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엔진을 스스로 꾸려가는 아이들
아이를 만날 때면 나는 호기심과도 만난다. 아이들이 갖는 그 많은 호기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떻게 작동하며, 또 성장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호기심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을 성장과 창조로 연결하기 위해 어떤 게(기준 또는 방향) 필요할까? 아이들 덕에 나도 모르게 이런 궁금함에 빠져든다.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호기심의 방향’이 중요하다.
호기심은 우리 뇌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틈을 발견할 때 생긴다. 그 틈을 메우도록 도파민을 통해 행동하게 만드는 생존 메커니즘이라 한다. 아이들에게는 성장의 첫걸음이자, 배움의 엔진이요, 창조의 불씨가 된다.
그렇다고 호기심이면 다 좋은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릇된 호기심은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집착·중독·위험·불안을 낳는다. 자신을 갉아먹고, 파괴하게 된다. 기준이나 방향이 없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그렇다.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아이들조차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정보와 환경에 ‘쉽게’ 노출된다. 자신이 몸으로 겪어보지 않은 자극적인 환경에 많이 노출될수록 아이 뇌는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는다. 자극 과잉의 시대. 그저 손가락 하나로 빠르게 바뀔 수 있는 스마트 폰 세계에 빠질수록, 현실은 더디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몸을 갖는 존재가 자기 몸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이제는 호기심에도 방향이 무척 중요한 시대가 된 셈이다. 뇌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하는 호기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자신을 먼저 잘 돌보고, 살려야 하리.
그런 맥락에서 이번 창조 놀이로는 아이들과 칡 리스(wreath)를 만들기로 했다. 단풍잎이 떨어지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하기 좋은 놀이. 요즘 웬만한 산골은 칡이 흔하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좋은 밭들이 묵어가니 칡이 제 세상 만난 듯 왕성하다. 둘레 나무를 기어올라 죽여버리고, 집 둘레로도 야금야금 들어온다.
근데 이 칡은 나름 쓸모가 많다. 칡국수는 별미요, 칡 공예는 과정 자체부터 향기롭다. 칡 공예는 조금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다면 놀이로 쉽게 해 볼 수 있는 게 칡 리스다. 칡덩굴을 둥글게 빙빙 감고, 그사이 적당한 소품(낙엽, 열매, 씨앗, 가지 따위)을 배치하면 된다. 그윽한 칡 향을 맡으며.
근데 이런 재료를 내가 다 준비하고, 아이들은 만들기만 하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재료부터 호기심의 영역이다. 칡이 뭐지? 어떤 모양일까? 어떻게 자라지? 나와 무슨 관련이 있지? 생물학의 영역. 일단 칡을 눈으로 보는 거부터 시작이다.
휘고, 꼬고, 감고, 자유자재한 생명력
칡은 덩굴성 식물로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걸 좋아한다. 덩굴 굵기가 제각각이다. 젓가락 굵기부터 어른 팔뚝 굵기만큼 자란 것도 있다. 손가락 굵기 정도만 돼도 아이들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력이 좋다. 게다가 이 덩굴은 휘고, 꼬고, 감는 자유자재다. 그래서인지 저희 덩굴끼리 서로서로 엉긴 것도 많다. 칡의 생명력, 생존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살아남는 힘! 그러니 칡은 여러모로 상상력을 더 자극하는 거 같다. 지난 겨울에는 칡덩굴로 긴줄 넘기를 해보았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했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칡덩굴을 넉넉히 준비했다. 이제 이 덩굴에다가 붙일 여러 조각을 모으는 일. 열매나 가지, 단풍…. 이 역시 아이마다 자신이 끌리는 걸로 하면 되리라.
아이들과 우리 밭을 한 바퀴 돈다. ‘갓남’이 묻는다.
“이게 뭐예요?”
“보리똥(보리수나무 열매)!”
“먹을 수 있어요?”
“먹기는 하지만 그냥 먹으면 시고 떫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이는 맛을 본다.
“떫지?”
빙그레 웃더니 하나 더 맛을 본다. 사실 보리똥 맛은 훨씬 더 복합적이고 깊긴 하다. 아이는 내 말보다 자신이 가진 호기심, 자기 혀와 침이 갖는 느낌에 더 집중한다. 살짝 떫어, 침이 잘 돋는다. 게다가 독은 없고, 효능은 많다니 아이 호기심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맛보고, 빛깔로 끌리며, 모양으로 마음에 드는 것들로 재료를 모았다. 노란 탱자, 빨간 구찌뽕 열매, 빨간 화살나무 열매와 가지, 좀작살나무 열매, 오크라 열매, 억새 씨앗, 고운 단풍…. 이제 본격적으로 리스를 만들 차례. 이 역시 나는 아이들 구상과 창의성에 맡긴다. 실패란 없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게 중요할 뿐.
평상 그득, 아이들이 가져온 재료를 펼쳤다. 자, 이제 어떤 모습으로 만들까? 아이들 나름 머릿속 그림을 그렸나 보다. 각자 그저 말없이 열중이다. 먼저 칡덩굴로 큰 틀을 잡는다. ‘웃꿀’이 만드는 모양이 내 눈에 좀 독특하다.
“무슨 모양으로 만드는 거야?”
“우리나라를 뜻하는 태극 모양이요.”
“오, 좋은 생각이네. 근데 칡덩굴이 잘 휘지만, 또 제자리로 가려는 성질도 있어 쉽진 않을 거야.”
하지만 아이는 끈질기게 칡덩굴과 씨름한다. 보통 아이들이 한 가지 일에 10분 이상을 집중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결합하는 창조 놀이는 시간을 잊게 한다. 재료가 가진 특성에 따라 자기 생각과 계획도 휘고, 꼬고, 감는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작품을 창조한다.
호기심을 땅에 묻는다
아이들 호기심은 끝도 없는 거 같다.
다음날 ‘갓남’은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왔다. 보자기로 잘 싸서.
“이건 뭐니?”
“나무 아래 묻으려고요”
“왜?”
“그냥 궁금해요. 나중에 어떻게 바뀌나?”
“안에는 뭐가 들었니?”
아이가 상자를 열어 보여준다.
황금빛이 나는 열쇠랑 실로 엮은 찻잔 받침대.
“네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없어?”
찻잔 받침대 아래를 들추자, 종이가 보인다. 돌돌 말아 놓은 걸 풀어서 보여준다. 아이만이 알 수 있는 언어가 적혀 있다.
“겨울에 다시 왔을 때 꺼내보려고요. 그사이 어떻게 달라졌나?”
일종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아이랑 상자를 묻기 위해 큰 팽나무 아래로 왔다.
“어디가 좋을지, 네가 정해.”
아이는 적당하다 싶은 곳에 돌을 들어낸다. 한참을 낑낑대며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다가 상자를 넣는다. 정성스레. 맨 위는 돌로 덮는다.
호기심이란 성장 엔진으로 첫걸음을 떼면 그 배움은 깊어진다. 그 기억은 오래간다. 언젠가 호기심이 향하는 방향이 어느 정도 맞다면 공동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은 줄어든다고 한다. 근데 이 아이들을 보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도 씨앗처럼 잘 보관하고 또 살려간다면 계속 더 자라지 않을까? ‘갓남’이는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챙겨가는 게 있더라. 첫날 흙 반죽으로 만든 ‘흙 공’ 하나와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숯덩이 하나. 신문지에 정성스레 싼다. 나도 궁금하다. 어디에 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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