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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따로 또 같이’ 하는 대가족 캠프를?

갈림길에서

by 빛숨 김광화

내가 아이들과 해오던 캠프가 큰 전환점을 맞는다. 부모들도 함께 하고 싶단다. 그럼, 가족 캠프가 된다. 그것도 세 가족이나 함께 하는 대가족 캠프.


먼저 그런 제안이 고맙다. 사실 핵가족조차 해체되면서, 핵 개인화로 치닫는 요즘 시대에서 대가족은 그저 꿈에나 그리던 그림 아닌가. 게다가 아이가 없어, 지역은 소멸로 치닫고, 나라는 위기를 느끼는 시대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뜻깊은 경험이 되리라. 그래서일까. 내 생각이 확장되면서 상상의 나래가 이리저리 뻗어간다. 하지만 그전에 생각해 볼 부분이 적지 않다. 미리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듯하고...


뭘 하든, 나는 아이들이 주인으로 우뚝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교육을 넘어, 삶의 모든 순간을 아이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길 바란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던 캠프에 부모들까지 함께 할 경우, 이 지점이 조금 애매할 경우가 생길 거 같다.


집에서 하던 대로, 또는 학교라는 문화에서는 아무래도 아이가 온전히 주인 되기는 쉽지 않다. 보호와 보살핌 그리고 양육과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이 곧잘 중심에서 밀려나는 편이다. 아이가 가진 고유성에 집중하기가 아무래도 어렵다. 잔소리 또는 명령에 양육자는 자신도 모르게 젖어든다.

“일어나라, 씻어라, 밥 먹어라, 빨리 학교 가라, 숙제해라...”

여기 견주어 나와 함께 하는 방식이란 아이 스스로 하는 자신과 대화가 먼저다.

‘아, 잘 잤다. 배고파, 뭐 먹지? 뭘 할까? 이게 뭐야? 왜 그럴까?...’


뒷바라지, ‘곁 바라지’, ‘앞 바라지’ 그리고 속 바라지’까지

나는 아이들 뒷바라지보다 ‘곁 바라지’를 좋아한다. 곁에서 지켜주며, 필요한 걸 거드는 걸 즐긴다. 앞에서 이끌거나 뒤에서 밀기보다 아이 걸음에 맞추어 함께 걷는 걸 좋아한다. 호기심 걸음에는 같이 머물고, 뜀걸음에는 함께 뛰지는 못해도 곁에서 믿고 응원하는 그런 걸음.


우리가 대가족 캠프로 나아가자면 이런 기본을 모두가 공유해야 하리. 그 토대에서 바로 설 때, 모두는 올바른 성장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실 아이들 교육에는 이제 한 마을을 넘어,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근데 그러한 외부 단위 못지않게 기본이 중요하리. 그건 바로 가족 단위일 것이다. 가족도 능력이 된다면 핵가족 단위에서 대가족 단위면 더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바라지’가 다 들어간다. 뒤, 옆, 앞, 모두. 심지어 ‘속 바라지’까지.


당장 인원이 늘어난다. 아이는 셋인데 어른은 다섯. 여덟 사람 정도가 기본이다. 이 많은 사람이 먹고 치우는 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게 잘 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그만큼 크리라. 반대로 기본이 안 되면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그 안에서 지지고 볶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으리. 내 젊은 시절, 대안 교육을 한답시고 ‘말로써 불을 뿜던 날’들을 돌아보면 그랬다.


스스로 서지 않으면 그 어떤 교육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더라. 이는 교육만이 아닌 다른 삶에서 마찬가지. '제 앞가림'이라 해도 좋고, 거창하게 '삶의 교육'이라 해도 좋으리. 그런 맥락에서 나 혼자 꿈꾸는 상상의 나래 몇 가지를 펼치면 이런 것이다. 먼저 음식부터 보자. 그동안은 아이들 호기심을 살려, 조금이라도 요리에 참여시키고자 했다. 고사리손으로 칼질하고, 간을 맞추고, 불을 다루는 일들을. 이제 시작일 뿐이다.


만일 대가족 캠프라면 조금 더 폭을 넓히고 잔치 분위기로 하면 좋을 거 같다. 단, 교육과 성장이라는 ‘밑밥’을 깐 잔치. 누구나 돌아가면서 한 끼를 책임지되, 그 한 끼를 총괄하는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 다만 이 책임은 의무가 아닌, 해보고 싶은 일로. 누구나 배고프면 먹고 싶으니까. 만일 누가 김밥을 메뉴로 정했다고 하면 그 일 전체를 주관한다. 기획하고, 연구하고, 일을 나누어 맡기는 전 과정을. 누구에게는 어떤 재료를 맡기고, 또 누구에게는 된장국을 끓이게 하고... 이때 가장 마음을 써야 하는 건 역시 아이들이다. 작은 과정 하나하나 아이들이 기꺼이 해낼 수 있을까?

