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겨울 속 여름

by 스투키


"야! 너 내가 옷 그따위로 입고 다니지 말라 그랬지!"


"아. 그럼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엄마가 빨리 갖다 주라는데 어떡해 그럼!"


"미친년, 자빠지는 소리 하고 있네. 그래서 집에서 화장은 처하고 있으셨어요? 니가 언제부터 집에서 미니스커트 쪼가리 입고 다녔다고"


"... 아. 니가 뭔데, 엄마도 암말 안 하는데, 이래라저래라 지랄인데! 그럼 니가 집에 와서 쳐 가져가시든가!"


"뭐! 이게 아주 아빠 외국 가고 안 계신다고 지멋대로야 확 그냥! 아!... 아... 파… 팔... 시발… "


"하... 자~알 한다 아주 그냥. 대학도 떨어지고 산에서도 굴러 떨어지고 병신 되더니 왜? 병원 침대에서도 떨어져 보시게?"


난 마치 길을 걷다 쇼윈도에 진열된 TV에서 방영하는 진기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호기심 가득한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둘 또한 내가 등 뒤에 다가가 멈추어 설 때까지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둘은 오직 서로가 초능력으로 구부러트려야만 하는 숟가락이라도 되는 듯 집중했고, 언성을 높이며 더 강한 침으로 서로를 쏘아대고 있었다.


난 고양이의 동체시력을 소유한 듯, 모든 상황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 남매 타이틀매치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입원실에 들어선 순간 천장의 주광색 형광등처럼 환하게 드러난 그녀의 하얗고 매끈한 다리로 인해, 나의 뇌세포들은 빠르게 해체되어 우주 어딘가로 흩어졌다.

그것은 발목이 접힌 브라운 앵클부츠를 빠져나와 길게 뻗어, 수줍은 듯 모직원단의 베이지색 미니스커트 속으로 사라졌다.

그 위로 밑단을 타원으로 늘어트린 아이보리색 니트가 힙 라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날개뼈까지 내려온 그녀의 검정색 머리칼과 그 사이사이로 비치는 하얀색 니트는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겨울이를 향해 과도한 모션과 함께 언성을 높일 때마다, 그것은 잔잔한 물결처럼 출렁이며, 지금 소니 유선 이어폰을 타고 내 귀에 흐르고 있는 드비쉬의 ‘달빛’을 연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야!!!"


그녀가 뒤를 돌아보다 나를 마주쳤다.

짧고 강한 비명에 몽롱하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우당탕탕탕...!!!


순식간이었다.

그녀가 놀라며 내디딘 뒷걸음에 힐이 꺾여 중심을 잃었다.

문제는 그 순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곤 창가의 커튼뿐이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커튼은 그녀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다.

금세 '쿵!' 소리와 ‘악!‘ 비명이, 판소리의 “얼쑤!”처럼 한 박자에 울려 퍼졌다.


뜯어진 하얀색 커튼을 면사포처럼 뒤집어쓰고 자빠져있는 그녀의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 마치 새벽어둠 속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하얗고 눈부신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어쩌면, 그녀의 검은 머리를 감싸고 있는 하얀 커튼과 의미 있는 매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으하하하하!"


겨울이가 미친 듯이 웃어대는 바람에, 난 머릿속을 들킨 듯 움찔했다.


"거봐. 내가 자빠지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 으하하하! 야. 아나. 이러다 맹장까지 터지겠네… 알았냐 이년아! 오빠 말 안 들으면 그렇게 나가자빠지는 거야. 하하하켁… 켁... 켁… 야 나 물 좀… "


난 급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로 그녀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마치 농구선수 서장훈의 강한 블로킹처럼 매서운 그녀의 손사래에 튕겨져 나갔다.


혼자서 끙끙대며 일어선 그녀의 몸엔 부활한 이집트 미라처럼 커튼이 휘감겨 있었다.

