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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강아지들 그리려면 방랑을 멈춰야해

by 사온

내 첫 전시에 와서 소통해줬던 분들에게 연락을 드려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자꾸 미뤄진다. 그분들도 분명 각자의 삶에 바쁘게 흘러가고 있을 테니까. 괜히 사적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더 좋은 에너지와 기쁨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초반의 열정보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조금 더 크다.


어제 유튜브에서 마술쇼, 풍선으로 나비와 강아지를 만들고, 즉석으로 크로키를 그리고, 재미있는 입담과 성대모사를 하는 크루의 컨텐츠를 봤다. 어릴 때로 돌아간 것 처럼 행복해졌다. 알록달록한 풍선이 뿅뿅 만들어지니 나도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자극적인 컨텐츠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행복을 직관적으로 가져다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현실적이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갖추는 데 더 집중하게 된다. 수입이 되거나 꾸준히 게시할 수 있는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지점을 명확히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실력과 예술성을 갖춰 내가 감동받은 모든 것을 온전히 체화해내려는 시도는, 때로는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이미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고, 반드시 많은 시간을 들인 결과물이 더 큰 반응을 얻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겉보기에는 공을 덜 들인 듯하지만 시대의 감각을 잘 짚은 이미지 콘텐츠가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곤 하기에...


내 방식대로의 진정성은 때로는 시장과 엇갈릴 수 있지만, 그 균형을 찾는 것이 현재의 과제다. 최근에는 그리던 것과 다른 스타일로 게시를 했는데, 모든 실험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지만, 나의 기록은 나에게만큼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 습작이나 실험적인 활동은 굳이 공개할 필요가 더이상 없는 단계임을 알게되었다. 더 많은 반응과 귀감이 되어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현재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내 추구미를 계속해서 찾아다니며 유랑을 하는 것은 나에게만 좋을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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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스타일로 그린 것들


위의 그림들은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색 조합과 스타일로 시도해본 것들이다. 역시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떤 연습이 필요한지, 무엇이 부족한지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을 채우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지금의 현실 속에서 확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에게 다른 감각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걸 구체화하려면 분명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드러날 때는 억지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을 빼고, 내가 평소에 익숙하게 그려오던 감각과 눈, 손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봤다. 그 결과, 미완성이지만 꽤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왔다.


타협은 중요하다. 어차피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더 기술적이고 세련된 작업물을 내놓음으로서 외주를 받기 위해 집중하는 것은 내가 하는 작업과 그 성격이 맞지 않는다. 설령 그 것을 그림 안에 어느정도 녹여내고 싶더라도 내 손이 가는대로 완성한 그림은 생각보다 내가 의도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그래서 내 그림을 좀 더 믿어주고 존중해주기로 했다. 나만 가진 고유의 느낌이 표현의 한계라고 평가절하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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