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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린 Sep 13. 2024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다

무급이라고 했다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다.

열심히 배운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집이 멀어서 할 수 있을지, 수락한 나도 고용한 고용주도 반신반의하며 일단 일주일 해보기로 했다.

집에서 나서서 일터까지, 걷고 기다리는 시간 빼고

버스와 지하철 타는 시간만 1시간 반을 꽉 채운 험한 길이라 각오가 필요했다. 

서울 시내 운전은 워낙 변수가 많아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

기름값과 주차료를 감당하자니 수지타산이 전혀 안 맞는 무급알바였다. 


나는 일을 배우고 싶었고,  사장님은 경력 없는 초짜를 데려다 쓰기 불안했을 것이다.

경험 삼아 하루 4시간 4일 체험만 해보기로 상호 협의한 것.  


월요일 첫 업무

한자로 꽉 채운 명함을 카피해 달라는 고객님이 오셨다.

뭐 어렵겠는가, 한자 사전이 있는데.

아니다. 어려웠다.

아무리 검색을 해도 안 나오는 한자도 있고, 그 비슷한 한자 폰트도 없었다. 

( 알고 보니 일어였다. 디자이너는 박학다식해야 한다! ) 

없는 획을 거의 그리 디시피 해서 완성했는데 고객님이 싫단다. 취소한다고 한다.

첫 업무가 이렇게 끝나는 게 아쉬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하고 설치된 폰트를 몇 바퀴를 돌고 돌아 찾고 다운로드하고 난리를 친 끝에.

마침내, 호랑이 기개를 닮은 힘찬 궁서체로 마지막 시안을 넘겼으며,  기어코 고객님께 쌍따봉을 받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화요일 업무

또 다른 명함 제작요청이다.

원샷 원킬 들어보았는가.

한 번에 오케이 해주신 고객님은 무급알바의 위신을 높여주셨다. 이틀 만에 이런 업무력 무엇인가


수요일 업무

목사님께서 은혜로운 "사진 명함"을 요청하신다.

스톡사이트에서 기가 막힌 사진을 찾아 박아드리고, 기분 좋은 오케이 받고 마무리했다.

모태신앙이 이럴 때 빛을 발한다. 할렐루야. 


나 너무 일을 잘하는 것 같지 않냐고, 옆에 앉은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언니가 있어서 좋아요" 

라고, 듣고 싶은 대답은 이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존재가 도움이 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약속한 알바기한 하루 남겨두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이 일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문제였다. 

내 계획은 약속한 4일 간만 해보고 그만두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이 될 줄은 몰랐다. 

일이 할만하네라고 느껴갈수록, 출퇴근길의 멀미가 심해졌다. 체력이 열정을 못 따라가는 것이다. 


목요일, 알바 마지막 날

쌍따봉 날리신 한자 명함 손님이 오셔서 명함을 픽업해 가셨다. 

마지막 따봉을 주시고 가시는데, 나 왜 벌써 섭섭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은 물리적으로 출퇴근이 불가능한 길이었기에,  사장님께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했다 말씀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집에 왔다. 

오랜만에 가진, 피곤한 퇴근길이었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질 줄 알았다.

새로운 일을 해 볼수록 더 많은 선택지가 놓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다. 


일단 일주일 동안 쌓인 집안일 좀 하고. 음쓰나 버리자. 




백수가 돼서 알게 된 꿀팁이다.

음쓰는 아침에 버려야 한다. 

일찍 일어나는 아줌마가 깨끗한 음쓰통을 마주한다. 

(아파트 단지 관리 규칙에 따라 다르겠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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