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꽃' 피우기(2) 절실함이 즐거움으로
이야기에 앞서, 미리 알려드릴 게 있다. 발가락 꽃 피우기는 너무나 소중한 과제지만 한계가 있다. 내가 아이들과 하는 방식이 모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력으로 오목 발이나 평발 그리고 무지외반증일 경우, 맞춤형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지난번에 설명했듯이 신발이나 잘못된 걸음으로 발가락이 제대로 펼치거나 굽혀지지 않는 경우다.
참고로 맨발 걷기가 최근 들어 유행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걸 말해둔다. 특히 맨발 효과로 어싱(접지)을 강조하지만, 이는 변형된 발가락을 바르게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자가 진단을 먼저 하고, 거기에 맞게 맨발 운동을 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자, 중력과 신발로 인해 변형된 발가락을 어떻게 바르게 할 것인가. 이건 그야말로 생활 습관의 문제이기도 해서 한두 가지 방식으로 안 된다. 또한 아이들과 달리, 어른은 단기간에도 안 되더라.
무엇보다 먼저 자기 발에 대한 점검과 지금보다 나아져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틈틈이 발가락을 주무르고 보살피는 건 발이 갖는 고유 감각을 깨우는 데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 근데 발가락으로 중력을 버티던 그 힘을 되살리자면 ‘특수한 운동’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알게 된 운동이 ‘볼더링’이다. 이 운동은 실외 암벽 등반을 실내 공간으로 가져와, 대중화시킨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 권유로 해보니, 무척 재미있었다. 다양한 난이도를 두어, 중독에 가깝다. 잘하면 자신을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근데 문제는 역시 신발이다. 나는 맨발로 해야, 발가락 치유도 되고, 사고 위험도 줄어들 거라고 본다. 몸을 몸답게 하는 건 온전한 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장(실내 볼더링을 할 수 있게 만든 곳)을 관리하는 처지에서는 그 반대로 말한다. 부상 위험을 이유로 맨발 볼더링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암장 몇 곳을 더 돌아보았지만 다 마찬가지로 맨발 볼더링을 할 수 없었다.
‘발가락 꽃 실험실’
결국 나는 사랑채 한쪽 벽면에다가 내 방식의 아주 작은 나무 암장을 만들었다. 사실 암장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솔직히 낯간지럽다. 그보다 ‘발가락 꽃 실험실’이라 하겠다. 그렇다. 내게는 너무나 절실하다. 발을 딛는 바닥상태에 따라 우리 발가락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지를 보게 하는 거울로써 볼더링. 크기는 그야말로 아이들 소꿉놀이 수준이다. 거울이 크다고 좋은 게 아니듯이.
사실 자연이 온전히 살아있는 곳에서 땅바닥이란 고르게 평면일 경우가 드물다. 울퉁불퉁. 게다가 자갈도 바위도 다 있다. 우리 몸은 특히 발은 원시 시대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따라서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또 존중해 주어야 하리. 몸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
그런 맥락에서 내가 만든 나무 볼더링은 재미가 아니라, 철저히 치유가 목적이다. 틀어진 발가락을 바르게 하기 위한 운동. 다만 어른, 아이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되도록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로 하자. 하지만 얼핏 보는 거와 달리, 그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원리가 담겨있다. 나무 오르기는 균형감각, 발 고유 감각, 손과 눈의 협응, 근력, 민첩성, 인지능력 등이 총체적으로 요구되는 신체 활동이라는 사실. 특히 발 고유 감각은 아주 중요하다.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절대, 절명의 감각이다. 자신이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딛는 이 가지는 부러지지 않고 안전할까? 그다음으로 잡아야 할 가지는 어느 게 좋을까? 그 하나하나 판단을 종합적으로, 감각적으로, 온몸으로 해야 가능하니 말이다.
