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놀이(11)-비둘기 똥 청소
이오덕 선생은 내게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알려 주셨다. 선생이 낸 책 가운데 특히 내가 많은 영감을 받은 책이 바로 『일하는 아이들』이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 일을 도와주면서 겪게 되는 여러 일들이 잘 나와 있다.
다만 이 책의 시대 배경이 제법 오래되어, 요즘 자라는 아이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는 그 정신만은 살려야 한다고 본다. 농경 사회는 누구나 일하며 자랐다. 바쁠 때는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말이 있듯이. 근데 이 일이 보통 귀한 게 아니다. 아래 출판사 서평으로 우선 간단히 보자.
‘일하면서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어린이, 목숨 있는 모든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어린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어린이……. 산과 들에 기대어 고되게 일하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자랐던 이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온전히 ‘삶’으로 살아 있다. 건강한 사람으로 살아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사람의 삶 가운데서 무엇이 가장 값진 것인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노래는 마침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요즘은 농부가 드물고, 그나마 일하는 방식이 첨단화되어 흙을 만지지도 않고 농사를 짓기도 한다. 텃밭 정도를 일구어야 흙을 제대로 만질 수 있을 뿐이다. 시골서 자라는 아이들조차 농사일과 멀어진다.
일로부터 멀어지는 아이들, 일이 고픈 아이들
그럴수록 아이들은 일이 고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모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 가능하다면 식구 한 사람 몫을 하고 싶은 게 아이들 본성이다. 다만 그게 의무가 되거나 강제되어서는 안 되는, 아이 안에서 올라오는 순수한 호기심과 가족에 대한 사랑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사회가 전문화될수록 아이들 바람은 점차 멀어진다. 요즘 일에는 전문성에다가 돈 그리고 속도까지 가세하니 아이가 끼어들기 점점 어렵다. 일이 갖는 고유한 생명성, 창조성, 자립심을 자라면서 익힐 기회가 드물다. 학교에서 텃밭 돌보기나 체험 학습으로 그 고픔을 메우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여름, 아홉 살 웃꿀이 쓴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보라고 기꺼이 내민걸.
주욱 읽어가다가 내 눈에 확 띄는 글이 있는 게 아닌가. 아파트 창가에 널브러진 비둘기 똥을 치운 내용이다. 이거야말로 일하는 내용이 아닌가!
이 글을 보는 순간, 나는 이건 노래가 되겠구나 싶었다. 궁금한 걸 물었다.
“와, 좋은 일 했네. 웃꿀아,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비둘기 똥이 더럽잖아요?”
그런다고 그걸 아이가 치울 생각을 했다? 선뜻 와닿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가 나랑 산골 캠프를 하면서 일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아이들이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크게 위험하지 않으면 기꺼이 맡기는 편이다. 더 나아가 그런 일을 일부러 기획하여 미리 준비해 두기도 한다. 『일하는 아이들』 책에도 잘 나와 있지만 시골은 도시에서는 해볼 수 없는 아이들 일이 아주 많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해보면 일이 보인다. 요리를 해보면 요리가 눈에 들어오고, 청소를 해보면 청소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노래까지 만들어보자. 놀이를 일로, 일을 일기로, 일기를 노래로...'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삶을 가꾸고 또 꽃 피게 하니까.
“이걸로 나랑 노래 한번 만들어볼까?”
“좋아요”
나는 아이에게 일기를 토대로 인터뷰하듯이 물었다.
“어떻게 비 오는 날, 하게 된 거야?”
“비 올 때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니까, 괜찮을 거 같았거든요.”
일기장을 보니 아이는 처음부터 물총으로 한 게 아니었다. 비가 오니까 그저 물 한 컵 뿌리면 똥이 씻기리라 생각했다. 근데 막상 해보니 잘 안 떨어진다. 고민하다가 물총을 떠올린 거다.
나랑 같이 가사를 쓰고 다시 다듬고 하면서 아래처럼 완성했다.
<비 오는 날, 새 똥 청소>
비둘기가 똥을
여기 뿌직 저기 뿌직
우리 아파트 창가에도
뿌직 뿌직 뿌지직
비가 오니 청솔 해보자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
새똥 맞지 않겠지?
그릇에 물을 담아
차악! 차아악!
잘 안 떨어지네
그래, 좋은 생각났어
물총으로 쏴쏴!
똥을 밀어, 밀어 쏴쏴!
낭떠러지로 밀어, 밀어 쏴쏴!
물총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청소 끝!
속이 후련하다.
나는 이 노래에 뜻을 더 부여하고 싶다. 아이들이 하는 물총놀이란 거슬러 가면 원시 시절 사냥과 이어진다. 활이나 총은 사냥과 전쟁에서 중요 무기였다. 남자아이들에게 사냥은 놀이이면서 생존과 맞닿은 일이기도 했으리라.
그만큼 사냥은 우리 몸 뼛속에 깊이 박힌 삶의 원형에 가깝다. 먹느냐? 먹히느냐? 삶에서 이보다 더 절박하고 기본적인 게 있을까? 당시 아이들은 자기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단련하고 키워가야 했으리라.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뿌듯함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서로 맞물려 있으리라.
요즘 남자아이들이 전쟁 게임에 잘 빠지는 원인이 다양하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가면 바로 이 원시 사냥이 갖는 짜릿함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스마트폰 스크롤을 빠르게 넘기는 건 채집 활동의 잔재에 가깝다. 땅바닥에 널린 게 먹을 풀이지만 늘 같은 걸 먹기보다 새로운 걸 먹고자 하고, 더 영양가 있는 거, 더 좋은 걸 찾고자 이리저리 다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근데 이젠 물총놀이조차 아이들끼리 함부로 하기가 어렵다. 놀이 과정에서 몸을 다치지 않더라도 마음을 다친다면 더 이상 놀이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재미와 다툼의 경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그만하자고 할 때 딱 그만두는 게 어렵다. 몸으로 안전하더라도 마음이 다치면 그 놀이를 지속하기 어렵다.
가상 놀이보다 현실을 가꾸어 가는….
앞뒤가 이러다 보면 점점 아이들은 현실 놀이보다 가상 놀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웃꿀은 그런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 청소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사냥감이나 다툼의 여지가 있는 친구들과 총 놀이 대신 새 똥을 치우는 용도로. 살아있는 비둘기 사냥 대신 비둘기 똥을 ‘물총으로 사냥’하는….
아이의 이런 마음이 어른까지 잘 이어지면 좋겠다. 고개를 돌려 인류 전체를 바라보면 곳곳에서 지금도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무기는 발달하고, 군인 민간이 상관없이 무차별 살생이 벌어지고, 아이들 역시 그 틈바구니에서 죽어간다.
무기를 녹여내어, 아이들 교육에 쏟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한낮 꿈이겠지만 아이가 만든 노래가 조금이나마 총을 다른 눈으로 보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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