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11화

갈등

by 벙긋 웃는 문혜력

그 무렵, 떡볶이 가게 근처.
한 사내가 가게 간판을 힐끔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헝클어진 머리칼, 수상쩍은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었다.

마소야가 수인을 만나지 못하고 복잡한 가게를 빠져나오다 그 사내와 부딪쳤다.
“야, 어딜 보고 걷는 거야?”
“아저씨, 나 알아? 왜 반말이야?”

"아니, 계집애가 어른한테 싹수없이... 뭐라고?"

사내가 손을 들어 한 대 칠 기세였다.

"박기사!"

마소야가 소리치자 정장차림의 남자가 튀어나와 마소야를 사내로부터 막아섰다. 그리고 얼른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게 앞을 떠났다. 사내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혼잣말로 꿍얼거렸다.

"저런 차를 타고 이런 떡볶이 가게가 웬 말이야?"



혜윤은 말없이 가방을 낚아채더니, 수인의 옆을 스쳐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갔다. 골목가로 뻗어 들어가는 발걸음에는 분노와 서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수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녀가 혹여 넘어질까, 누군가 마주칠까 조심스레 뒤를 지켜주는 듯한 걸음이었다.

“따라오지 마…”
혜윤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문을 밀치듯 들어가 버렸다. 그 순간 수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어둠 속에 묻힌 혜윤의 뒷모습이 현관 안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하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숨을 내쉬었다.

돌아서려는 찰나, 맞은편 골목에 검은 세단이 멈추고 차창이 내려갔다. 마소야였다. 그는 일부러 수인을 만나러 떡볶이 가게까지 갔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가나 했다가 그를 보니 몹시 반가웠다. 골목 가로등 불빛에 비친 수인의 어깨가 축 처져 있는 걸 보고 마소야는 소리쳐 부르려다 멈칫했다.

낯익은 중년 사내가 불쑥 수인에게 다가왔다. 얼굴빛은 기묘하게 익숙하면서도 음습했고, 입가엔 억지로 누른 듯한 웃음이 번졌다. 수인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었다. 마소야는 박기사에게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켜 그들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차를 대게 했다. 마소야가 중얼거렸다.

"저 남자, 아까 떡볶이 가게 앞에서 얼쩡거리던 부랑자 아니야?"

"네, 아가씨. 그런 거 같은데요."

수인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내가 말을 걸었다.

“잘 지내냐, 아들?”
차 씨였다. 수인의 아버지.

마소야는 두 사람의 기류를 눈치채고, 재미있다는 듯이 차창 밖을 관망했다. 하지만 귀는 곤두서 있었다.

“가게가 잘 된다던데?” 차 씨가 낮게 웃었다. “가게가 많이 바빠 보여서 수영이한테 인사도 못하고 왔네? 형한테 전해라. 애비가 많이 어렵다고. 곤경에 처한 애비를 모른 척하는 자식은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돈 좀 줘야겠다고.”

수인은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속 썩여서 엄마까지 죽게 만든 사람이 뭘 그리 당당해요?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

차 씨의 얼굴에 순간 분노가 스쳤지만 곧 음흉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난 경고했다. 돈 안 주면 가게 한번 뒤집어엎을 수도 있지 않겠냐?”

마소야는 그 말에 흠칫 놀라 수인과 차 씨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차 씨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수인은 망치로 내려친 듯 가슴이 무거워졌다. 손끝이 떨렸지만 꾹 주먹을 쥐며 버텼다.


‘저 남자, 떡볶이 가게를 계속 훔쳐보던 이유가 있었구만?’

마소야는 아까 본 장면과 연결 지으며 피식 웃었다. 수인에게 약점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약점을 통해 접근할 기회를 잡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 머릿속에 돌아갔다.

그녀는 입가를 비죽 올리며 중얼거렸다.
“흥미롭네. 나의 귀하신 후배님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나…”



사내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자, 남겨진 공기는 묘하게 눅눅하고 무거웠다. 수인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며, 아까 들었던 말들을 씹어 삼키듯 곱씹고 있었다. 마소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모른 체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어, 수인아.”
마소야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방금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얼굴이 좀 안 좋아 보이네?”

