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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창조로 이어지는 음식 만들기

창조 놀이(9) 요리 출발은 고유한 자기 미각이다

by 빛숨 김광화

내가 하는 어린이 캠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바로 음식 만들기다. 아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같이 나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먹을거리를 스스로 마련하여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심지어 갓난아기조차 젖 빠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나? 아이가 자라는 만큼 이 힘도 커져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교육이리라.


예전에 나는 아내한테 일년 동안, '밥상 안식년'을 준 적이 있다. 정말이지, 요리라는 살림이 식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될 때 오는 중압감이 크더라. '오늘은 뭘 먹지? '. 이런 무게감은 다른 식구들한테는 결과적으로 소외를 낳는다. 특히 아이들은 자라는 만큼 요리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배고픔이란 동기를 잊고,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모르고, 먹는 기쁨이 먹어야 하는 의무로 바뀌곤 한다. 음식은 인생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데도 말이다.

음식이 집을 나선다


그러다 보니 '음식이 집을 나선다.' 가정에서 직접 해서 먹기보다 외식을 좋아하고, 학교도 단체 급식이다. 많은 사람이 요리를 그저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여기는 편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요리에 관심을 보이면 칼이나 불을 다루다가 다치거나 사고를 낼 위험도 두려워한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참 바쁘다. 온몸으로 뛰어놀 시간조차 부족하다. 거기 견주어 과일이야 음료야 이런저런 간식은 냉장고에 그득이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 셈이다. 배고픔이야말로 가장 좋은 반찬인데 그렇지가 못하다.


앞뒤가 이렇다 보니 몸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꾸 특별한 음식을 찾게 된다. 돈 주고 사서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짜고, 달고, 매운 편이다. 여러 사람 입맛에 맞추려고 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양념을 많이 넣은 요리는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게 한다. 더 심각한 건 사람마다 가진 자신만의 고유한 미각이 뒤틀리거나 묻힌다. 이런 음식에 익숙해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입이 짧은 사람’이 된다.

입이 짧은 아이? 절대 미각의 다른 이름!

캠프에 오는 ‘웃꿀’이 역시 '입이 짧다'고 엄마는 걱정이다. 덩치는 또래 견주어 큰 편인데, 먹는 건 적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가 입이 짧다는 건 뒤틀린 미각을 말해준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은 가장 섬세한, 자기 다운 미각을 가졌다. 잃어버린 미각을 되살리자면 직접 음식을 해보는 길밖에 없으리.

올 초, 캠프 때다. 밖의 날씨는 영하 10도. 찬 바람마저 불어, 무척 춥다. 추울수록 무엇보다 잘 먹는 게 먼저다. 아이에게 물었다.

“넌 이번에 무슨 요리를 할래?”

“글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열두 달 토끼밥상』이라는 요리책을 보면서 생각해 봐.”

“알겠어요”


이 요리책은 저자가 어릴 때부터 손수 음식을 만들고 또 자기만의 작은 텃밭을 일군 경험이 뒷받침되어 쓴 어린이책이다. 아이는 그 책을 읽더니 마음을 정했나 보다.

“떡국으로 할래요.”

“좋아. 추운 날씨라 더 기대되네. 하다가 잘 모르면 ‘싱니’(아내 별명)에게 묻거나 도움받아”


사실 싱니(장영란)는 자연 요리책을 세 권이나 낸 요리 전문가다. 그렇게 싱니 도움을 받아 육수를 준비했다. 근데 육수가 우러나는 과정에서 아이는 그 냄새가 싫단다. 맹물로 그냥 끓이겠단다.

나는 속으로 ‘옳거니!’ 했다. 나는 아무거나 먹는 건 잘하지만 내가 만드는 음식에는 육수를 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출출할 때는 다 맛있는데 뭐 복잡하게 할까. 아이는 냄새 때문이지만 어쨌든 육수를 내지 않는 요리로 바뀌었다.

“그럼, 넌 어떻게 끓이고 싶어?”

“맹물을 끓이다가 떡을 넣은 다음, (국) 간장으로 먼저 간을 하고. 뒤이어 소금으로 간을 맞출래요. 그리고 달걀 넣고 김 넣고, 마지막 참기름 좀 넣을 거예요”

“좋아, 해보자.”


과정 하나하나 집중하는 아이

맹물이 끓는 동안

“노지, 김 어디 있어요?”

“여기. 이렇게 가위로 작게 여러 번 잘라, 그릇에 담아 뒀다가 나중에 넣으면 돼”

아이가 집중해서 김을 가위를 자르는 모습이 귀엽다.

맹물이 끓고 떡을 넣는데 가만 보니 솔직히 너무 허전하다.

“아무래도 너무 심심할 거 같아. 채소를 조금이라도 넣는 게 어때?”

“양파 좀 넣을게요.”

양파 반토막을 작은 과일칼로 조각조각 낸다.

“아, 매워.”

“양파는 매워. 눈물 나게 하지. 나중에 공부하면 알게 될 거야. 다 썰었으면 잽싸게 넣자.”

“엄마가 하는 걸 보니 (양파 쓴) 도마째 들고, 냄비에 넣던데 해볼까?”

“해봐…. 잘하네.”

“간장 어디 있어요?”

“여기”

“내가 숟가락으로 받칠 테니, 노지가 좀 기울여 주세요. 내가 그만할 때까지”

그렇게 국간장 두어 술을 넣는다.

“이제 소금 넣어야겠어요”

“간을 한번 보고 넣어야지.”

“아직 싱거워요.”

