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의 문 - 20화

무슨...

by 벙긋 웃는 문혜력

“혜윤아!”
어둠을 가르며 달려오는 목소리에 혜윤은 고개를 들었다. 가슴이 먼저 알아본 듯 뛰어올랐다.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수인이었다. 혜윤은 본능처럼 그에게 맞달려가다가, 바로 아래에서 손짓하는 무리들을 보았다.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작은 손들이 허공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 동현과 전청도 그 옆에서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안도와 피로가 뒤섞인 빛을 띠고 있었다.

수인은 아이들에게 달려가 가장 먼저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작은 손과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어?” 하고 묻는 목소리가 조급했다.

혜윤도 그 옆에 서서 숨을 고르며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장준까지 달려와 아이들 어깨를 짚었다. 모두 무사했다. 그제야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아니, 말도 없이 이 밤중에 어디를 갔다 온 것이여? 너희들 세상 무서운 줄 아직 모르제? 아무나 막 따라가고! 어린애들을 꼬셔간 그놈은 누구여? 앙?"

황 씨 아저씨가 걱정하는 말을 그렇게 하였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누군지는 말할 수 없어요."

"맞아요. 저희랑 친해요. 별구경 잠깐 하려던 것이었어요."

"어디로 사라졌는지 내일 서에 신고를 넣어야겠으."

다른 노인들도 한 마디 씩 했고 아이들의 조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못 잡을 거 같은데... 그 형은 천사거든요."

"맞아."

마을사람들은 아이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안심이 섞인 인사말을 몇 마디씩 남기고 각자의 처소로 향했다.

“고맙네, 학생들. 애들 지켜줘서.”

덧붙이는 목소리마다 눈시울이 붉어 있었다. 하나둘 흩어지는 발걸음 뒤로, 아이들의 작은 손이 몇 번이고 흔들렸다.


남은 건 동현, 전청, 수인, 혜윤, 그리고 지장준. 다섯 사람은 함께 리조트로 향했다.

“ 대체 어디 갔다 온 거야... 요? 수인이하고 혜윤이한테 하는 말이니 오해 마셔요.”
동현이 지장준에게 잠깐 굽실대더니, 두 눈을 번뜩이며 추궁하듯 혜윤과 수인에게 물었다. 전청도 거들었다.

“맞아, 우리 다 목청 터져라 찾고 있었는데. 뭐, 친목회라도 하고 온 거야?”

수인은 그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선 혜윤을 향해 물었다.
“… 괜찮아?”
그 한마디에 동현과 전청은 허탈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야, 지금 우리 무시하는 거냐?”

그때, 의외의 목소리가 쑥 들어왔다. 지장준이었다.
“이봐, 마을에 아이들 공부방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겠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주저하다가 어렵게 꺼낸 듯 낮았지만 다소 들떠있었다.

네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지장준은 어딘가 멋쩍은 듯 눈을 피하며 계속 말했다.
“마을 한가운데 오래된 소나무 하나 있던데… 그 옆이면 운치도 있고, 괜찮을 것 같아. 아이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 배우고 놀고 하는 시간을 좀 보호하는 차원에서. … 너희 생각은 어때?”

순간, 네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정말 지장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곧 화색 어린 반응이 터져 나왔다.
“네? 정말 좋지요!”

혜윤이 먼저 웃으며 대답했고, 동현과 전청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지장준은 아이처럼 눈을 빛내더니, 갑자기 내리막길을 향해 뛰어내려 갔다.
“먼저 간다! 난 오늘 천사를 만났어. 난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던 거야!”

그의 외침은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남은 네 사람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음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 귀엽네.”
“천사를 만났다니, 이 오밤중에 뭔 헛소리야?”

웃음이 잦아든 뒤, 네 사람만 남았다. 잠시 고요가 이어졌다. 혜윤이 입술을 깨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울이네 집에 다녀왔어. 지선배랑.”

“… 뭐?” 동현이 눈을 크게 떴다. 전청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렸다.

“물론 너희들의 예상대로 어떤 힘에 의해서였어. 그리고… 여울도 만났어.”

혜윤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그 검은 옷의 사내, 흰 옷을 입은 여울로 바뀌더라고. 지선배가 그를 천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잠깐.” 동현이 손을 내저었다.

“그럼 여울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거야? 그럼 우리가 본 그 장례식은 뭐고?”

혜윤은 눈을 감았다 떴다.

“나보고 같이 가겠냐고 물었어.”

그 말에 세 사람은 얼어붙었다. 수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 시선이 묘하게 무거웠다. 마침내 그가 낮게 물었다.
“…그래서?”

혜윤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못했어. 갑자기 두려웠거든.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여울이 아니었어. 내 망설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릴 여기다 옮겨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환영이라 하기엔 그는 너무 사실적이었는데도 말이야.”

수인은 눈을 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는 안도와 알 수 없는 각오가 섞여 있었다.
“그를 한 번은… 제대로 만나봐야 할 것 같다. 그가 누군지, 왜 우리 주변을 맴도는지. 정말 여울이라면 왜 그런 형태로 돌아다니는 건지.”

담담한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세 사람의 가슴을 진정시켰다. 불안으로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 중심을 찾는 듯했다.

그날 밤, 네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지만, 눈을 감은 누구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여울이라는 이름이 다시 그들의 현재로 끌려온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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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천사를 만났다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마소야는 수저를 탁 놓으며 지장준을 노려봤다. 아침 햇살이 리조트 식당 유리창 너머로 흘러들어왔지만, 그녀의 얼굴은 성가심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런데 지장준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뜩 들뜬 표정으로 포크를 쥔 손을 까딱거리다, 의기양양하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야, 너도 좀 착하게 살아봐. 사람 일 모르는 거거든. 나 같은 행운이 너한테도 올지 누가 알아?”

그의 어깨는 자랑스럽게 들썩였고, 눈빛에는 묘한 자신감이 번졌다. 늘 비딱하고 불만만 가득하던 그였는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마소야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행운? 웃기고 있네. 천사? 너 술 덜 깬 거 아냐?”

하지만 지장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판을 밀어내며 입가에 웃음을 걸었다. 어제까지였다면 기어코 아침 메뉴에 트집을 잡아 주방을 뒤엎고, 직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얌전히 식사를 마치고, 심지어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있잖아… 애들 공부방을 지어줄까 해.”
“뭐?” 마소야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시골 애들 있잖아. 좀 즐거워졌으면 좋겠어. 공부방은 냉난방 잘 되고, 좀 넓은 공간으로. 책걸상만 덩그러니 두는 게 아니라, 애들이 좋아할 만한 걸 같이 넣어주면 좋을 것 같아. 예를 들면 책이라든가, 작은 피아노 아니면 컴퓨터 한두 대라도.”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었고, 그 표정은 마치 아이 같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장준은 행복한 고민이라도 되는 듯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식당을 먼저 빠져나갔다. 그의 등 뒤에서 문이 살짝 흔들리며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남겨진 마소야는 입을 반쯤 벌린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장면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돌았나…?”
그녀는 중얼거리듯 낮게 내뱉었다.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당혹감이 묻어 있었다.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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