수인은 고개를 돌려 짧게 웃음 비슷한 걸 지으려 했지만, 입가가 무겁게 굳어 있었다. 마소야는 더 캐묻지 않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공부는 잘 돼가? 너 요즘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몸 상하지 않게 해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미소야의 말이 허공에 맴돌았다. 수인은 자리를 뜨려고 몸을 틀었다. 그때 마소야가 차 안에서 아랑곳 않고 계속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아, 맞다. 지난번에 떡볶이 먹었거든? 와, 진짜 맛있더라. 형님 솜씨 대단하시던데? 국물 맛도 기가 막혔어.”

"감사합니다."

수인의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리길 바라는 듯, 마소야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계속 이야기를 던졌다.

“너 요즘 알바는 안 나가나 봐? 시험기간이라 형님이 봐주셨나?”

"네."

수인은 짧게 대답만 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런 수인의 태도에서 평소와 다른 무게를 감지한 마소야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혹시 드라이브라도 할래? 바람 쐬면 좀 낫잖아.”

수인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지금은 그냥… 혼자 있고 싶습니다.”

그의 정중하지만 단호한 거절에, 마소야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남겨두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 뭐, 알았어. 대신 기억해 둬. 누나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연락해. 늦은 밤이라도 상관없으니까.”

마소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부드러웠다. 그 말은 농담처럼 흘러나왔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수인은 답하지 않은 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소야를 태운 이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정 차도 수인을 지나쳐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드리워졌다. 마소야가 무심한 듯 흘린 말들이 사실은 빌미와 여지를 쌓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정작 수인은 알지 못한 채였다.


혜윤은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부엌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가 반겼다.
“어, 왔니? 여울이네 갔다 온다더니 김여사는 잘 계셔? 그런데 일찍 왔네. 밥 안 먹었으면 엄마가 챙겨줄게.”

그러나 혜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가방을 움켜쥐고 자기 방으로 성큼 들어가 버렸다. 방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에 엄마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승질머리 하고는... 오늘 애가 안색이 안 좋네? 무슨 일 있었나?”
혜윤 아빠는 TV채널을 넘기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꾸했다.
“지가 기분 풀리면 나오겠지. 내버려 둬요.”

방 안, 불빛 아래 혜윤은 가방을 침대 옆으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책상 앞 의자에 털썩 앉아 한동안 무겁게 숨만 몰아쉬었다. 눈앞에는 자꾸만 두 장면이 교차했다.

자신이 다가가려 하면 언제나 부드럽게 웃으며 멀리 빠져나가던 여울. 그리고 그와 정반대로, 오늘 너무도 단호하게 거리를 좁혀오던 수인.

여울의 눈빛은 늘 따스했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수인의 눈빛은 거칠게 다가와 숨을 막히게 했다.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이 더 괴로웠다.

“왜 지금, 왜 하필 지금…”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혜윤은 결국 책상 위에 두 팔을 베고 엎드렸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방 안에는 얕은 숨소리와 함께 짧은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여울아… 넌 왜…”





중학교 시절이었던가? 늦은 여름밤.
혜윤은 시험공부를 하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 여울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녀의 집 앞에 멈춰 섰다.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야, 혜윤. 너 또 공부만 하고 있지?”
그의 목소리는 장난스럽지만 어디까지나 다정했다.

“내일 시험인데, 당연히 공부해야지.”
“흠… 시험 점수는 내일 아침에 봐도 그대로일걸? 안 그래도 톡할라 했는데 잘 됐다. 자, 받아.”

여울이 제 것을 하나 뺀 다음, 봉지째 쥐어준 아이스크림이 시원했다. 혜윤은 웃음을 참으려다 결국 터져 나왔다.

“너 진짜… 아무렇지 않게 시험 망치려는 거지?나는 잘 보고 싶은데.
“아니, 잠깐은 웃어야 내일도 버티지. 우리 혜윤이가 웃으면 이 오빠는 다 된 거야.”

"야, 내가 생일이 더 빠르거든? 오빠는 무슨..."

혜윤은 여울의 말을 듣고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려 고맙다는 말 대신 핀잔을 주었다.

"난 간다."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한 후 여울이 멀어져 갔다. 창턱에 턱을 괴며 한참이나 그런 여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너의 가벼운 말 한마디에도 마음속이 따뜻해지고, 그 순간만큼은 엉켰던 마음이 풀리고 뭐라고 할 수 없는 안정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졌었는데... 그 기분, 겪어본 사람은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거야."

그때부터였나. 혜윤이 여울을 좋아하기 시작한 때가.

keyword
화, 목, 일 연재
이전 10화여울의 문 -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