캠프에 온 아이들에게 안전과 맨발 볼더링 원리를 설명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나무를 오르는 즐거움을 만끽하더라. 우리 자랄 때는 맨발로 뽕나무에 올라가, 오디를 따고,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원시 채집의 즐거움을 잊고 자란다. 사실 이 즐거움은 채집 자체에도 있지만 몸이 바르게 자라는 데도 중요하다. 나무를 탄다는 건 굉장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니까. 그 무엇보다 나무랑 한 몸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 욕심이 앞서면 언제든 망한다.
그래서 더 맨발이 필요하다. 맨발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땀을 내어, 나무와 밀착하고자 한다. 양말은 발이 쉽게 미끄러진다. 신발은 발 감각을 무디게 하고, 발에서 나는 미세한 땀을 차단하여 나무와 겉돌게 한다. 그렇다고 꽉 쪼인 신발은 발가락마다 갖는 고유한 능력을 살리지 못하게 한다. 우리 자랄 때 그 많은 동네 아이가 맨발로 나무와 바위를 오르내리며 자랐지만 떨어진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 고유 감각이 갖는 생존 본능이 안전을 지켜준 셈이다.
내가 만든 나무 볼더링은 아이들에겐 그저 타잔 놀이에 가깝다. 그냥 놀면서 자연스럽게 변형된 발가락이 조금씩 펴지는 게 아닌가. 내가 몇 년 동안 노력한 거보다 아이가 단 며칠 논 놀이 효과가 더 도드라졌다. 다섯 개 발가락이 거의 펴지지 않던 아이 발이 펴지는 거다. 발가락이 전혀 벌려지지 않았던 아이가 이제는 거의 80% 정도 벌어진다.
정말 아이들이 갖는 회복 탄력성은 놀랍다. 더 다양하게 고민한다. 누구나 당장 나무 볼더링을 누리기는 어려울 테니까.
중력을 활용한 발가락 치유 운동으로 뭐가 더 좋을까? 쉽게 하는 놀이로? 그러다가 떠올린 게 죽마였다. 이래저래 알아보니 에티오피아 아이들은 거의 제 키 높이 죽마를 타고 노는 걸 볼 수 있었다. 와우! 이 죽마는 그야말로 자연의 나뭇가지를 잘라, 아이들이 만들었다. 나이에 따라 높이도 제각각.
특허와 상품화를 고민했던 ‘반달형 맨발 죽마’
내가 직접 만들어보니 바닥에서 살짝 높은 죽마조차 처음에는 어림도 없더라. 우선 높이를 최대한 낮추었다. 죽마에서 발 딛는 곳을 바닥에서 10센티 남짓. 그래도 쉽지 않았다. 네발로 기던 아이가 처음으로 일어설 때 오는 어려움보다 더 어렵다.
일단 땅에 닿는 죽마 크기가 발보다 한결 작다. 지름이 고작 3센티 남짓. 한 발을 죽마 위로 올리는 순간, 몸의 무게 중심이 달라지면서 흔들린다. 달라지는 무게 중심에 맞게 재빨리 죽마를 이동해야 한다. 거의 본능에 가깝다. 무의식으로 자리매김해야 가능하리라. 수영법을 지식으로 안다고 되는 게 아닌 거와 같은 이치리라.
아무튼 나는 여러 번의 노력 끝에 죽마를 탈 수 있었다. 지금은 죽마를 타고 제법 리듬을 탈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 점차 치유를 위한 단계로 고민을 거듭하였다. 알고 보니 죽마를 인터넷에서도 쉽게 살 수 있었다. 근데 내가 고민하는 것과는 달랐다. 발을 놓는 곳이 수평이다.
죽마는 균형 놀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맨발로 죽마를 타자면 발 아치와 자연스레 어울리는 곡률이 필요하리라. 그래서 반달형 죽마로 발전했다.
나는 이 ‘반달형 맨발 죽마’로 특허 또는 상품화를 고민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 영역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렇게 글로 공개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또 치유하길 바란다.
