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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끼와 멋 살려, ‘웃는 화장실’ 짓기

창조 놀이(10) 일과 놀이 그리고 배움을 넘나들며

by 빛숨 김광화

요즘 우리 밭 한쪽에서 자그마한 뒷간(화장실)을 짓고 있다. 손님용이다. 이런저런 체험을 위해, 우리 밭을 방문했을 때 볼일을 보게끔.


근데 우리는 짓는 과정 자체를 방문객과 함께한다. 지난봄부터 시작했지만 언제 완공될지를 아직 모른다. 그저 인연 따라 형편 따라...


아이 안에 어른이 있어, 어른 일을 '미분'하면 아이들한테는 놀이로


그동안 기본 뼈대를 갖추고, 이제 벽 한쪽 마감을 남겨둔 상태. 사실 이는 내가 아이들과 캠프 때 하려고 ‘일부러 남겨둔 거’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그마한 집을 지어보는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리라. 창조적인 소꿉놀이라 할까. 사실 집 짓기란 보통 어른들에게도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다. 하물며 열 살 남짓 아이에게 있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내가 캠프를 꾸릴 때, 늘 마음에 두는 건 놀이다. 그리고 그 놀이는 통합적인 배움으로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갖는 고유한 창조성을 살리고자 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통해 다시 배운다. 이러한 내 머릿속 계획이 현실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자각하는 일 역시 소중한 배움이더라.


사실 뒷간 작업을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저 나 혼자 하는 게 더 빠르다. 하지만 아이들과 체험으로 진행하자면 혼자 때보다 두 배 세 배 더 준비해야 한다. 행여나 다치거나 위험하지는 않을까. 즐거워할까.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걸 배울 수 있을까. 둘레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건축 재료로는 뭐가 좋을까. 그 과정에서 호기심이나 창의성을 어떻게 살려낼까...


그런 흐름에서 아이들과 먼저 할 놀이는 흙 반죽. 이건 밀가루 반죽과 비슷하다. 물기가 많아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된다. 물이 많으면 반죽이 질고, 적으면 점성이 안 생긴다. 조금씩 물을 부어가면서 점성을 맞추어간다. 이때 볏짚을 조금 썰어 넣으면 좋다. 이 볏짚이 흙은 더 잘 뭉치게 한다.


이 흙 반죽을 일로 하면 고되다. 그러나 놀이로 하면 다르다. 이런 일을 놀이로 바꾸는 비결은 간단히 두 가지다. 첫째 어른 안에 아이가 있듯이, 아이 안에는 어른이 있다는 자각이다. 아이들은 가능하다면 어른이 하는 일을 다 해보고 싶어 한다. 둘째는 호기심과 놀이 수준으로 한다. 이를 수학 용어로 말하자면 ‘미분’이다. 어른 기준의 일을 잘게 잘게 나누는 거다. 어른이 한 번이면 될 일을 아이는 열 번도 좋고, 백 번으로도 나누는 거다. 때로는 어른 처지에서 성가실 만큼.


아이들이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는 배경은 바로 자기 기준으로 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흙을 손으로 만지고 뭉치고, 발로 짓이기는 과정이 다 즐거운 놀이다. 실제 아이들은 마치 디딜방아 찧듯이 또는 삽 시소를 타듯이 반죽하기도 하더라. 어른 기준으로 흙 반죽을 하거나 그 요령을 아이들에게 요구한다면 이런 창의적인 놀이가 불가능할 것이다.


스트라이크! 흙(공) 야구


어느 정도 반죽이 되면 이제 이를 벽면에 붙인다. 이게 또 흥미로운 놀이다. 먼저 반죽한 흙을 야구공 모양으로 만든다. 아이가 던지기 좋도록 자신에게 맞게. 그렇게 만든 흙 공은 그 자체로 예쁘다. 이를 벽면에 던져 벽에 붙인다. 말하자면 흙(공) 야구다.


흙 공.jpg 아이가 뭉친 '흙 공', 그 자체로 예쁘다

나는 아직 야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던지는 동작과 규칙을 알려준다.

“자신이 목표로 한 지점에 흙 공이 가면 스트라이크! 벗어나면 볼이야! 자, 이렇게 던져봐.”

“볼!”

“스트라이크!”

아이들이 조금씩 익숙해진다.

1.jpg 아이들 눈높이로 보면 일과 놀이, 그 구분이 없다

“좋아, 그다음 요령으로는 던지는 속도가 중요해. 너무 약하면 제대로 붙지 않겠지. 그렇다고 너무 세다고 좋은 건 아니야. 가장 좋은 건 나뭇가지 사이로 고루 들어가, 안벽까지 잘 잡아주는 거야. 조금 어려운 말로 '컨트롤 또는 제구'라고 하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속도도 중요하거든.”