혼자서 억지로 풀어보려고 할수록 심하게 비틀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겨울이의 악마적인 웃음은 계속해서 이 다섯 평 남짓한 입원실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결국 그녀는 작은 냉장고 모서리에 무릎을 찧고, 협탁 위의 작은 화분을 깨뜨리는 두 번의 짧은 비명 섞인 퍼포먼스를 끝낸 뒤에야, 겨우 풀어헤친 커튼을 뚫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마치 과학 시간에 마찰전기 실험을 위해 비벼댄 책받침이 머리 위에 떠 있기라도 한 듯, 여기저기 하늘을 향해 뻗쳐 있었다.

뺨에 들러붙은 속눈썹은 봉숭아물처럼 입가에 번진 립스틱과 어우러져, 묘하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여자 속눈썹이 통째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녀는 마치 당장이라도 마이크를 붙잡고 신디로퍼의 'Girls Just Wanna Have Fun'을 부르며 춤을 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커튼을 마구 풀어헤칠 때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치켜뜨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두 손은 분명 주먹 모양이었다.


이제야 그녀의 시야에 걸리적거린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일으킨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는 촉감으로 느낀 것인지, 그녀는 ‘후!‘ 하고 짧고 강한 입바람을 상기된 뺨에 불어 보았다.

하지만 속눈썹은 생사를 건 암벽등반가처럼 필사적으로 그녀의 뺨을 놓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 둘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난 급작스레 들이닥친 그녀의 눈빛을 피할 수도, 또 눈을 깜박여 눈꺼풀로 가릴 수도 없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은 너무 강렬해서, 난 마치 그녀의 염력에라도 걸려든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 속에 비친 나는 그녀의 망막 속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귀에 흐르던 노래가 다음 곡 Anri의 ‘Remember Summer Days’로 바뀌었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점차 여름바다의 잔잔한 물보라처럼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 속에 갇혀 있던 내가 마침내 그 물보라를 타고 탈출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결국 그녀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신생아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앙~! 야! 너 이 새끼!… 진짜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그녀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다시 일어나 결의를 다진 도전자처럼, 겨울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겨울이 침대에 놓여있던 코트와 목도리를 낚아채고 후다닥 밖으로 달려 나가 버렸다.


자신을 때릴 줄로 알고 움찔 웅크렸던 겨울이는, 그녀가 옷을 들고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 안심한 듯, 그녀의 등을 향해 마이클 조던의 버저비터처럼 마지막 놀림을 쏘아 올렸다.


"노 이때끼 옴마얀테 다 이드꼬얌~ 일러 이년아 크크큭"


그녀는 아마도 쾅! 소리가 나도록 세차게 문을 닫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입원실의 최신형 미닫이문은 그녀의 화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수줍게 미끄러졌다.


마치. 잠깐 동안 이어진 슬랩스틱쇼를 본듯했지만, 난 전혀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가 없었다.

난 거의 본능적으로 액션씬이 끝난 세트장처럼 변해버린 병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녀의 다리와 형광등, 부츠, 속눈썹, 그녀의 망막과 치마 속, 태양, 달빛, 피아노와 립스틱 등이 뒤엉켜 엘리스의 거대한 토끼굴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야. 넌 언제 왔냐. 야. 야. 얌마!"


난 그날만 여러 번 같은 이유로 움찔했다.


"어! 어... 좀 전에"


"야. 너 내가 부탁한 거 그거 가져왔냐? 야. 너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빨게?"


"어! 어... 밖이 졸라 춥잖아. 추운 데 있다 들어오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말야 내 말이… 이렇게 추운 데 빤스만 처 입고 돌아다니니까 내 입에서 미친년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있냔 말이지. 안 그냐?… 아빠한테 골프채로 정신없이 처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저거."


난 갑자기 튀어나온 '빤스'라는 단어가 최면 트리거라도 된 듯 경직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꿈의 기억이 플래시처럼 번쩍하고 떠올랐다.

내가 오리털 풍선이 되어 떠오르다가 밤하늘 천장에 부딪혀 어리둥절 한 순간, 옆에서 나타난 눈부신 태양.


‘그건 어쩌면… 그녀의 치마 속이 아니었을까!‘


“야. 얌마! 뭐 해?”