맨발 나무 볼더링이 '고정형'이라면 맨발 죽마는 '이동형'이다. 그만큼 간편하지만 놀이는 결코 쉽지 않다. 균형 감각이 아주 좋은 사람은 바로 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겪어본 사람들은 거의 쉽지 않았다. 심지어 어른들은 시도 자체를 무서워할 정도였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이는 고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 역시 캠프 때마다 해보지만 아직은 아기 걸음마 수준이다. 집에서 날마다 꾸준히 했던 한 아이는 한 달 정도만에 거의 달리기 수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죽마 축구’(죽마를 타고 하는 공놀이)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몸은 끝없는 배움의 영역
참고로 발가락 꽃 피우기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아래 첫째와 둘째 이야기는 지난번에 소개한 김세연의 <새로 발견된 자연의학의 이론과 실습 K.S.S> 책을 토대로 한다. 참고로 정말 귀한 책이니 사진으로나마 꼼꼼히 읽어보시길 권한다.
먼저 신발. 신발은 되도록 앞볼이 넓어, 발가락 움직임이 자유로운 게 좋다. 더불어 신발 바닥이 되도록 얇아 발이 바닥에 닿는 감각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게 좋다. 그런 점에서 하이힐이나 볼이 좁은 구두는 금물이다.
둘째는 깔창과 양말이다. 양말은 발가락 양말이 좋고, 양말을 신었을 때 복숭아뼈 둘레에 고무줄 끈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곳에 큰 정맥이 흐르기 때문에 꽉 쪼이게 되면 피 흐름이 크게 약화한다. 깔창은 당장은 편하다고 느끼게 만들지만 길게 보면 발 고유 탄력성과 감각을 왜곡할 수 있으니 되도록 삼가는 게 좋다.
셋째 발 고유 감각을 살리는 방법으로 다양한 접촉이 필요하다. 보통은 황톳길을 만들어 맨발 걷기를 하지만 더 다양한 감각이 필요하다. 나무는 물론 모래, 바위, 물... 풀이 잘 자라는 잔디밭도 좋다. 모래, 풀, 물은 발바닥은 물론 발등 감각 회복에 도움이 된다. 특히 눈이 왔을 때, 아주 잠시 맨발로 눈길을 걷기. 직접 해보면 느끼겠지만 엄청난 열감이 피부에서 느껴진다. 피부가 얼지 않기 위해 온몸의 혈액을 발로 보내는 느낌이라, 불이 나는 거 같다. 그야말로 아주 잠깐 해야 하며 오래 하면 동상에 걸린다. 마른 수건을 준비하고 있다가 그만하고 싶을 때, 얼른 발의 물기를 닦아낸다. 실내로 들어와, 몸을 녹인다. 맨발 눈길 걷기는 중독성이 엄청나다. 그 짜릿함과 아릿함!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인다. 나는 올해도 벌써 눈을 기다린다.
끝으로 집에서 가볍게 발가락 치유 운동으로 권할 만한 게 나무 베개다. 반달 목침이면 좋다. 그 위에 맨발을 올리고 제자리 걷기 운동을 한다. 발과 발가락이 자기 몸무게에 맞추어 굽히고 오므리고 펴고를 반복한다. 이때 가능하다면 발가락을 최대한 꺾었다가 펴주면 더 좋다. 평지를 맨발로 걷는 것과 달리, 그 어떤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나는 이 자세로 고개 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높이에다가 책받침을 하나 만들었다. 보통 때는 맨발 걷기에 집중하지만 가끔 반복 동작이 지루하다 싶을 때는 책을 보면서 제자리 맨발 걷기를 한다.
위에 든 여러 보기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동작으로 오래 하면 안 된다. 되도록 다양한 동작으로 다양한 느낌을 살려가며 하는 게 좋다.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그런 점에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여러 영감을 얻고 또 배운다. 나는 절실함으로 접근했지만, 아이들은 놀이로도 충분히 가능하니 말이다. 겉으로는 다 같은 몸짓이지만 뇌와 마음은 사람마다 다르게 움직인다.
우리 몸은 마음의 종이 아니다. 우리 몸 곳곳에 다 마음이 깃들어있다. 하여, 몸을 배워가고 또 익혀가는 과정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다. 배움을 넘어, 삶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는 그 모든 토대는 몸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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