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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Dec 06. 2023

체벌 금지 시대, 폭력성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휴, 예전에 비하면 때리는 애들 많이 줄었어요."



나이 지긋한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체벌 금지가 된 이후로 아이들의 폭력성이 확연히 줄어들었다고 얘기하신다. 이것은 학교 폭력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교실에서 친구와 놀 때 발로 차거나, 머리를 툭툭 치거나, 몸을 깔고 뭉개는 등 거칠 장난치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체벌 금지 시대에 교직에 입문한 나는 그 전의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체벌 허용 시대에 보냈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누가 누구를 두들겨 팼어요'라든가 '누가 누구의 뺨을 때렸어요' 같은 문장이 꽤나 귓가를 맴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에 비한다면, 확실히 요즘 교실에서는 일상화된 폭력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폭력성이 잠재워진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난데없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의학적으로 분노조절이 되지 않는 경우가 아님에도,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아이가 드러내는 폭력성은 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처가 어디일까. 나는 그것이 항상 궁금했다.




"선생님, 김태성이 자꾸 발로 차요" 


"선생님, 태성이가 쉬는 시간에 제 모자 잡아당겨서 넘어졌어요"


"선생님, 아까 태성이가 화장실 앞에서 옆 반 찬서한테 욕했어요"




의문의 시작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려오는 민원의 주인공이자, 우리 반 요주의 인물 태성이 때문이었다. 그 해 6학년은 학교에서 가장 괜찮은 학년이라는 평이 있을 만큼 순하고 예쁜 아이들이 많았다. 매사 긍정적이었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습관이 몸이 배어있었다. 정말이지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욕이나 폭력 따위는 감히 끼어들 틈새가 없었다. 



태성이는 그중에서 가장 별난 존재였다.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꼿꼿해진다는 옛말은 무색하게도, 태성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늘 구부러진 쑥을 자처했다. 욕과 듣기 싫은 유행어를 달고 살았고, 장난을 가장한 폭력으로 친구들을 괴롭히며 우위에 서려고 노력했다. 키가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체육을 잘했던 태성이를 많은 아이들이 배려하고, 호의적으로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습관화된 력은 이질 않았다.




"태성아, 친구를 으로 누르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왜 자꾸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거야?"


"그냥 했어요"




이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이해해 주고 용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학기 초부터 시작된 태성이의 폭력적인 행동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태성이가 쉬는 시간에 본인의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다른 남학생을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부정적 감정이 들어간 폭력,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눈물을 쏙 뺄 만큼 태성이를 호되게 혼내고, 방과 후에 남겨 '성찰일지'를 쓰도록 했다.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친구에게 사과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개선할 것인지 적는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그리고 이 성찰일지에 부모님의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늘 자신만만하던 태성이의 표정이 한순간 울상이 되는 것이 아가. 담임인 나에게도 늘 고자세를 취하려했던 아이가 이렇게 약해 보이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선생님, 제가 진짜 다음부터 안 그럴 테니까 이거 집에 안 가져가면 안 돼요?"


"너 이번이 벌써 몇 번째야? 이제는 안돼. 가서 부모님 확인받아오세요"


"선생님, 제발요"


"안돼. 지난번에 약속했잖아. 한 번 더 학교에서 폭력 쓰면 부모님께 반성문 보내겠다고. 이번에는 정말 안돼."




더 이상 태성이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됐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이는 태성이를 무시한 채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태성이는 아버지의 이름이 정자로 적혀있는 성찰일지를 내밀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궁서체였다. 




"태성이, 어제 부모님이랑 얘기 잘해봤어? 뭐라고 하셨어? 이제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하시지?"



"아뇨, 그냥 맞았는데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맞았다고? 요즘 가정에서도 애를 때려서 혼내나?' 태성이는 한껏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맞았다고? 어디를?"



"등이랑, 엉덩이랑..."




태성이는 엎드려뻗쳐하는 자세를 흉내 냈다.




"부모님이 너 잘못했을 때 때리시니?"


"네"


"언제부터?"


"그냥 옛날부터 그랬어요"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스러웠다. 가정에서 아이를 어떻게 훈육하는지 내가 관여할 영역은 아니지만, 요즘은 체벌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아니던가. 게다가 '엎드려뻗쳐' 자세라니. 이것은 '손바닥 맞기'나 '발바닥 맞기' 정도의 체벌을 받았던 90년대생 나보다 훨씬 고전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반성문을 괜히 집으로 보냈나, 가정과 연계해 이상적인 교육을 해보려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후로 태성이는 한동안 잠잠했으나 오래가진 못했다. 이주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폭력을 반복하기 시작했고, 일종의 반항심이 생는지 수위는 거세져만 갔다.




