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뒷산의 유령

by 스투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10년이 훌쩍 지난 후였다.

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따갑게 내리쬐던 한여름 햇살처럼, 짧지만 강렬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소나기처럼 퍼붓고 사라졌던 그 여름의 기억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은 그때 겨울이가 사라졌던 뒷산에서 시작되었다.


1994년 4월. 내가 가장 좋아하던 록그룹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했다.

‘음악은 죽었다’는 한 기사 제목은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록 그룹 ‘건즈 앤 로지즈’의 보컬 액슬 로즈가 말한 것처럼 ‘내가 되고 싶은 모든 것’ 이었다.

심지어 그의 자살 소식에 따른 베르테르효과마저 이해가 되었다.

내가 언제 무슨 음악부터 찾아 듣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끝은 명확해 보였다.

이후로 나에게 음악은 그저 들리면 듣고, 말면 마는 식의 어떤 것이 되어가고 있었고, 어떤 음반도 구매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긴 유서의 일부만은 늘 마음 한쪽에 구겨진 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기억해 주길 바래. 점점 소멸되기보단 한 번에 불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


그 해가 다 지나갈 무렵에, 난 그동안 사들였던 약 100여 장의 모든 음반과 석유를 가지고 힘겹게 뒷산에 올랐다.


그리고, 한 번에 불태워 버렸다.


그것은 어쩌면 커트 코베인에게 보내는 나만의 헌사였다.


산불 신고가 들어갔는지,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잠시 모든 것이 불타오르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 속에 비치고 있을 불꽃을 간직한 채, 마치 천재적인 범죄자처럼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넌 꼭 한 번씩 병신 같은 짓을 하더라. 차라리 팔지. 팔면 그게 얼만데 에휴~"


친구 겨울이의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차 싶었다.

왜 난 그럴 생각조차 못 했을까?


"음악을 돈으로 환산하지 마. 음악은…음…불타오르는 거야."


확실히 어설픈 변명이었다. 하지만 즉흥적인 대답 치곤 철학은 담겨있었다.

이 정도면 논리에서 밀려도 이놈 말이 맞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 명분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음악은 은유야 병신아. 한 번에 불타오르는 게 낫다며? 한 장, 두 장 찔끔찔끔 팔지 말고 100장 한 번에 팔라는 거잖아. 불은 곧 돈을 말하는 거지."


뭔가 모르게 설득력 있었다. 이놈은 장차 경제학을 전공할 놈으로 필요하다면 지 마누라도 팔아먹을 놈이다.


우린 첫 대학입시에 실패한 처지였다.

“인생의 쓴맛을 실제로 맛봐야 한다"라는 겨울이의 묘한 설득에 넘어간 나는, 과자 몇 봉지를 사들고 뒷산에 올랐다.

겨울이가 집에서 몰래 백팩에 담아온 것들을 신줏단지 모시듯 꺼내놓았다.

우린 커다란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아서, 학벌 중심 사회에 대한 분노와 조소를 안주 삼아, 밤하늘의 별들을 소주 잔에 담아 들이붓기 시작했다.


“캬… 시발. 좋네 그치?”


“뭐가 좋아?”


“응?… 몰라 나도 킥킥킥… 야. 근데 너 그 뭐냐? 니가 존나 좋아하는 그 뒤진 가수…”


“너바나?”


“그래 맞다 그 새끼. 그러니까 그 노래 뜻은 알고 듣냐?”


“응?… 몰라 씨발 나도 큭큭큭...”


“뭐… 우린 다 몰라 씨발! 킥킥킥”


저능아 같은 대화는 “부모님께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어줬다"라는 뿌듯함으로 이어졌다.

점점 더해지는 술잔에 취기는 저 위에 보이는 초승달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이내 초승달의 뾰족한 끝이 관자놀이를 찔른 듯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개를 들어 크게 심호흡을 했지만 하늘은 빙빙 돌아가고, 초승달 위에서 토끼탈을 쓴 커트 코베인이 방아 대신 전자기타를 쾅쾅 내려치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울려댔다.


"야 그만 내려가자. 나 지금 제정신도 아닌 것 같고… 씨발 토할 것 같애."


태어나서 처음 마셔보는 술이었다.

그 맛은 ‘존나 달다’는 겨울이의 말과는 존나 달랐다.

이놈은 장차 경제학을 전공할 놈으로 지렁이도 프로틴이라고 속여 팔 놈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주위는 온통 캄캄했고,

검은 형체의 나무들은 마치 고대 거인들의 그림자처럼 꿈틀거렸다.

