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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Jan 04. 2024

하리보 젤리를 주머니에 챙겨가는 아이가 있다




"선생님, 하리보 젤리 지금 먹어도 되죠?"



지금 근무하는 곳에서 젤리를 나누어주면 곧잘 런 질문을 받다. 이곳의 아이들은  모습이 된 것을 넘어 넉넉한 편에 속한다. 대부분 아침밥을 먹 배고프단 말 없이 오전 일과를 보내고, 준비물로 실로폰이나 수채화용 물감을 적어주면 반듯하고 깨끗한 보조가방에 챙겨 온다. 해진 실내화는 다음 날 바로 새것으로 가져올 수 있고, 겨울에는 두툼한 기모바지에 따뜻한 패딩을 입고 학교에 온다.



하리보 젤리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군것질거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하리보 젤리는 그저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이자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학급의 궂은일을 맡아서 했다는 일종의 표식, 내지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성취감의 일종이었다. 하리보 젤리를 '간식'이 아닌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한 뒤 바로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곤 했다.



간식이건, 칭찬의 결과물이던 먹을 걸 받으면 응당 그 자리에서 봉지를 뜯고 먹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이게 무얼 그리 특별한 일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에 있던 곳 아이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하리보 젤리를 '간식'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정말이지 애지중지 여기는 아이들이 있었다. 황금색 비닐 속에 담긴 말랑말랑한 곰돌이 젤리를 꾹꾹 만져볼 뿐, 먹고 싶은 유혹을 참 아이들이 있었다.  






보통 소외됐거나 어려운 곳일수록 이것저것 내려오는 예산이 많다. 지난 근무지는 읍단위의 학교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용할 수 있는 학급 예산이 많다. 나는 교사책상 뒤편의 서랍장을 늘 간식으로 채워두곤 했다. 마이쮸, 뽀로로 비타민, 하리보 젤리 같은 간단한 군것질거리부터 초코파이나 오예스처럼 배를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는 간식까지 종류별로 촘촘하게 챙겨두었다.



그 해 우리 반이었던 5학년 재웅이는 순진하고 착한 아이였다. 위로 누나, 아래로 여동생이 있었는데 졸업한 재웅이의 누나를 가르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는 어머니가 편찮으셨고 아버지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오며 가며 보았던 삼 남매는 사이가 참 좋았고, 티 없이 밝고 순수했다.     



재웅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성실한 아이였다. 그 당시 나는 포인트를 10개씩 모을 때마다 하리보젤리를 하나씩 주는 개인 보상제도를 학급운영에 활용하고 있었다. 아침시간에 독서를 열심히 하면 포인트 하나, 지각을 하지 않으면 포인트 하나, 발표를 하면 포인트 또 하나.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는 재웅이는 포인트를 듬뿍 받아가는 아이 중 하나였다.




"선생님, 저 포인트 다 모았어요"


"그, 재웅이 수고했어. 간식통에서 젤리 하나 가져가렴"


"네, 감사합니다"




재웅이는 환히 웃으며 똑같은 내용물의 젤리들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하나를 골라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재웅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포인트를 빨리 모으고, 많은 젤리를 가져가는 아이였다. 2학기의 어느 날, 평소처럼 포인트와 맞바꾼 젤리를 주머니에 쏙 집어넣는 재웅이에게 불현듯 말을 붙였다.




"재웅아, 젤리 맛있지? 지금 먹어도 돼"


"아, 괜찮아요. 선생님"


"집가서 먹게?"


"아니요. 저는 안 먹으려고요"


"그러면? 젤리 안 좋아하니?"




그 누구보다 포인트를 열심히 모은 재웅이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아, 이거 동생 갖다 주려고요. 동생이 하리보 좋아해요"





여태껏 젤리를 가져갈 때마다 뿌듯하게 미소 짓던 재웅이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동생이 좋아할법한 귀엽고 맛있는 젤리를 가져다줄 생각에 그렇게 밝은 표정인 모양이었다. 행여나 잃어버릴세라 곧바로 주머니에 넣던 모습이 선명했다.



그저 흔하디 흔한 보상 중 하나로,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했던 이 사소한 것들을 이토록 소중히 여기고 있을 줄이야. 아이들에게 주고 난 뒤에는 눈에 띄지 않던 이 황금색 하리보 봉지가 이날 이후 자꾸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어코 어느 날 수업시간에 교실 한 바퀴를 둘러보다가 아이의 필통에 먹지도 않은 꾸깃꾸깃한 하리보가 들어있는 것을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왜 젤리를 안 먹고 필통에 넣어놨어?"




아이는 약간 민망해하며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대답했다.