그렇게 위태롭게 지내던 어느 날, 결국 큰 사건이 터지 말았다. 자신의 험담을 뒤에서 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옆 반의 찬서를 화장실로 데려가 문을 잠그고 욕과 폭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등과 팔뚝을 수차례 때렸다는 것은 명백한 학교폭력이었다.



찬서의 어머니는 태성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태성이의 잘못이 너무나 분명했으므로 지극히 타당한 일이었다. 그러나 찬서가 태성이와 척을 지긴 싫었는지 자기 어머니를 설득한 모양이었다. 며칠 뒤 찬서 어머니는 학교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태성이랑 태성이 부모님이 찬서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자리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다시는 우리 찬서 괴롭히지 않겠다고 직접 약속해 주시면 신고 안 하고 끝내고 싶어요"




소식을 들은 태성이 부모님은 정말 감사하다며, 태성이 아버지가 직접 학교로 가겠다고 전해왔다. 그 이후로, 태성이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우울한 표정으로 학교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쌩쌩하던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옆에서 친구들이 장난을 걸어와도 묵묵부답이었다.




대망의 그날, 처음 본 태성이의 아버지는 멀끔한 인상에 풍채가 좋았다. 태성이의 키와 서글서글한 외모가 아버지를 빼다 닮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주 정중한 태도로 찬서의 어머니와 찬서에게 사과를 했고 다시는 태성이를 그렇게 행동하지 않게끔 하겠다며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럴수록 태성이의 얼굴은 창백해져 갔다. 찬서의 어머니는 마음이 풀린 듯, 자신의 아들에게도 남의 험담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사건은 잘 마무리되는 듯 했다. 교실로 올라가 서류를 정리하려던 찰나, 태성이 아버지 나를 불러 세웠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해요. 태성이 녀석 때문에 곤란하게 해 드렸네요"


"아, 아닙니다. 오늘 자리를 통해서 태성이도 반성 많이 했을 거예요"


"얘 반성 안 해요. 이 녀석이 요즘 크면서 덜 맞았더니 점점 집에서도 기어오르고, 선생님 고생 많으십니다"


"네?"


"아닙니다. 제가 집에서 잘 교육시킬게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태성이 아버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저 멀리 태성이가 고개를 숙인 채 애꿎은 신발코만 바닥에 툭툭 치며 기다리고 있었다. 태성이 아버지는 태성이에게 다가가더니 친밀감을 나타내듯 와락 어깨동무를 했다. 교실에서는 제일 크게 느껴지던 아이가 아버지 품에 있으니 한없이 작아 보였다. 아버지에게 끌려가는 듯한 태성이의 뒷모습과 위축된 어깨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남은 시간은 별일 없이 흘러갔다. 사건 이후 태성이가 눈에 띄게 과묵해지고 표정이 어두워졌다는 것만 빼면, 담임교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무탈한 연말이었다.




3년쯤 지난 스승의 날이었다. 정이 많던 그때의 아이들은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편지를 써서 나에게 가지고 오곤 했다. 제법 청소년 티가 나는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 쫑알쫑알 자신들의 중학교 생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태성이의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 저희 6학년 때 김태성이 제일 힘드셨죠?"


"태성이? 그러게, 태성이는 요즘 잘 지내니?"




갑자기 몸을 한껏 움츠린 민지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조심스레 대답을 했다.





"선생님, 걔 사람 때려서 소년원 갔대요."



   



결국이었다. 한껏 놀라는 반응을 기대한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태성이의 소식이 왠지 모르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폭력을 저지른 아이를 비호하고 싶은 마음을 추호도 없다. 태성이의 결말을 일반화하고 싶지도 않다. 폭력은 어떠한 상황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며 이 명제가 변해서는 안된다. 다만, 태성이가 가진 폭력성의 출처가 종종 궁금해질 뿐이다. 과연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발현된 것이었을까, 혹여나 태성이가 보고자란 부모의 행동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자라오면서 험한 폭력의 기억이 타인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더 이상 학교에는 아이들이 보고 자랄 폭력의 모습이 없다. 폭력에 대한 경험을 가질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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