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린 Mar 01. 2024

비포 애프터를 비교해 보았다.

평일 낮에 핫플레이스를 가다.

반백수가 되어보니, 치열하게 살았던 그때와 지금을 수시로 비교하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시간을 누려도 될까?' 하는 의심과 함께 불안함도 있고, 갑자기 주어진 여유에 낯설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졌다가 비워지기도 한다. 때 아닌 질풍노도의 40대를 보내고 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20년간은 9 ( 출근시간)  to 6 ( 퇴근시간) 이 내 인생 절반을 움직였던 기준선이었다. 10 ( 지각) to 10 ( 야근) 인적이 더 많았던가...

지금은 아이들 등교와 하교가 내 하루의 축이 되고 있다. 그런 내 하루를 가만히 비교해 보았다.


출근 전/ 아이들 등교 전

출근을 위해서 분주했던 오전 시간은 사실 달라진 점이 없다.

아침식사라고 하기 부끄러운, 간식 같은 음식들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서 같이 먹는다.

핑거푸드라고 하면 좀 있어 보일라나..

다만, 아이들을 향해 외치던 날 선 잔소리를 안 하게 되었다.


"얘들아 빨리 좀 해, 엄마 늦었어!!!!"


대신에,


"너희가 알아서 해, 늦으면 너네만 불편하지 뭐"

( 날이 서진 않았지만 매우 빈정댐)  


출근 후 오전/ 아이들 등교 후 오전

예전이라면 출근한 시간이었을 오전, 밤새 쌓인 메일 수신함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을 시간이다.

여기서 쳐낸다는 의미는, 매일매일 받는 메일에는 바이어가 보낸 의뢰, 그리고 나의 매니저가 보낸 지령들이 담겨 있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나름 "업자"들 전문 용어라고 할까.


지금은,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핸드폰을 동시에 오픈하고 그 간에 못 본 모든 시리즈 및 SNS를 쳐낸다. 


점심시간

그렇게 지령들을 쳐내고 나면 12시 반, 직장인의 오아시스 같은 점심시간이 된다.

브런치 처음 시작했을 때 ep.1에 적은 바와 같이 나와 동료들은 출근과 동시에 점심메뉴를 논한다.

매출을 보고할 때 보다 세상 그렇게 진지하고 논리적일 수가 없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 외진 곳에 가서 혼밥을 하기도 한다. 지하철 타고 다섯 정거장 간 적도 있다.

사람과 말 섞기 싫어서.




지금은, 점심시간이 매우 유동적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시리즈별 종료 시간에 내가 컨트롤당하기도 한다.

가끔은 오랜 동료 혹은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는다, 사람이 그리워서...

가능한 제일 힙하다는 곳을 서치 한다. MZ 가 아닌데 굳이 MZ 가 가는 곳에 가고 싶다.

회사 다닐 때는 평일에 이런 곳에 앉아서 밥 먹는 사람들이 항상 궁금했는데. 아, 이 시간에 내가 여기서 밥을 먹다니. 감격과 현타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오후 근무시간 / 아이들이 오기 전

오전에 벌려놓은 일들을 정리하고 마무리한다, 때로는 업무 기한이 촉박해 화장실도 참고 일한다.

가끔 이러다 방광염 올 것 같다고 매니저를 협박하기도 했었는데, 진짜 걸렸었다.

아주 가끔은 책상에 앉아서 졸기도 한다. 직장인의 춘곤증은 계절이 없는 걸로 안다.


지금은, 아이들의 귀가시간인 4시가 되면 초조하다. 업무 기한이 닥쳐왔을 때 보다 더 심장이 뛴다.

이 넷플 시리즈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어폰 끼고 볼까? 설거지 하는 척하면서 몰래 마저 볼까?

점심을 분명히 먹었을 텐데 왜 항상 아이들은 집에 오면 배가 고픈 것인가.


그 후 저녁 일과는 식당 이모님과 인간 식기 세척기의 무한 반복이다. 특별할 게 없어 생략한다. (사실은 글 쓰다 욕 나올까 봐 생략한다 )



쓰다 보니 자기반성의 시간이 된 것 같아 화끈거리고 숙연해지는데, 사실은 주어신 시간과 여유에 감사하고 싶었다.

플릭스에게 내 일정이 휘둘리기도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주도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면서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메일에 적힌 지령과 업무 기한의 압박에서 벗어나서, 티브이를 보고 싶으면 티브이를 본다.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음악을 듣고, 글을 쓰고 싶으면 언제든 글을 쓴다. 점심 자투리 시간이나 퇴근 후가 아닌 해가 떠있는 뜬금없는 시간에도 운동할 수 있다. 운동하다가도 전화나 메일이 왔을까 조마조마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십여 년 전에 사용하고 처박아둔 재봉틀도 꺼냈다.


천천히, 내가 나를 알아가는 중이다.



3월을 끝으로 나를 구속했던 목줄을 주인이 풀어 주었다.

소속감은 없어졌지만, 이제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