음식을 먹으면서도 되도록 음식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음식 하면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에 대한 이야기, 그 외 음식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눈다. 육식과 채식, 과식과 편식... 시간에 쫓기고, 외식으로 밀려난 ‘밥상머리 교육’을 제대로 나눌 필요가 있으리. 음식 하나에도 모든 삶과 교육이 들어있을 테니까. 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하리.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교육이며, 세대와 세대를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교육이기도 하다.


각자가 먹은 설거지는 각자가 하고, 공통의 설거지는 되도록 준비 과정에서 해치운다. ‘설거지’라는 개념 자체를 머리에서 지운다. 음식을 맛나게 먹듯이 설거지는 그 여운을 즐기는 과정으로. 가벼운 설거지는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


대가족 캠프지만 그 기본은 산골 체험 살이다. 다만 이 체험은 그 동기가 그렇듯 소비가 아니다.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자기 안의 가능성을 찾고, 스스로 서는 힘을 키우는 생산적 과정이다. 그렇다면 과정과 결과 역시 창조로 이어져야 하리. 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래 짓기, 영상 만들기, 발표하기 같은 활동들을 일상으로 끌어내야 하리.


‘따로 또 같이’ 가야, 멀리 가고, 또 오래 가리


사람이 많다 보면 가장 어려운 게 사람 관계다. 다름이 다툼이 아니라 성장하는 관계여야 하리. 우리가 같이 어울리는 이유는 창조와 나눔이다. 이 대가족은 혈연에 기초한 게 아니다. 필요에 따라 모이고, 다시 다음을 기약하며 흩어지는 자유 관계. 의무는 적게, 기쁨은 많게. 그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살림과 돌봄의 가치를 더 깊이 배우고 익힌다면 가장 바람직한 장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함께 노래 짓기는 내 꿈 가운데 하나. 이전 창조 놀이에서 다룬 대로 ‘숲수저 노래단’을 잘 살려볼 기회이기도 하다. 부모들이 함께 하면 노래가 한결 더 대중성을 가지리라 기대한다. 누구든 살아가다가 흥이나 끼가 살아나면 그걸 함께 살려가는 방식으로. 같이 가사를 다듬고, 멜로디를 잡으며, 노래를 만들어간다. 노래와 더불어 리듬에 맞는 율동이나 춤을 곁들인다. 여러 세대가 함께 하는 ‘나우리 춤’도 좋으리라.


대가족 단위로 캠프를 꾸려간다면 내 아내 몫도 적지 않을 거 같다. 아내는 사실 내 글쓰기 선생이자, 오랜 동료다. 서울 살 때부터 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했고, 책도 여러 권 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 역시 아내 덕일만큼 내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다. 더불어 아이 부모들 몫도 내게는 뜻깊은 배움으로 스며들 거 같다. 그야말로 세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관계 속에 삶의 교육과 성장을 기대하게 된다. 여기에는 아이 어른 구분이 없으리라.

‘따로 또 같이’에 조금씩 익숙해진다면 대가족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 이를테면 제주도 한 바퀴를 자전거로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함께 하는 해외여행도 되도록 아이들이 안내하고 통역하는 걸로 하고 싶으니 꾸준히 조금씩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근데 이보다 더 좋은 건 국내외 인연이 닿는 곳과 연결하여, 여행이 아닌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을 체험하는 기획을 해보는 것도 뜻이 있으리. 제주도를 간다면 그곳에 뿌리를 두고 사는 인연들과 연결하여 삶의 교육을 확대하면 더 좋으리. 산사를 찾아 마음공부를 해도 좋고, 여의도 증권가를 찾아 돈 공부를 해볼 수도 있으리. 나는 AI와 로봇에 관심이 많아, 관련 박람회장을 같이 둘러보는 것도 좋으리.

이렇게 나 개인의 상상만 해도 다양하다. 아마 사람들이 다 모여 생각을 나누면 뜻밖의 그 어떤 계획이 많이 나올 거 같다. 삶이란 뜻하는 길보다 뜻밖의 길에서 만나는 인연이 때로는 더 깊은 배움과 성장을 가져다주니까.


그렇게 나는 조심스레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다. 나이 들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움츠리게 되는 데 아이들이 나를 이끈다. 젊은 부모들이 나를 잡아준다. 서로서로 돌본다. 서로를 보듬는다. 서로를 살린다. 그렇게 가는 데까지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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