그렇게 흙 놀이를 할수록 조금씩 꼴이 갖추어진다. 근데 내가 우리 밭에는 너구리가 자주 들어와, 농작물을 먹어치운다고 하자, 아이들이 뒷간 안에서 활을 쏠 수 있게 구멍을 두자고 한다. 이 의견을 따라, 아이들 눈높이에다가 작은 구멍을 내려고, 톱을 갖다 대자.

“조금 더 높여주세요.”

“왜?”

“우리가 더 자랄 테니까요.”

5.jpg 아이들 아이디어로 완성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웃는 화장실'

사냥 구멍 이외 벽을 웬만큼 막고 보니, 더 낫다. 작게 열린 창이랄까. 숨통이 트이는 기분.


자, 이제 벽 마무리 작업. 보통은 ‘미장’이라 한다. 거친 벽면을 곱게 바르는 과정이다. 근데 이 일 역시 아이들에게는 아주 좋은 창의적인 예술 활동이 된다. 벽면에다가 얼굴을 넣겠단다. 얼굴로 만들 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밭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마침 썩어가는 가래나무 밑동에서 흰구름갓버섯이 제법 이쁘게 핀 게 보인다. 이걸로 눈을 하겠단다. 크기도 좋고, 두께도 얇고, 빛깔도 안성맞춤이다.


이제 어떤 모습으로 붙일까를 고민한다.

“웃는 모습으로 하고파요.”

버섯을 이래 붙여보고 저래 붙여보고 느낌을 살려간다.

“둥근 쪽이 위로 가게 해야겠어요.”

입을 대나무 조각으로 했음에도 제법 웃는 모습이 난다. 눈 모습이 웃음 포인트가 되나 보다. 코는 작은 호박돌로 붙였다.


일차 작업으로 이제 끝낼까 했더니 ‘웃꿀’이 새로운 생각을 밝힌다.

“글자를 넣고 싶어요.”

“어떤 글?”

“웃는 화장실!”

“오우, 좋은 생각이네. 한번 해봐.”


이건 일종의 양각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분도 한번 사진에서 아이가 넣어둔 우리 글자를 찾아보시길. 방문객들에게 호기심 수수께끼 하나를 던져둔 셈이다. 얼핏 봐서는 안 보인다. 호기심이 살아 있는 눈에는 보인다.


이튿날 다시 사냥 구멍 위로 남은 작업 마무리. ‘갓남’은 말보다 글쓰기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이는 해보고 싶은 걸 하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벽에 매달린다. 아이가 벽면에 쓰는 글은 아이 자신이 만든 새 언어. ‘바지라스탄’어다.

“이번에는 조금 쉬워요.”

“그래? 매번 달라지는 거니?”

“이건 네 번째 버전이거든요.”

“얼마나 더 할 건데”

“계획으로는 열 번 정도. 그때는 아마 영어만큼 쉬울 거예요.”

아이는 자신의 언어로 양각과 음각, 둘 다를 살려 조화롭게 한다. 한눈에 봐도 글자보다 그 어떤 문양으로 아름답다.

3.jpg 자신이 만든 언어로 정성스레 글자를 붙이고, 새긴다

“사람은 사는 동안 볼일을 안 볼 수 없다...期”


그러고 나서 뒷간 안에다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게 했다. 그 이전에 방문객들이 쓴 글과 그림이 보인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는 아크릴 물감으로 큼지막하게 ‘자신 있게’ 쓴다.

“사람은 사는 동안 볼일을 안 할 수 없다.

“‘안 볼 수 없다’인데... 뭐 그래도 뜻은 통할 테니! 근데 저 한자는 뭐니?”

“기약(期約)할 때 기. 때맞춰 잘 누라고...”

4.jpg 조금도 망설임 없이, 큼지막하게, 당당하게 메시지를 남기는 아이

나중에 사진을 찍고 나서 확인한 사실 하나. 아이들이 쓴 글자가 아이들이 낸 구멍으로는 보인다. 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아이 눈높이는 아이들이 누리는 세상이라는 걸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이렇게 하여 '웃는 화장실'을 마무리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창조적 화장실. 함께 즐거웠다. 근데 마무리가 부족했다. 아이들이 도구를 씻어 제자리에 두고, 둘레 청소를 해야 하는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동기와 과정에서 맛보는 즐거움이 마무리까지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마무리까지 제대로 해야 진정한 주도성이 아니겠는가! 나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는다. 마무리조차 아이들과 놀이로 함께 하고 싶은 숙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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