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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Dec 03. 2023

사진 배경이 하수구인 건에 대하여



바야흐로 에듀테크의 시대다.   


오늘날의 교실은 90년대생인 나의 어린 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화했다. 교실마다 와이파이 설치는 물론이고 개인별로 태블릿이나 크롬북은 항상 제공된다. 심지어 빈 교실을 허물고 VR체육교실이나 AI교실까지 만들고 있는 추세다.     


하드웨어가 업그레이드된 만큼 내실도 쌓여간. 적재적소에 쓸만한 교육용 어플과 프로그램이 전투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에듀테크 역량강화 연수'가 오롯이 교사의 몫인 것은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도구들이 실제로 학습에 도움이 되는가'와 같은 효용성 문제는 논외로 치자. 어찌 됐든 대부분의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에 열광한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도 태블릿만 켜면 꼼지락꼼지락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이 정도면 학습자의 '동기유발' 내지는 '능동적인 참여' 항목에서의 효과는 우수한 것 아닐까. 역시나 원초적인 흥미는 충전기로 작동하는 도구들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그 해, 6학년 아이들도 태블릿 수업을 무척 좋아했다. 타 지역에 비해 얕고 좁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에게 태블릿은 마치 구급상자 속 상비약 같은 존재였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고 효과도 만점이었다. 아이들은 태블릿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PPT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배웠다. 또 미술 작품을 만들고, 서로의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공유했다.


세상과 연결는 통로이자 서로 공유하며 성장하게 만드는 이 도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맹목적인 애정이 시야를 가릴 때가 있는 법이다. 매력적인 도구들 속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 당시 '패들렛(Padlet)'이라는 프로그램에 열광했다. 패들렛은 결과물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공유하는 사이트인데, 마치 칠판에 포스트잇을 여러 장 붙여 놓은 모양새다. 우리 반은 주로 미술 시간에 완성한 작품을 공유하는데 활용했다. 아이들은 찍어 올린 작품 사진에 찬 댓글을 달아주는 일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10월의 미술 시간이었다. 그날은 '토퍼'를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토퍼는 그림과 글씨로 꾸며진 막대로, 투명하게 배경이 비쳐 요즘 여행지에서 사진 찍기용 감성 장식품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가을을 맞아 단풍과 보름달, 다람쥐가 그려진 토퍼를 만들기로 했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운데 야외에서 사진 찍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노란빛, 붉은빛이 가득한 배경으로 찍으면 예쁠 노릇이었다. 활동을 시작하려던 중, 유진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어왔다.  

        



"선생님, 저희 다 만든 거 패들렛에 올릴 거죠?"     

     


그새 보여주고, 보 것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래, 올리면 좋지! 서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구경도 하"     

   



나는 응당 그러면 좋겠다는 듯 대답했다. 미술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2시간 동안 꽤 집중해서 만들기를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한참 열심히 만들던 준수가 물었다.          




"선생님, 미술 시간에 다 못한 거요. 집에 가서 완성한 다음에 사진 찍어 올려도 되나요?"     



", 그러면 주말까지 올려주세요."      




    

돌이켜보면,  신중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 뻔했다.


아이들은 월요일 아침이 되자 주말 동안 서로가 올린 사진을 보자고 아우성이었다. 스물여섯 개의 작품 사진은 화면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대부분 집에서 토퍼를 들고 창문 쪽의 풍경을 향해 찍은 사진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놀이터에서 울긋불긋한 단풍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알록달록한 작품을 다 같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했다.



그런데 조금 뒤 나온 몇 개의 사진들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준수의 사진이었다.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구도의 사진인데, 바깥 모습이 일순간 눈에 들어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사진 속에는 어두컴컴하고 얼룩덜룩한 아스팔트 위 맨홀 뚜껑이 보였. 왜 배경에 맨홀 뚜껑 보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장 사진을 찍은 준수의 시선 맨홀 뚜껑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찍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준수의 현장체험학습비를 학교에서 지원해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 김준수 하늘에 대고 찍어야지!"   

  

"아 그런가? 몰랐어!"   



평소 어리숙하던 준수에게 장난 섞인 질타가 돌아왔고 준수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러나 크게 의치 않아 하는 아이들과 달리 나의 마음은 불편해져만 갔다. 집에서 패들렛을 사용하게 한 것 조금씩 후회기 시작했다.           




뒤이어 윤성이의 사진이 화면에 크게 비췄다. 노랗게 색칠한 은행잎 너머로 창문의 모기장이, 모기장 너머로 칠이 벗겨진 배수관과 하수구가 보였다. 검붉은 색의 벽돌은 세월의 흔적이 만연했다. 주말에 내린 비 때문인지 추적추적해진 아스팔트 바닥과 땅에 굴러다니는 과자 봉지가 왠지 모르게 글픈 분위기를 자아냈다.




"홍윤성, 너도 하늘에 대고 찍어야지!"


"왜? 그래도 토퍼는 잘 만들지 않았어?"

   

"음 잘 만들긴 했네!"




이번에도 몇몇 장난 섞인 질타가 들려왔다. 그래도 아이들은 배경보다 작품이 더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쾌청한 가을하늘 아래 높게 솟은 아파트 단지에서 찍은 사진들과, 눈높이에 맨홀 뚜껑과 하수구가 보이는 사진들의 묘한 분위기 차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익숙해진 성인에게만 느껴지는 것이라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무조건 하늘을 배경으로 찍으라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 속상한 감정이 빙빙 맴돌았다. 그러나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 나름대로 그들의 하늘을 보고 찍은 것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때부터였다. 나는 점점 온라인으로 작품 결과물이나 사진을 공유하는 일이 그다지 끌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아이들의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바야흐로 에듀테크의 시대다.


기술은 한없이 좋아지고, 도구는 더없이 발전되어 간다. 교실은 온라인 공간으로 점차 확장되고, 서로 연결되고 공유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단언컨대, 이러한 변화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가져다 줄테다.



그런데 가끔씩은 겁이 난다. 공개해야만 하고,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에서 혹여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길까 두렵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개인 정보들과 사생활이 자랑스레 전시될까 봐 두렵다. 아이들 사이에 의도치 않은 편견이나 또 다른 격차가 생길까 두렵다. 기술의 화려함에 압도돼 본질적인 것을 놓칠까 두렵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새로운 문명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탈히 유영하길 바란다.

그리고 부디, 떠밀려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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