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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Dec 16. 2024

토북이 이야기(6)

오빠 토북이의 이야기

  부엉이가 돌아오자, 토북이는 간절한 마음으로 물었다. "저희 오빠가 보이나요?" 부엉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래바람도 거센 데다가 이 사막이 여간 넓은 게 아니잖니. 안 보여." 토북이는 한숨을 내쉬다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뒤돌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부엉이가 외쳤다. "그렇게 무작정 찾는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네 오빠는 자신만의 경주를 하는 중이니 너도 이제 그만 나머지 가족들을 찾아가렴." 이에 토북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멈춰 설 때마다 돌아와서 저를 일으켜 세워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줬던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저희 오빠가 아무리 악착같이 멈추지 않고 뛰어가던 토북이라도 지금 많이 힘들 거예요. 저는 반드시 오빠를 데리고 가족에게 갈 거예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부엉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는 날아서 사막의 상황에 대해 듣고 다시 돌아오마." 토북이가 물었다. "아저씨, 우리 친구 할래요?" 부엉이는 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반말은 안 된다." 

  토북이는 손을 흔들며 열심히 반대편으로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오빠, 어디에 있어. 어디서 주저앉아 있는 거야. 앞으로 조금만 나와주면 좋을 텐데. 그럼 내가 찾아갈 수 있을 텐데.' 토북이는 자신이 멈춰서 울 때마다 오빠가 해줬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운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다시 일어나. 아무리 힘들어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게 사막이야. 경주에서 멈춰 서고 돌아보면, 이미 패배자야. 그래도 가끔 쉬어가는 건 괜찮아. 나아가는 걸 까먹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토북이는 그때마다 짜증을 냈었지만 이제야 그게 자신을 위한 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래바람이 토북이의 눈앞을 가리고 모래알이 눈 안에 들어가 따가워 뜰 수 조차 없었지만 토북이는 눈을 감고 나아가며 곰곰이 생각했다. '오빠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멀리 돌아가진 않았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4개 정도의 큰 결승선을 거꾸로 지나오자, 토북이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왜 이곳만 이렇게 척박한 거지? 다른 곳보다 모래가 훨씬 까끌까끌해. 이런 공포감은 처음이야.'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기어 다니며 오빠를 불러댔다. "오빠, 어딨어!! 나와, 앞으로 나아가라며!! 오빠가 그랬잖아. 포기하면 끝나는 거라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오빠가 그랬잖아. 겁쟁아, 나오라고!!" 토북이는 울면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그때, 희미하게 보이는 커다란 바위 뒤로, 축 늘어져 있는 토끼귀가 보였다. '설마...' 토북이는 모래바람을 거스르며 그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오빠?" 토북이는 오빠를 흔들어댔지만 길쭉한 귀만 쏙 내민 오빠는 등껍질 안으로 몸을 최대한 말아 나오지 않았다. 토북이는 더 세게 오빠를 흔들다 이내 오빠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빠는 등껍질 안에서 미동도 없었다. "여기 있으면 죽어. 앞으로 가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자 조그마한 목소리가 등껍질 안에서 들려왔다. "가. 나 좀 내버려 둬."

   토박이는 멈춰 서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은 알아? 호랑이가 지금 결승선을 다 허물고 그 밑의 여우랑 승냥이가 새로운 왕국을 세우려 하고 있단 말이야. 우리가 해온 경주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이에 오빠가 말했다. "너는 이 경주가 없어지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이에 토북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경주가 없으면 우리는 뭘로 살아가는데. 오빠 왜 이래 갑자기." 오빠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끝이 없는 이 경주의 끝엔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친구들을 따라잡을 수도, 더 나은 결승선에 도달할 수도 없어. 한계라는 걸 마주했어. 이때까진 나아갈 수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리 나아가도 결승선이 안 보여. 지쳤어. 왜 경주를 이어나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안 나아가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나아가긴 했다만 다 부질없게 느껴져." 이에 토북이는 오빠를 때리며 말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엄마랑 아빠랑 막내가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지금 다들 힘을 합쳐서 호랑이와 나쁜 놈들을 응징해야 돼. 가족 걱정은 안 돼?" 

    오빠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호랑이와 여우와 승냥이들은 그렇게 쉽게 결승선을 새로 만드는 데 나는 이미 만들어진 결승선까지 가기도 버거워. 불공평한 경주에 참여한 난,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족에게 짐이 되기도 싫어. 그냥 여기 정착할래.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싫어." 이에 토북이는 화난 표정으로 울먹거리며 자신의 등껍질 안에 있던 선인장 꽃을 꺼냈다. 그녀는 숨어있는 오빠의 등껍질 사이로 꽃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거 냄새 좀 맡아봐. 이것 좀 봐봐. 내가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발견한 거야. 나는 결승선에 도착하는 것보다 이 꽃이 더 좋았어. 이걸 얻은 순간 결승선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어. 가끔가다 만나는 선인장 꽃은 아름답지만 나는 머무르지 않았어. 피는 순간은 정해져 있고, 아름다움은 짧으니까. 하지만 가다 보면 곳곳에 존재해. 그 맛에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오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고 했지? 그럼 미래를 생각하지 마. 그냥 나아가면서 꽃 따면서 미래는 잊어버리고 그냥 오늘 하루만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꽃을 찾아 기어가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우린 결승선을 지나 더 중요한 것을 얻게 될지도 몰라. 끝까지 안 가봤잖아. 숨어있으면 평생 보지 못해. 다들 오빠를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가서 호랑이를 막고 우리들만의 결승선을 각자 만들면서 나아가자. 죽는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누가 지고 이기는 게 사막의 경주가 아니잖아. 끝까지 가는 이가 성공한 거야." 

    오빠는 선인장 꽃을 바라보며 잠시 냄새를 맡았다. "이제까지 그냥 지나쳤었는데, 향기롭네.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이에 토북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지? 얼마나 좋아. 다 함께 맡으면 더 좋을 거야. 이걸 다른 동물들에게도 지나치지 마라고 하나씩 나눠주고 싶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 희망은 생각보다 힘이 세니까 말이야. 우리 꽃을 들고 호랑이와 그 패거리들을 몰아내자. 선인장 가시로 공격하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꽃이 핀 선인장은 아름답지만, 가시는 아프거든, 무척이나 찔릴 거야. 힘을 합치면 우린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만의 결승선을 계속 이어서 만들 수 있어.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 온 곳들에는 선인장과 꽃이 만개하겠지. 과육도 얼마나 맛있다고." 납득이 된 오빠는 동생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빠, 나는 느리니까 오빠 먼저 빠르게 뛰어가." 

    오빠 토북이는 토끼의 다리를 가졌지만 둘째 토북이는 거북이 다리로 빠르게 따라갈 수 없었다. 오빠 토북이가 뒤돌아 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토북이가 말했다. "오빠, 어서 가. 가족들이랑 먼저 가 있어. 나도 곧 따라갈게." 오빠가 떠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쉰 토북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뒤돌아봤다. 부엉이 아저씨가 위에서 다 보고 있었음을 안 토박이는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봤죠?" 그러자 부엉이는 날개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너도 빨리 결승선으로 향하렴, 그곳에는 너 같은 동물이 꼭 필요해." 토북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데 저는 너무 느린걸요... 가면 다 끝나있을 거예요. 제 경주하기도 너무 버거운데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너무 멀어요. 호랑이가 있는 곳은 너무 멀어서 빨리 갈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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