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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Dec 07. 2021

우리 집엔 식집사가 산다

어쩌다 접어든 남편과의 단짠단짠 공동육아 기록

우리 집엔 식집사가 산다. 바로 남편이다.


봄이를 임신했을 무렵 레몬의 신맛이 너무나 당겨 가끔 레몬을 사다 즙을 내어 탄산수에 섞어 마시곤 했다. 그때 나온 레몬 씨앗을 본 남편이 이거 싹 틔워볼까?라고 제안했다.


사실 나는 식물 키우기에 관심도 없고, 소질이 없다. 재미 삼아해 본다기에 그럼 한번 해봐 라고 말을 했다. 레몬 싹을 모아 겉씨 앗을   벗겨낸다음 마르지 않도록 화장솜에 물을 충분히 뿌려 따뜻한 곳에  올려 두고 수시로 물을 주기를 1,2주쯤 지났을 무렵 싹이 하나둘 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이었는데, 화분옮겨 심더니 그중에  개는 흙에서 뿌리를 내리고 안정적으로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중에 가장 건강하게 자란 녀석이 지금 3년째 나무가 되어 자라고 있다.  신혼집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할 때도 차에 고이 모셔 함께 이사를 왔다. 회사일로 바쁜와중에도 틈틈이 들여다보며 정성을 쏟은 결과다.


 덕에 좁디좁은 우리  베란다 한편은 식집사의 취미공간이다. 평소에 이렇다  취미도 없고, 집에 오면  누워 지내기 바쁜 남편이 관심을 많이 쏟는 공간이니, 나도 베란다 한 공간 남편에게 내어주어도  불만은 없다. 봄이도 자주 드나들며 화분들에게  도주고, 가끔 흙도  해쳐서 나를 놀라게 하긴 하지만. 아이에게도 신기하고 재밌는 공간일 테지. 


식물 키우기가 그의 오티움일까?


 평소  변화도 심드렁한 표정의  남자식집사라니 반전 매력이다. 특히 식물을 대할  보면 어찌나 꼼꼼하게 잘하는지 식물 키우기에 흥미가 없는  눈엔 그가  신기하면서도 능력자 같아 쪼금 멋져 보인다.

 더운 어느 날 화분에서 작은 벌레들이 자꾸 생긴다고 불만을 이야기했더니, 그럼 파리지옥을 키울까? 하고 제안하는 신박함에  하고 웃음이 졌다.

 

 아내 블로그는 구독하지 않지만, 식물  키우는 금손의 블로그는 구독한다. 재미 삼아 만든  작은 공간이 남편에게 힐링이 되는 공간이길, 초록이 식물들이 긍정의 기운을 채워주길 바라본다.


 언젠가 남편이 나중에 아이가 좀 크고 나면 전원생활을 해보는 건 어떻냐고 물은 적이 있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은 아파트 생활이 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힘들단다. 반대로 평생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전원생활에 로망이 있긴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대답도 차 타고 20분 거리에 마트에 갈 수 있는 정도면...?이라고 얼버무렸다. 본인은 내가 허락한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한다. 마음껏 나무도 키우고,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단다. 남편의 나무 키우는 실력을 보아하니, 텃밭에 상추, 배추는 잘 키워주겠다 싶기도 하다. 그럼 난 상추, 배추 따다가 마당에서 고기 열심히 구워주면 되는 건가? ㅎㅎ


그런 날을 꿈 꾸며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사이좋게 잘 살아 봅시다 남편.

 

그가 키운 우리 집 레몬 나무

잎사귀 얻어다 싹 틔워 꽃 피운 바이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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