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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Dec 17. 2023

아이 탓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부모는 위대하다. 그리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부모는 십수 년의 시간 동안 미성숙한 생명을 길러내는 값진 일을 수행한다. 


부모는 아이가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질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또한, 세상의 질서와 규칙을 가르치고 개인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심어준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우뚝 서고, 든든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또 교육한다. 참으로 인고의 시간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위대하다. 



그런데 과연,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이 길고도 어려운 시간을 참아낼까. 과연 모든 부모가 존경받아 마땅한 것일까. 내가 만났던 어떤 부모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3학년 은서는 아주 산만한 아이였다. 책상 서랍엔 항상 구겨진 학습지가 뭉텅이로 들어있었고, 연필이나 풀 따위는 자리 주변에 흩뿌려져 있어 물건을 정리하게 하는 것이 늘 첫 번째 숙제였다. 수업 시간에는 부산스럽게 낙서를 하거나, 수업과 관련 없는 딴 소리를 하곤 했다. 은서의 잘못된 행동습관은 학기 초부터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아직 3학년이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개선될 가능성도 있었다.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갈수록 문제행동은 심해질 것이고, 학업이나 친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다행히 1학기 상담주간에 은서 어머니는 상담을 신청했다. 




"선생님, 은서가 좀 산만하죠? 저희 은서가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금방 적응할 테니 잘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부모가 아이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응한다고 개선될 행동습관이 아니라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지만, 나도 아이를 본 지 얼마 안 됐으니 일단 지켜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은서는 여름방학이 다가올 때까지 조금의 적응도 하지 못했다. 물건을 어지러뜨리는 행동은 더 심각해졌으며, 이제는 수업시간에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른 친구들이 발표를 할 때 뚱딴지같은 말을 툭툭 던져서 수업을 방해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은서의 어머니를 학교에 불렀다. 처음 본 은서 어머니의 얼굴은 왠지 무표정하고, 의욕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 은서가 생활습관이 아직 안 잡혀서요. 요즘은 수업에도 영 집중을 못해요. 알고 계시죠?"


"네, 집에서도 애아빠랑 저랑 계속 가르치는데 잘 안되네요"


"우선 은서가 정리정돈이 너무 안 돼서요. 매일 책가방 정리 스스로 할 수 있게 시켜주시고, 학습지는 파일에 제대로 꽂았는지 확인 부탁드려요"


"네, 집에서 저도 봐볼게요"


"그리고 매일 수학 익힘 숙제했는지 봐주세요.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아이와 대화도 많이 해주시고요. 아직 3학년이라서 좀 더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잘한 점 칭찬 많이 해주시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은서 어머니는 영혼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은서의 행동이 1학기 때보다 조금 나아졌을 것이란 기대는 착각이었다. 2학기의 은서는 전혀 개선이 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여전히 서랍은 꽉 차서 종이가 빠져나와있었고, 손에는 항상 어딘가에서 가져온 가위를 꼭 쥔 채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날카로운 물건을 거침없이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은 위험한 징조였다. 아이들은 은서를 피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은서 어머니를 학교에 불렀다. 은서 어머니의 얼굴은 1학기 때 보다 더 무표정했고, 조금 지친 듯해 보였다. 그리고 심드렁함이 한 스푼 끼얹어져 있었다. 




"어머니, 은서 여름방학 때 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아니요. 캠핑도 여러 번 다녀오고, 아이랑 시간도 많이 보냈는데.."


"은서 행동이 좀 더 과격해진 것 같아서요. 요즘은 가위를 흔들고 다니는데 정말 위험하거든요"


"네.. 근데 저기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은서 어머니는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사실, 은서가 제가 낳은 아이가 아니에요. 데려와서 키운 아이인데, 그래서 그런지 기질이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교육하려 해도 안되네요"



이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서 아이를 좋은 쪽으로 개선해 보겠다는 희망의 자아가 폭삭 주저앉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이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데려와서 키웠다는 것은 놀랍지 않았다. 요즘은 입양도 많이 하는 시대 아닌가. 


내가 당황했던 부분은 바로 '기질'이라는 단어로 핑계를 삼고 있는 지점이었다. 더욱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해해주세요'라는 듯 양해를 구하는 애처로운 표정을 이렇게 쉽게 보여준다는 것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이것은 회피고, 포기였다. 



여기서 기질 탓을 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또, 이런 부모도 있었다. 윤재는 그 해 5학년의 가장 말썽꾸러기였다. 친구들을 향한 거친 말과 행동은 일상이었고, 수업시간에는 수업과 관련 없는 말이나 관심을 끌려는 듣기 싫은 추임새를 지속적으로 내뱉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곤 했다. 특히, 같은 반 아이들은 윤재가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일본어투를 싫어했다. 윤재는 칼이나 전기톱이 나오는 잔인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봤는데, 그 영향으로 일본어투의 말을 사용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 행동은 더욱 심해져 갔다. 교실에서의 교육이 통하지 않자 나는 윤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아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교사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윤재 어머니는 이런 전화를 지금껏 많이 받아봤다는 듯 익숙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윤재가 학교에서 무기 같은 것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장난치고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많이 해서요"


"아 네, 그런가요? 집에서도 누나랑 종종 그러고 놀아요"


"지난번에는 어디서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긴 칼처럼 가지고 다니더라고요"


"아, 윤재가 자기가 보는 그 애니메이션 따라 하는 걸 거예요"


"아 어머니도 아세요? 그런데 그 애니메이션이 청소년 관람불가더라고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피 튀기고 하는 거라 아이가 보면 정서상으로 안 좋을 텐데요"


"네, 저도 알아요. 그런데 자기가 보겠다는데 별 수가 있나요"


"네? 그래도 집에서 못 보게 해주셔야 해요"


"아이고 저도 안 보면 좋지만, 제 말은 잘 안 들어요. 선생님이 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남자애라서 그런가 막 싸우고, 전쟁하고 그런 걸 좋아하더라고요. 윤재가 타고나길 성격이 좀 거침없고 대장부 같고 그래요"




이 어머니와도 더 이상 말이 안 통할 것 같았다. 근거 없는 성별 탓에, 타고난 성격 탓이라니. 태어났을 때부터 성격이 그렇다면, 평생 그런 성격을 동네방네 떨치며 살도록 놔둘 것인가. 이 어머니는 아이교육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부담과 귀찮음의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이의 성별과 성격을 원인으로 탓해버린 것이다. 아이가 뜻대로 안 되고 말을 듣지 않으니 회피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윤재는 오로지 친구들과 담임교사가 짊어질 짐이었다. 그 이후는 누가 짊어져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이 통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머리가 커지면 열 곱절, 아니 백 곱절 노력해도 어려운 것이 훈육이고 교육인데,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 탓을 하는 건 비겁하다. 백번 양보하여 기질의 영향이 있을지언정, 탓을 하고 뒤돌아버리는 것은 면피용 핑곗거리를 던지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 




부모가 아이교육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리는 것은 그 아이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힘들어도 협조해야 한다. 

아이 탓을 하는 것은 정말로,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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