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단단 Nov 26. 2023

계절의 옷차림을 가르쳐야 한다는 슬픔



"우리나라의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 선생님들께서 항상 물어보셨던 단골 질문이다. 우리나라의 좋은 점이라, 골똘히 생각하던 아이들의 대답에 꼭 빠지지 않고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된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좋은 점은 무엇이 있을까' 물어보곤 한다. 기후변화가 봄과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없을 만큼 짧아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입에서는 그 옛날과 비슷한 대답이 여지없이 돌아온다. 마치 어디서 달달 외운 것처럼.



"선생님!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어서 좋아요"



사계절이 있어서 좋은 이유는 정녕 무엇일까.

일 년 내내 풍경이 똑같으면 지루하니, 이왕이면 다채로운 산과 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일까. 계절에 따라 무더운 여름에는 바다나 계곡에서, 눈 덮인 겨울에는 스키장이나 눈썰매장에서, 하다 못해 얼음낚시라도 즐길 수 있는 취미의 변주가 매력적이어서일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묻는다면 겨울에는 딸기를, 여름에는 수박을, 가을에는 단감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하겠다.


더운 날씨를 질색한다는 것과 타고난 피부가 예민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것만 빼면, 사계절은 나에게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견고한 축에 가까웠던 사계절에 대한 생각이 깨지게 된 것은, 어느 해 6학년 담임을 맡게 된 첫날이었다. 전교에서 유명한 특수반 아이인 성준이가 우리 반이었다. 성준이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였는데 천진난만한 얼굴과 대비되는 예측불허한 행동으로 선생님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성준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하는 예쁜 아이였다. 성준이의 학부모가 아이에게 지독하게 관심이 없어서 선생님이 성준이의 생활 전반을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근심거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새 학기 첫날, 성준이는 다행히도 새로운 반을 잘 찾아서 등교를 했다. 그리고 교탁 앞까지 와서 선생님께 고개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의젓한 모습이 기특해 폭풍 칭찬을 해주려던 찰나, 나는 성준이의 옷차림을 보고야 말았다. 성준이는 아직 겨울이 머물고 있는 3월에, 찬바람이 이토록 매섭게 부는 날에, 한여름에나 입을만한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등교를 했던 것이다. 오들오들 떠는 아이의 모습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성준이에게 물었다.



"성준아, 지금 계절이 무슨 계절이지?"


"몰라요!"


"성준아, 오늘 학교 올 때 날씨 어땠어? 추웠어, 더웠어?"


"추웠어요!"


"그런데 왜 옷을 이렇게 짧은 걸 입고 왔어?"


"몰라요!"



성준이는 감각적으로 추위와 더위를 느낄 수는 있어도 지금 계절이 어떤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인지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 어른이라도 성준이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김성준 어린이, 아직 겨울날씨니까 두꺼운 상의에 긴 바지에 패딩을 걸치고 가세요'라고 누군가 이야기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준이의 집에는 이 아이에게 계절에 맞는 옷을 챙겨줄 어른다운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두툼한 니트 스웨터와 성준이의 닭살 돋은 팔뚝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묘하게 불쾌했다. 곧바로 특수반 선생님께 연락해 특수반에 있던 여분의 긴팔 옷을 성준이에게 입혔다. 그리고 성준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계절에 따라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김성준, 선생님이 요즘 무슨 계절이라고 했지?"


"겨울!"


"맞아, 겨울에는 옷 어떻게 입어야 해? 내일 옷 어떻게 입고 올 거야?"


"긴 옷, 패딩!"


"그래, 내일은 꼭 긴팔 옷, 긴 바지, 패딩 입고 와야 해. 양말 신는 것도 잊지 말고, 알았지?"


"네!"



그렇게 성준이가 겨울 옷차림으로 등교하게 만드는데 2주 정도 시간이 걸렸다. 이제 봄의 옷차림, 그다음에는 여름의 옷차림을 가르칠 차례였다. 가르치는 것은 수십 번 반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작년, 작년 선생님께서도 가르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마음 한 구석이 복잡해졌다. 올해 연습한다고 내년에는 알아서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성준이 같은 아이들이 대한민국 교실에 더러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속상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생각했다.

사계절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고.




어느 해 겨울에는 이런 적이 있었다.

입동이 막 시작됐을 즈음, 학교 정문이었다. 출근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아 종종걸음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목소리만 들어도 우리 반 태환이었다. 태환이는 외국에서 온 어머니랑 둘이 사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지원을 받는 아이였다.



"그래, 안녕!"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우연히 태환이의 발을 보게 되었다. 운동화도 아닌, 양말도 아닌, 여름 샌들을 삐죽이 비집고 나온 맨발가락을 말이다. 0도에 가까운 날씨에 맨발이라니, 차마 지나칠 수 없었던 나는 태환이의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태환아, 너 근데 신발 뭐야? 안 춥니?"


"아 이거요? 네, 안 추워요"



태환이는 6학년 남자아이들 특유의 가오를 잡으며 태연한 척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선생님, 근데 이제 샌들 신으면 안 되는 계절인가요?"



태환이는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가르쳐줄 어른이 없었던 모양이다. 태환이를 질책하고 싶진 않았다.

그저 속으로, '이놈의 변화무쌍한 계절이 문제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내가 지금 만나는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사계절에 맞게 옷을 잘 입고 다닌다. 여름에는 상쾌하고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고 포근하게.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과 가을에는 가볍게 걸치는 옷도 잘 입고 다닌다. 아마도 집에서 오늘은 이것을 입고 가면 더 따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친절한 어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의 사계절은 혹독하다.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가정에서 친절하게 알려줄 어른이 없는 아이라면, 계절의 변화를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라면, 계절에 맞는 옷을 살 수 없는 여건에서 살고 있는 아이라면, 영문도 모른 채 남들보다 더 덥고 더 추운 계절을 보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이 올 때면 이따금씩 성준이의 닭살 돋은 팔과 태환이의 붉은 발가락이 생각난다.

영하 날씨에 패딩은 잘 챙겨 입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애초에 계절이 하나면 복잡하지 않을 텐데.

의미 없는 상상도 해본다.   


앞으로 더 뜨거워질 여름과, 더 추워질 겨울을 아이들이 온전히 나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