겨울이가 내 엉덩이를 발바닥으로 세차게 미는 바람에 허리가 휘청였다.

난 자연스럽게 자세를 회복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가방을 급하게 열었다. 그리고 겨울이의 독서실 사물함에서 꺼내온 포르노 잡지를 침대 위에 내던졌다.

겨울이는 널브러진 잡지를 잽싸게 침대 밑으로 숨기려고 했지만, 깁스를 한 팔로는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야. 씨발 누가 보면 어쩔려고 막 던져. 얼른 치워."


"일 인실인데 누가 본다 그래?"


"쫌 있으면 간호사 온단 말야 병신아. 주사 맞을 시간이라."


난 겨울이가 빼내기 쉬운 위치의 침대 틈 사이에 잡지를 껴 넣으면서 물었다.


"넌 이 와중에도 딸딸이는 쳐야겠냐? 팔도 부러진 새끼가"


"씨발 그럼 누워서 불경 외울 일 있냐? 한 팔이라도 성한 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쳐야지 새꺄. 애가 긍정적 이질 못해... 이게 다 감사 의식이얌마… 그나저나 씨발 야. 여기 내 담당 간호사 진짜 조올~라 섹시해. 너두 이따 한번 봐봐. 완전 글래머에 무슨 씨발 일본 그 배우인 줄 알았다니까."


"미친 새끼. 그래서 그 잡지에다 그 간호사 사진이라도 붙여놓고 치게?"


"어? 어... 씨발 이 새끼 천잰데? 하여튼 시발 내 바지 내리고 엉덩이 만져줄 때... 손바닥으로 짝. 짝. 쳐주는데, 오... 아무래도 날 좋아하는 거 같애 그지? 시발 그렇잖아. 그렇다고 해줘"


"허... 미친 새끼. 간호사가 니 엉덩일 왜 만져 병신아. 누군 주사 안 맞아 봤냐?.. 병원이 사람 미치게 만든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네. 킥킥."


드르륵. 하고 다시 부드럽게 입원실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왔다 시발."


겨울이는 반사적으로 돌아누워 무심한 척 문을 등지고, 어느새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척하고 있었다. 분명 흥분해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주사 트레이를 밀며 다가오는 간호사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내가 상상하던 일본 AV 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히려 토요일 낮, AFKN에서 즐겨 보던 WWF 프로레슬링 쪽이 더 가까웠달까.


그녀는… 글래머는 맞지만… 뭐랄까… 아니, 그는 아무리 봐도 남자였다.


"너 이제 아주 미쳤구나? 언제부터야?"


"어?"


내 눈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뒤를 돌아본 겨울이는 이내 화들짝 놀라, 자신 앞에 서 있는 형을 빤히 쳐다봤다.


"자 주사 맞을 시간이야. 천천히 엎드려서 누워보세요."


작은 평수를 이리저리 튕기며 울리는 간호사형의 목소리는 마치 천상의 바리토너의 음성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어쩌면 겨울이가 저 형의 목소리와 큰 가슴에 반해 사랑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저기 형. 잠깐만요. 저기... 제 담당 간호사는 민 수지 누난데요... 혹시 잘못 오신 거 아니에요?"


난 점점 삐쳐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힘 있게 다물고 있었다.

질문을 받은 형은 자신의 근육질 팔에 비해 미니어처 같아 보이는 주사액을 사뿐히 집어 들고 주사기에 액을 뽑아내며, 겨울이의 얼굴을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둘의 짧은 눈빛 교환에서 난 아까 그녀와 눈이 마주쳤던 순간을 떠올렸다.


난 웃음을 참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어? 아까 여자친구가 부탁하고 갔는데 얘기 못 들었어?"


"네? 여자친구요? 무슨... "


"거 있잖아 왜. 짧은 치마 입고 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간호사랑 눈 마주치는 거 싫은지, 남자 간호사로 꼭 바꿔달라고 울며 신신당부하길래,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서 바꿔줬지. 왜? 여자친구가 아무 말 안 했어?"


난 결국 쓰러졌다.