“자, 소금 통”


과정 하나하나 쉽지 않으니 더 집중하는 아이

아이가 소금통을 기울여 숟가락에 따르지만, 이 역시 아이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씩은 안 나오고 세게 흔들면 너무 많이 나올 테니까. 섬세한 손놀림과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아니면 작은 스푼으로 하면 쉬울 테지만 자칫 잔소리가 될 테니까 그냥 넘긴다. 웬만하면 아이 방식을 존중한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속도나 효율성이 아니라 '스스로 열어가고 싶은 성장의 문'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아이 식으로 하기를 서너 번 만에 간이 맞단다.


이어서 달걀을 푼다. 이것도 처음 해보는 아이한테 쉬운 일은 아니다. 달걀을 깨뜨리는 것부터 어렵다. 냄비 모서리에 달걀을 부딪쳐 금이 갔지만 잘 안 나온다. 두 손으로 힘을 주자, 안에 내용물이 조금 냄비 밖으로 튄다.

“노른자는 다행히 냄비에 들어갔어요. ㅎㅎ”

“그래. 어렵지. 두 번째 달걀은 좀 나을 거야.”


첫 번째보다는 낫지만 역시나 손에 달걀이 묻었다. 냄비 속 노른자를 찾아서 잘 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숨바꼭질하듯 찾아서 으깨며 젖는다. 그래서일까. 과정 하나하나 아이는 온전히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반 술을 넣고 요리를 끝냈다.


아이는 같이 먹을 다섯 사람 몫을 그릇마다 국자로 떡국을 나누어 담는다. 자, 아이만의 고유한 떡국이 나왔다. 맛은 어떨까? 내 입에는 ‘살짝’ 싱겁다. 근데 나 빼고는 다들 너무 맛나다고 잘 먹는다. 그러니까 내 입맛이 짠맛에 살짝 길든 상태인 셈이다. 만일 내가 떡국을 끓였다면 아이는 몇 숟가락 먹고 말았을 것이다.


근데 지금 아이는 먹는 자세부터 다르다. 마치 제 떡국을 누가 뺏어 먹기라도 할까 봐, 온몸이 그릇으로 향한다. 오직 떡국! 반찬으로 다른 사람이 갈치를 구웠지만 보지도 않는다.

“웃꿀아, 아무리 맛있어도 허리를 펴고 편한 게 먹어야지. 너무 빨리 먹는다.”

그제야 아이는 조금 여유를 찾는 듯하다. 정말이지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다 먹는다. 숨소리조차 멎은 듯. ‘입이 짧은 아이’라고 걱정하던 아이가 맞는가 싶게 집중해서 먹었다.

이렇게 손수 요리를 하면 맛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반찬이 배고픔이라면 두 번째 반찬은 손수 요리하기다. 이날은 사실 이런저런 일이 많이 겹쳐, 식사가 조금 늦은 편이었다. 요리를 시작할 때 이미 배가 고파온 상태였다. 그냥 밥만 차려놓아도 달려와서 먹었을 것이다.


배고픈 사자가 사냥감을 찾듯이…


근데 배고픔을 참고, 요리를 직접 해야 했다. 배고픈 사자가 사냥감을 찾듯이…. 그 과정에서 얼마나 침이 고이고 배가 더 고팠을까. 이렇게 배가 고파 오면 사실 간을 본다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만 요즘은 먹을 게 넘친다. 배고프기 전에 마구 음식이 들어와, 몸이 가진 고유한 감각을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배가 고프면 감각이 깨어난다. 입에서는 군침이 자신도 모르게 돈다. 코는 냄새에 민감하게 바뀐다. 아마 아이가 육수를 거부한 것도 코가 민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때는 무심하게 넘어갈 비릿한 육수 냄새가 거슬린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면 배가 고플 때, 우리 몸은 두루 깨어난다. 원시 시대라고 해보자. 배가 고프면 눈앞에 먹을 게 뭐가 있나? 살피게 된다. 심지어 둘레 풀조차 끌리게 된다. 행여나 먹을 수 있을까? 냄새 맡고 혀로 맛을 살짝 볼 것이다. 이게 본능이다. 이 모든 감각이 온전히 깨어날수록, 누구나 절대 미각을 되찾게 되지 않을까.


손수 요리를 하면 맛이 좀 없어도 잘 먹는다. 아니, 맛이 없을 수 없다. 자기 손맛에다가 자기 존중감에서 오는 뿌듯함마저 가미된 특별 음식이니까. 좀 부족한 맛이어도 실패가 교훈이 되는 '마법의 맛'으로 바뀐다. 이래저래 아이가 끓인 떡국은 새로운 요리, 창조다. 책에서 나름 영감을 받았겠지만 자신만의 취향과 감각을 살린 고유한 요리가 아닌가. 또한 지속적인 창조는 기존 요리에 맴도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미각에서 가능하리.


캠프가 끝나고 아이 엄마가 전화했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저녁으로 떡국을 끓였다'고. 자라는 아이들이 소꿉놀이로 살림을 살아보는 것만 해도 이런저런 교육 효과는 적지 않다고 한다. 하물며 손수 할 때, 그 효과는 어떨까?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의 교육’은 그 효과를 한마디로 하기가 어렵다. 통합 교육이니까. 몸과 마음, 생물, 미생물, 물리, 화학, 요리, 미각, 후각, 균형감각, 미세한 손놀림, 정성, 자기 안전... 그 모든 걸 아우르니까. 어려운 점이라면? 아이가 미처 못한 뒷정리는 내 몫으로 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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