그걸 보니 뭔가 오싹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더니, 이번엔 초승달 아래에 머리를 찧은 듯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난 마치 초승달이 이 모든 고통의 주범인 듯 그곳을 강하게 째려보았다.


“야. 이제 그만 내려가자니까.”


몇 차례나 얼굴을 쓸어내리고,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꽉 주며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남은 과자봉지와 널브러진 빈 술병들을 챙기고 바지를 털었다.


“야! 그만 내려가자고!”


그런데, 내 말은 계속해서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의 침묵이 짧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적으로 불길함이 들이쳤다.

난 재빠르게 고개를 사방으로 돌려보았다.

겨울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벼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직감하자 순식간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비틀거림에서 떨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겨울아… 겨울아! 야!"


이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마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혹시… 원래부터 없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다면 난 지금까지 누구와…?

어? 그러고 보니 이곳은…! ’


저만치 달빛에 반사된듯한 희미한 빛이 스쳤다.

난 공포를 억누르고 억지로 발을 떼며 천천히 빛을 따라 걸어갔다.


그곳엔 흙으로 덮인 플라스틱이 검게 그을린 채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얼마 전 내가 불태워버린 너바나 CD의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여기…’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난 화들짝 놀라서 그만, CD를 들어 올리다 놓치고 말았다.


'왼쪽인가! 아니 오른쪽!'


결국 억지로 막아보려고 했던 무서운 생각이 기어이 떠오르고 말았다.

소름이 온몸을 덮는 바람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순간 나에게서도 공포를 견디지 못한 비명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으아악!!!"


난 귀를 막고 눈을 꽉 감은 채 굳어 있었다.


정적이 흐르고, 귀를 막은 손가락 사이로 마치 귀신의 입김처럼 스산한 바람이 스쳤다.

용기를 쥐어짜내어 천천히 실눈을 떠 보니, 바닥에 깨진 술병 조각들이 흩어져 흐린 달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술병 깨지는 소리였나...? 아니 무조건 그 소리였어야만 해. 그렇지 않다면… ’


난 강제로 생각을 멈추기 위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비명을 너무 질렀는지 순간 기운이 쪽 빠졌다.


"흐흑..."


또 들렸다!

이번에 더 확실하게 귀에 꽂혔다.

환청이길 기대했던 내 바람은 이제 물 건너갔다.

어렸을 때 사촌 형 누나들이 겁 많은 나를 놀리려고 억지로 보여주었던 ‘전설의 고향’ 속 귀신들 모습이 번갈아 가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정말 겨우겨우 고개를 돌려보니 좀 떨어진 캄캄한 어둠 속에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난 이제 동공마저 얼어붙어 눈을 깜박이지도 못한 채 그 붉은빛에 시선을 강제로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붉은빛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이곳에서 음반을 태우던 그날이 떠올랐다.

내 눈 속에 비치던 활활 타오르던 그 불꽃의 기억이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고 그 붉은빛을 향해 내달렸다.


“그래 씨발! 어디 해봐 이 개새끼야!!!”


그렇게 뭐든 다 죽여버릴 듯이 달려들었던 그곳에는 귀신도, 들짐승도 없었다.

그곳에서 흐느끼던 것은 흙투성이로 구덩이 속에 나자빠져 있는 겨울이었다.


"흐흑… 어… 어머… 엄마… 흑흑…"


한순간, 모든 감정이 꺼져버렸다.

분노, 공포, 망상 그리고 술을 괜히 마셨다는 후회까지.

남아있는 건 단 하나, 안도뿐이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정신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야 괜찮아? 야! 정겨울! 야 이 씨발 병신아 여기서 지금 뭐 해!”


겨울이는 나를 보자, 구덩이에 손을 치켜 올려 카시오 전자시계의 불빛 버튼을 누르던 손가락을 떼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겨울이의 손과 점퍼 깃을 잡고 힘껏 끌어올리려 했을 때, 예상 못 한 역겨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이 병신 새끼. 너 오줌 싸다 굴러떨어졌구만"


있는 힘을 다해 어찌 끌어내긴 했는데 185센티나 되는 놈을 들어 올리기는 엿 부족이었다.


"야 겨울아 못 일어나? 좀 일어나 봐!"


“으… ”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다.