웃겨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간호사 형의 동굴에서 울리는듯한 아름다운 저음으로 들으니 더 웃겼다.

아까 봤던 그녀의 쌩 쇼와, 며칠 전 겨울이가 산에서 오줌 싸다 굴러 떨어진 상황까지,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려 속에 쌓여있던 무시당한 웃음 세포까지 한 번에 다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햐… 이 미친년, 이거 잡히기만 해 봐 아주 그냥 작살을...!"


[정말이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스마트폰이 시대였다면, 팔다리에 깁스를 하고 분해 죽겠는 저 할 말 잃은 표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삶이 우울할 때마다 볼 수 있었을 텐데.]


"겨울아. 내가 가서 저 형한테 사진 한 장만 달라고 할까?"


"뭐? 씨발 형 사진은 뭐 하게?"


"왜긴. 그 잡지에 붙이고 딸 쳐야지 병신아. 우하하하!"


하도 웃어서 옆구리가 쑤셔왔다.


"씨발 꺼져 병신아! 가서 그 정신 나간 년이나 좀 잡아와 썅!… 아우… 이러니까 이름을 잘 지어야 돼. 이름이 여름이니까 아주 겨울에도 여름인 줄 알고 쳐 벗고 돌아다닐 생각만 하네. 아빠 오면 다 이를꺼야 저거…“


겨울이는 분이 풀리지 않은 채로 전화기를 집어 들며 어디엔가 급하게 전화를 걸어보려 했지만, 깁스를 한 팔로는 번호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정 여름, 그녀의 이름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불러볼 일은 없었다.

그래도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8월 15일은 그녀의 생일.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축하할 일도 없었다.

그래도 한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있는 날짜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늘 그녀의 모습은, 한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난 그날, 그녀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힐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난 시간을 보고, 기섭이와 만나 재수학원을 알아보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엄마? 어. 엄마. 썸머 이따가 집에 오면 나한테 꼭 전화하라 그래. 아주 죽을 줄 알라 그래... 아. 그럴 일이 좀 있어... 아 근데 엄마. 왜 걔만 삐삐 사주고 난 왜 안 사주는데?... 아니 그럼 대학 못 가면 인간도 아니야?... 졸업선물 뭐 사줄 건데 그럼... 아. 과외 선생 필요 없다니까 진짜... 미쳤어 내가 썸머한테 과외 받게?... 아. 거기서 또 아빠 얘기가 왜 나와..."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를 다급하게 불러 세운 겨울이는 수화기를 이불로 급하게 막고서 외쳤다.


"야. 여정아. 거기 뭐냐... 혹시 나가다 아까 그년 보면 졸라 패 그냥! 내가 책임질 테니까 알았지? 그럼 가라. 또 보자"


나는 입원실 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힘이 풀리는 다리로 내려앉는 몸을 지탱한 채, 고개를 숙이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 오늘도 제대로 인사조차 못했네… 오늘이 우리가 4년간 다섯 번째 마주친 거라는 걸 그녀도 알까?… 그보다 빤스를 먼저 제대로 보게 되다니 참… ‘


의식의 흐름이 빤스에 닿자, 또 심장이 쿵쿵대며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산에서 사라진 겨울이를 찾으며 겁에 질린 심장박동 수보다 빠른 느낌이었다.

죄책감인지 흥분감인지 모를 이런 반응들을 떨쳐 버리려고 급히 고개를 쳐들다가 그만 기대었던 문에 뒤통수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악! 씨발”


“뭐야! 누구야? 여정이냐? 아직 안 갔냐? 괴로우면 이 형한테 말해 문에다 대가리 처박지 말고 병신아 킥킥… “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천재적인 범죄자처럼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이내 머리를 박아서인지 엉뚱한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녀는 엄마한테 뭘 이른다는 것이었을까? ’


오늘 혼자 넘어져서 다친 걸 가지고, 오빠가 때렸다거나 혹은 오빠가 계단에서 밀어서 굴렀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의 모습만을 봤을 때 그녀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보였다.

게다가 좀 전에 통화를 들어봐선 어머니가 겨울이의 말을 믿어줄 리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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