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덜트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
방학 시작 전 교수님과 상담을 하던 중, 교수님께서 내가 영어덜트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을 참고하여 내게 책을 한 권 주셨다. 교수님은 이런저런 작가들의 책을 읽어봤냐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독서량이 처절하게 적었기에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다행히 아몬드나 페인트 등 몇몇 유명한 것들을 접해본 것이 다행이었다. 요즘 내가 가장 고민으로 여기는 것은 내가 문창과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높은 학점, 학과에서 2등 한 과탑이라는 사실이 한 몫했다. 학점을 이렇게 잘 받을 줄 몰랐는데 다행이다. 내가 편입을 해서 경제학을 배우게 되면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과생들과 친해지면서 학과 행사에도 호감이 가기 시작했다. 교수님들도 꽤 마음에 들었다. 1학기 시간표 때와는 다르게 2학기 시간표를 잘 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기분은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도 현재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촉진시켰다.
교수님이 주신 페퍼민트라는 소설책, 그리고 내가 편입 전공 준비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앤더슨의 경제학, 페퍼민트는 1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혔다. 반면에 경제학 책은 첫 페이지에서 닫고 싶어졌다.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 페퍼민트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면, 줄거리는 나름 평범했던 것 같다. 아픈 엄마를 돌보는 19살 여학생과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엄마를 아프게 만들었던 바이러스를 퍼뜨렸던 단짝 친구의 가족. 두 여학생은 그 후에 만남으로써 서로가 불편했지만 다시 친해지고, 결국에는 다시 절망하고 만다. 바이러스를 퍼뜨린 가족의 엄마는 그날의 일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이미 책임은 질만큼 졌다고 착각하면서. 아픈 엄마를 돌보는 시안은 해원이 그저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해원이 살아온 삶은 힘든 축에도 끼지 않는다는 것을. 해원의 가족은 아직 책임을 전부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깨닫길 바랄 뿐이다.
해원과 그녀의 가족이 시안의 가족에 관한 일을 알고 싶지 않아 하고 그들과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가 이해가 갔지만, 시안의 입장에선 분할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이라는 나이에 아픈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숙명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게 사는 그 기분이 이해가 갔다. 책이란 그런 힘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물들의 상황에 동화되어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사람들은 긴 삶을 살면서 공감능력을 향상해 가고 겪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에 대한 간접 경험을 위해서 만든 것이 책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시안의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고 한 것도 독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안의 아빠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시안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 때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안이 어린 나이에 청춘을 다 바쳐가며 앞으로도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했을 것이다.
시안은 내내 아빠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빠는 시안을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그 고통에 빠져있던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같은 처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봐도 소름이 끼쳤다. 19살은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1년 후에 어른이 되는데 무슨 보살핌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 19살을 떠올려보면 그때 내가 그랬다. 어느 때보다도 관심이 필요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가지는 관심과 그 외의 것들도. 시안처럼 덤덤하게 살아가면 어느새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나중에는 공허해질 것이다.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암흑같은 순간이 그렇게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냐고 말이다. 특정하게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는 바이러스에 의한 비극의 시작. 하지만 누군가는 사과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용서를 해야 끝나는 감정의 응어리의 소용돌이.
시안이 용서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용서는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순간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줄거리를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한 교훈을 전해주고 메세지도 확실하게 전한다. 무엇보다 한 번에 술술 읽혀야 메세지가 제대로 닿을 수 있다고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짧고 평범한데 뭔가 감동도 있으면서 전하고자 하는 바도 확실하는 군더더기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스토리. 나도 나중에 영어덜트 작가가 된다면 이 작가와 같이 깔끔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더 사랑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 앞으로의 미래따위 다 잊고 그냥 현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도 나중에 내가 웃을 수 있을지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