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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무리 글-아이들이 빛나는 세상을 위하여

by 빛숨 김광화

이제 브런치 북 『아이에게 배운다-자녀 교육의 지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매주 한 편씩 얼추 5개월을 이어서 썼다. 원래 원고는 26회 분량으로 준비했다.


근데 여기 브런치에 연재하다 보니 본래 준비한 원고보다 내용에서 아이들이 자꾸 더 앞서가는 게 아닌가. 연재 가운데 ‘창조 놀이’가 대표적이다. 본래는 두어 꼭지 정도로 준비했었다. 막상 하다 보니 이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거다. 창조 놀이라는 주제로만 10회를 이어서 썼다. 아마 인공지능 시대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더 그쪽으로 에너지가 쏠린 거 같다.


아무튼 그렇게 이어가다 보니 기존에 썼던 글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했다. 근데 점차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는 내가 그동안 강조해 온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벗어나는 느낌이다. 내 글쓰기는 ‘글이란 삶에서 나오고, 그 글이 다시 삶을 가꾸는 과정’을 이어가는 거다. 만일 꾸밈이나 억지가 들어가는 글쓰기라면 이는 삶을 가꾸는 게 아니라 삶을 좀먹기 마련이다. 이제 잠시 호흡을 고르면서, 내 삶은 물론 아이들 삶을 더 깊이 또 더 넓게 돌아봐야 할 때인 거 같다.


이번 연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를 몇 가지 간단히 들자면 이렇다.


‘아이들의 마음공부.’ 아이도 마음공부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는 여러 마음 상태를 아이 스스로 살피고 돌보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화가 났을 때, 뜻대로 안 될 때, 아픔을 겪을 때 어떻게 주체적으로 이를 이겨내는가.


‘돌봄은 서로를 향해 흐른다.’ 보통 아이들을 대할 때,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보지만 나는 아이들도 돌보는 걸 좋아한다고 본다. 식구들 가운데 누구든 돌봄이 필요하면 기꺼이 고사리손을 보태고자 한다. 나는 이를 적극 살려주고 싶다. 돌봄이란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자라면서 돌봄 능력을 키우는 건 무척 중요한 교육이리라. 남을 돌보기 위해서는 ‘자기 돌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이들과 함께 경험하고 있다.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제라면 돈. 돈을 대하는 태도다. 요즘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돈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이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다. 캠프 때면 부모님들에게 경제 교육 일부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돈을 바라보는 자세일 것이다.


돈은 아이는 물론 부모들에게도 중요한 주제다.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요즘 아이들은 제 밥그릇 이상을 타고 난다’이다. 그렇다. 요즘은 아이가 귀하다 보니 국가나 지자체마다 다양한 교육 정책을 제시한다. 각 가정으로 들여다보면, 가정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아이는 드문 데 부모를 비롯한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느 정도 뒷배경으로 자리한다. 이제 돈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아닌 세상이다. 아이들이 앞날에 차지할 밥그릇 걱정은 접어도 좋으리라 본다.


‘사회적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주제도 꼭 다루고 싶다. 아이는 드물고, 노인은 늘어나는 세상. 나이로는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정작 자녀들이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공백이 크다. 내 둘레 이웃들한테서 가끔 푸념을 듣는다. '자신은 손주가 없어, 무척 아쉽다'고... 비록 내 손주가 아니어도 관심과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리. 그게 본인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누구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세상을 나는 바라본다.


이러한 모든 주제가 지향하는 지점은 하나다. 아이들이 빛나는 세상을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자는 거다. 아이가 주인으로 당당히 자라도록…. 부모나 양육자들은 아이들 덕에 함께 성장하면서…. 밝고 활기찬 사회의 뿌리는 결국 아이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남은 이야기들은 매주 정해진 날 연재하기보다 그때그때 내용이 충분하다 싶을 때 자유롭게 올리고자 한다.

끝으로 그동안 이 연재를 봐주시고 또 귀한 마음을 댓글로 나누어주신 여러 독자님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자녀교육 #아이에게배운다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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