쫄쫄 굶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안방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에게만 밥상을 차려낸다. 남편은 뭐라도 구해오겠다고 나가보지만, 나는 안다. 돈 쓸 때엔 그렇게 달라붙던 사람들도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면 슬슬 피하고 싶은 경계심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이 나가자 엄마는 작은 스텐 양푼에 밥만 몇 주걱 퍼서 우리 방에 들이밀었다. 남편이 금방 나간 터라 나는 밥 한 숟가락이라도 뜨고 가라고 그를 쫓아 나갔는데, 남편은 들어와서 그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들어가라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그는 우리에게서 떠났다. 뭐라도 구해 온다더니, 약속을 잊었나. 그날 나와 아이들은 맨 밥에 간장 한 종지와 많은 물로 배를 채웠다. 구박에 대한 자존심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야속하게도 남편이, 아빠가 그 자리에 없는데도 하루종일 굶은 우리의 입에는 그 몇 숟가락 안 되는 쌀밥이 정말 달았다. 그 생각에 미치자, 그렇게도 달게 먹은 밥이었지만 곧 목구멍으로부터 신물이 넘어왔다.


그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채로, 나는 막내 밀감이를 낳았다. 먼저 시집간 큰 동생 정숙이가 미역을 사서 보내왔다. 정숙은 자수성가한 남편과 아들 딸 놓고 잘 살고 있는 부러운 동생이었다. 아직 시집가기 전인 둘째 동생 순자가 미역국을 끓이고 엄마 몰래 쌀을 훔쳐 밥을 지었다. 나의 금희와 강산이는 엄마가 미역국과 밥을 먹다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을까 하여 눈치를 보며 나직 눈도 뜨지 못한 밀감이의 접힌 귀를 소중히 만지고 있었다. 순자는 조카들에게 밥과 미역국을 듬뿍 떠 주었다. 


남편이 떠난 후로 엄마의 홀대는 내가 없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더 두드러졌다. 내가 없는 시간에 애들을 마치 그를 대하듯 한다는 걸 알고 정말 속이 상했다. 


어거지로 독립이라는 걸 했다.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에 밖으로 더이상 일을 찾으러 다니지 못했다. 돈 벌어서 잘 사는 모습으로 갚아주리라고 결심을 하고 정숙에게 돈을 빌려 작은 양장점을 차린 것이다. 손님들에게 솜씨가 좋다는 인정은 받았다. 그러니 머지않아, 밀려드는 일을 감당하기에는 내 체력이 역부족임을 깨달았다. 재단까지 해놓고 약속한 기한을 지키지 못해 물리는 맞춤옷은 선수금을 돌려주어야만 했고 비싼 옷감값만 떠안게 만들었다. 어, 내 몸이 왜 이러지? 자꾸 까부라진다. 재봉틀 앞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갔다. 팔이 가늘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안 먹어서 살이 빠졌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데 병원은 갈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기분 나쁜 진단이 내려지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감당하고 있는 아이들 육성회비와 밥값을 뒤로하고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집에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고 정숙에게 빌린 돈도 갚아야 할 날짜가 빠듯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한술 뜨고 일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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