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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른들은 못 말려

창조 놀이(8) -'숲수저 노래단'을 꾸리며

by 빛숨 김광화

나는 동시를 좋아한다. 내게 동시란 '내 안의 어린이'를 만나는 시간. 그건 다시 두 시간이 겹친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아이와 지금 내 안의 아이.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내 안의 아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삶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난다.


그 내용을 보자면 작고 낮고 여린 생명들에게서 높고, 귀한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어린 시절 나를 돌아보면 빨리 어른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저 하루하루 또래들과 어울려 논다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책을 보곤 했다. 또래에 견주어, 몸이 약했던 나는 혼자서 뭔가를 만드는 일을 특히 좋아했다. 손이 성할 날이 드물 정도로...'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몰입하던 시절이었다고나 할까.


역사가 E.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내게는 동시가 그렇다. 어린 시절에 가졌던 호기심, 조금이나마 더 성장하고자 하는 열정, 뛰어놀고 싶은 몸... 현재 내 삶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만의 저속 노화 방식이기도 하리.


그래서일까. 내 글쓰기 가운데 동시 쓰기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쓴 동시 가운데 열 편 남짓은 작곡가 선생님 눈에 들어, 노래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이들과 산골 캠프를 같이 꾸리면서 내 동시와 동요도 바뀌고 있다. 요즘 아이들, 할 말 참 많다. 내 할 일이란 이런 아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게 첫째다. 이 가운데 시가 되겠다 싶으면 메모해서 동시로 쓰고, 동시 가운데 노래가 된다 싶으면 동요로 다듬는다. 이제는 이 모든 과정을 되도록 아이들과 함께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동요를 내 이름으로 발표하는 게 꺼려진다. 공동 창작이 아닌가. 그럼, 지분(?)이 어느 정도인가를 묻는다면 노래마다 다 다르다고 하겠다. 중요한 건 아이들 관심과 참여가 점차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지난여름 캠프 때였다. 무슨 말끝에 한 아이가

"어른들은 못 말려!"


이런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토하듯이 나오는 말이다. 아이가 어른들을 말리고 싶지만,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안타까워하는 말이 아닌가. 내가 강조하는 글쓰기는 바로 이 '자신도 모르게 토하듯이 나오는 말'이 핵심이다. 절실한 만큼 충분히 토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할 말이 너무 많다 보면 말로 다 하기가 어렵다.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다. 특히 감정을 그득 품은 말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노래가 제격이리. 노래란 부르고 또 부르는 마음이니까. 그 마음 또 누군가에 전해지면 모두의 노래가 될 테니...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뭘 못 말리는데?"

아이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말을 나는 받아 적는다. 적으면서 이건 노래가 되겠구나. 녹음하면 더 좋았겠지만, 이 참에 아이들과 함께 노래로 만들어보자. 두 아이랑 주거니 받거니 하여 가사를 썼다. 곡을 입히면서 다시 다듬어 아래처럼 일차 완성했다.


<어른들은 못 말려>


어른들은 못 말려

낮잠 잘 땐 못 말려

깨울 수가 없어 (으응, 졸려)


어른들은 못 말려

일할 땐 못 말려

같이 놀자고 해도 바쁘다고만 해 (바빠, 바빠)


어른들은 못 말려

어른끼리 말할 땐 끼어들 수 없어

끼어들면 뭐라 뭐라 해 (우리, 얘기하고 있잖아!)


자꾸자꾸 그럴 거예요?


우리 마음도 알아주세요

우리도 좀 챙겨주세요.

우리도 사람이에요


이 노래를 아이 부모님들과 먼저 공유했다. 이 동요를 더 넓게 공유하려고 하니 내 이름으로만 발표하는 게 말이 안 되더라. 이런 내 고민을 다시 여러 사람과 나누었다. 역시 고민은 나누면 가벼워진다. '공동 노래단을 꾸리고, 공동 창작에 대해서는 노래단 이름으로 발표하자' 한다. 그럼, 노래단 이름으로는 뭐가 좋을까?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이름이 '숲수저 노래단'이었다.

'숲수저'란 흔히 쓰는 ‘금수저/흙수저’ 같은 말에서 분위기를 바꾸어 나온 말이다. 참다운 부(富)란 재산(돈)이나 물질보다 먼저 자연을 누리는 것이리. 금도 자연, 흙도 자연, 우리 사람도 몸으로는 자연이지 않는가. 특히 자라는 아이들은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숲수저 노래단'은 금수저 흙수저 차별하지 않고, 다 품는 그런 수저가 되고 싶다. 숲은 다 받아주고, 다 품으니까.


그리하여 출발선에 선, 지금 우리는 우선 가사에 중심을 둔다. 여기에다가 곡을 입히고, 노래를 부르는 건 AI 도움을 받는다. 작곡가 선생님을 수시로 만나는 건 솔직히 어렵다. 내가 노래를 바란다고 바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AI 도구는 나름 쓸만하다. 무엇보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만들 수 있어, 편리하다. 또한 아이마다 나름 악기를 익히고 있고 또 나와 함께 작사 작곡도 해보면서 그 실력도 점차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노래 짓기는 쌓이고 쌓인 마음을 토해내는 창조 놀이다. 이 역시 그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으리. 억울한 또는 억눌린 감정은 부르고 또 불러, 자신 먼저 치유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안에서 자꾸 쌓이면 이 역시 상하고 또 병들게 마련이다. 자신이 지은 노래는 점차 다시 자기 거울이 되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어른이 된다면?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 아이랑 잘 놀아주려면? 지금 나는 무얼 해야 할까? 혼자서도 잘 노는 법은?...


치유와 창조는 함께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신과 달리, 인간은 자기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 삶이란 자기 한계와 마주하며, 자기 다운 빛깔로 피어나는 과정이리. 그런 맥락에서라도 노래 짓기는 아이 자신을 가꾸며, 성장하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는 그런 아이들 속에서 잠시 세월을 잊는다. 동시 속에서 다시 아이가 되고, 동요를 부르며 조금 더 어른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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