“아 씨발 하필… 대가리나 깨질 것이지… ”


[생각해 보면 그때 다친 놈 앞에서 저주는 퍼붓지 말아야 했었을지 모르겠다.]


신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겨울이는 찡그린 얼굴만큼 내 팔을 꽉 잡고 있었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겨울이의 손톱에 내 패딩이 크게 찢어졌다.

그 틈을 비집고 나와 밤 숨을 들이마신 오리털 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하나 둘 겨울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천천히 소멸되기보단 한 번에 불타오르는 것이 낫다!'


만일, 그때 내가 겨울이를 들쳐 업을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냐고 묻는다면, 늘 마음 한쪽 어딘가에 굴러다니던 커트 코베인의 유서가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산 아래쪽에 배드민턴 네트가 있는 공터까지 겨울이를 업고 어떻게 내려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겨울이가 어떻게 될까 겁에 질린 채 아래 비치는 작은 가로등 불빛만을 향했을 뿐이다.


[후에 겨울이는 이걸 ‘기억의 망상적 오류’라고 규정했다.

내가 자기를 업고 그것도 산속을 내려왔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자신 스스로를 영웅시 하기 위해 기억을 조작했다나?

여하튼 자신은 내 부축을 조금 받고서 거의 스스로 걸어내려온 걸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발목이 부러진 놈이?’

이놈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마누라는 팔아먹지 않았다. 아직은.]


기적적으로 겨울이를 공터 벤치에 앉혔을 땐, 이 새끼보다 내가 먼저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숨이 차올랐다.

겨울이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2분이었다.


‘내 사망시간일까?’


아마도 조금 있으면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올라올 것이고 그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손으로 벤치에 상체를 지지하며 앉아있던 겨울이가 갑자기 실성한 놈처럼 나를 보고 웃기 시작했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난 웃을 힘도 없었다.


"아~ 씨발 좆같은 세상!"


겨울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감기던 눈을 떴다.


"지가 오줌 싸다 굴러떨어져 기절해놓고 병신이..."


"닥쳐. 증거 있어? 다 이 사회가 부조리해서 그런 거야 씨발."


"크큭큭. 엄마만 졸라 찾더니"


"닥쳐. 그럴 때일수록 엄마를 찾는 거야 원래."


난 갑자기 열이 받아서 쏘아붙였다.


“병신아 근데 왜 씨발 거기까지 쳐 가서 오줌을 싸고 지랄이야! 너 귀신 될 뻔했어 거기서..”


난 ‘오줌 싸다 굴러떨어진 귀신 병신아’까지 내뱉으려다 참았다.

얼굴에 피멍이 든 겨울이를 보니 좀 안쓰러웠다.


“응?… 그냥 거기에 뭔가 반짝거리는 게 보인 것 같기도 하고… 아 몰라 씨발… 아! 존나 아프다…. 엄마!”


난 약간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하필이면 내가 불을 질렀던 장소 근처에서 겨울이 다리가 부러지다니,

그게 무슨 부두술 의식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한편으로는 ‘그날 흙 속에 반짝이던 너바나 CD 케이스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혹시 커트 코베인의 유령이 그날 거기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시절의 아무 논리도 발견할 수 없는 분노들은 종종 너바나의 절규와 굉음의 기타 리프를 타고 비처럼 나에게 뿌려졌다.

때로는 그때의 적절한 이유를 찾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우주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 이유도 모른 채로 수시로 욕을 먹곤 했다.

그렇게 그때에도 그저 ‘세상 좆같네!’라는 외침만 한겨울의 입김 속에 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진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안심한듯한 내 고른 숨결을 타고 찢어진 틈에서 빠져나갔던 오리털 들이 다시 돌아와 패딩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내 점점 더 많은 오리털 들이 어디선가 날아들었다.

내 검정 패딩은 마치 블랙홀처럼 그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였고 난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급기야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무서워 발버둥을 쳤지만, 그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오르기만 하더니, 하늘 위 어둠의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파티룸 천장의 수소 풍선처럼, 더는 떠오르지 못하고 지구 천장에 들러붙었다.


‘어? 하늘 위에는 우주 아니었나? 왜 멈췄지?’ 하는 의심이 드는 순간, 갑자기 옆에서 태양이 나타나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어이 학생들! 여기서 자면 안 돼. 얼어 죽어."


난 눈을 떴다.

강렬한 플래시 빛이 눈에 찔렸다.

사람들이 옆 벤치에 누워 잠든 겨울이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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