"아... 저 아껴먹으려고요"





어느 아이들에게 하리보 젤리는 칭찬의 도구이기전에 특별한 간식 그 자체였던 모양이었다. 손바닥 크기에도 못 미치는 작디작은 젤리일 뿐인데. 요즘은 편의점이나 과자할인점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인데. 집에 가서 형제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고, 당장 먹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을 보며 기특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아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해, 나는 서랍장에 하리보젤리를 가득 채워놓기 바빴던 기억이 난다.



 






흔하디 흔한 하리보 젤리가 누군가에겐 소중한 간식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재웅이. 번외로, 학급식파업 때 재웅이의 모습이 기억난다.


간간히 있었던 급식파업 날에는 아이들에게 정해진 급식 대신 미리 포장된 기성식품이 제공됐다. 그 해도 마찬가지로 초콜릿을 듬뿍 묻힌 도넛, 바나나 모양의 카스텔라, 오렌지 주스, 초코우유, 요플레 같은 대체 음식들이 주어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리 간식류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이 있는 급식 대신 달고 더부룩한 빵 종류를 많이 먹지는 못했다. 가공식품 특유의 정제된 향과 맛은 먹으면 먹을수록 물렸다. 아이들은 포장지를 까서 첫 입을 먹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한 입만 먹고 바로 버리는 것을 본 재웅이는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수정아, 너 이거 안 먹을 거야?"


"왜?"


"아, 이거 안 먹을 거면 나 주면 안 돼?"


"그래, 마음대로 해"




그렇게 재웅이는 교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이 먹지 않는 빵과 주스, 요플레를 잔뜩 모았다. 하나, 둘씩 모은 간식거리의 양은 재웅이의 책상 위를 덮고도 모자라 짝꿍의 책상까지 침범할 지경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몇 입 먹고 운동장에 나가 놀기 바빴는데, 재웅이는 반에서 가장 늦게 먹는 아이까지 기다린 뒤 나에게 찾아왔다.



"저기, 선생님"


"응?"


"이거 애들 안 먹는다고 해서 모았는데요. 이거 집에 가져가도 되나요?"




나는 재웅이의 뒤편으로 보이는 산처럼 쌓인 봉지들을 보고 놀랐다.




"친구들이 안 먹는다고 준거야? 집에 가져가서 뭐 하려고?"



"아, 저 엄마 갖다 드리려고요"




말을 듣자마자, 하리보 젤리를 소중히 챙겨가던 재웅이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가족들에게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고 싶은 재웅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학교에서 제공한 대체식을 집까지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져가는 길에 변질되거나, 집에서 먹고 탈이 나면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웅아, 학교에서 급식 대신으로 제공한 음식들은 집에 가져가기 어려워"


"아, 그래요?"


"응, 혹시 가져가는 길에 맛이 변해버리거나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거든"


"그러면, 저거 다 버려야 해요?"




원칙적으로는 그랬다. 한껏 기대하는 표정이었던 재웅이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못 가져가는 것도 서러운데 기껏 잔뜩 모아놓은 간식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까운 모양이었다.




"응, 일단 다 이리 갖고 와봐"




재웅이는 한 움큼 간식거리를 안아 교탁 옆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양이었다. 게다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이 간식거리들의 포장지를 뜯고, 일일이 버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배포가 지금보다는 컸던 어린 나는 결심했다.




"재웅아, 원래 이거 절대 가져가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재웅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요플레는 빨리 상하고, 주스도 좀 위험해. 대신 도넛이랑 카스텔라는 유통기한이 1년이니까 집에 가자마자 먹으면 괜찮을 수 있어. 선생님 말 이해하지?"


"네!"


"딱 먹을 만큼만 가져가자. 몇 개 필요할 것 같아?"




재웅이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대답했다.




"엄마랑 동생이랑 누나요! 세 개요"


"재웅이 거는?"


"아, 저도 하나 가져가도 되나요?"


"물론이지. 네 개 가져가자"




재웅이는 네 개의 빵을 신중히 고르더니 재빨리 책가방에 넣고 가방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환히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감사해요. 오늘 가서 바로 먹을게요"








하리보 젤리 정도는 원할 때 마다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선생님이 나누어주는 간식의 세계가 전부인 환경 속에서 사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자신의 몫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이 더러 존재한다. 그럴 때 담임교사로서의 할 일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젤리를 '간식'으로 여길지언정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기쁨을 느껴볼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해 주고, 그 누구의 것보다 자신의 몫을 먼저 챙기는 법을 넌지시 가르쳐줄 뿐이다.



가끔씩 일찍이 성숙해진 아이들을 보면 기특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은 그저 순수하게 제 몫만을 챙겨도 보고, 투정도 부릴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자신이 속한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이들이 인생의 많은 순간에서 행복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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