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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Jan 18. 2024

중학교를 보내려면 그 아이의 집안사정을 알아야 한다




"저, 등본을 보니 어머니만 나와계신데, 혹시 아버지가 등본에 없는 다른 사정이 있을까요?"




신규부터 내리 6학년 담임만 했던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을 하나 꼽자면, 바로 중학교 원서를 쓰는 시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을 넘는 것만 같은 이 민감하고도 어려운 질문을 돌려 돌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매년 필연적으로 찾아왔다.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의 중학교 배정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실제 거주지 근거리 배정'이 원칙이다. 퍼센트를 두어 일부를 추첨으로 돌릴지언정,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와 같이 중학교도 근거리 배정을 우선으로 시행한다. 따라서 졸업을 앞둔 아이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가고 싶은 중학교에 해당하는 학구가 맞는지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웬만해선 아이들이 동네 초등학교를 다닐 것 같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사정이 존재한다. 학교 근처에 적을 두지 않고 졸업하는 아이들은 의외로 많다. 초등학교 6년 사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지만 전학을 가기 싫어서 멀리 다니는 케이스라던가, 운동부가 활성화된 학교에 다니려고 전학을 와서 부모님이 매일 아침 통학을 시켜주는 케이스라던가 말이다. 어감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러한 경우를 '학구위반자'로 분류했다.



그 당시 근무하던 초등학교는 읍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전출입이 빈번했고, 여러 사정에 의해 꽤 먼 거리를 통학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경제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었다. 이 말은 즉슨, 10월에 아이들이 가져온 등본을 꼼꼼히 살펴보고 '학구위반'일 경우 추가적인 서류를 요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추가적인 서류는 '등본에 전가족이 등재되어 있지 않을 시, 이혼일 경우와 이혼이 아닐 경우를 구별하여 학생명의의 기본증명서 또는 자필 사유서를 제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스에 부모의 이름을 적는 칸조차 사라진 마당에, 그들이 이혼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민감하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은 제도일 뿐이며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백 명의 사람에게 백 개의 세상살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우리나라는 예외에 인색한 편이다. 제삼자가 아무리 '쿨하게' 생각한들, 당사자에게는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 있는 노릇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은 개인사나 형편을 묻는 것을 극히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단순히 '행정처리'를 한다는 명목으로 칼로 무썰듯 딱 잘라 물어보기에는 1년 동안 미우나 고우나 함께해 온 아이의 가족이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쿨한 척 물어보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건방진 인간처럼 느껴져서 그것도 싫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나는 매년 네댓 명의 부모님들께 한껏 움츠린 초식동물처럼 조심스레 질문을 했다.





"저, 등본을 보니 어머니만 나와계신데, 혹시 아버지가 등본에 없는 다른 사정이 있을까요?"



"윤채 아버님, 등본에 전 가족이 안 나와 있어서요. 혹시 어머님께서 다른 사정이 있을까요?"





답변은 크게 두 가지 반응으로 갈렸다.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았음에도 끝까지 예의를 지켜서 필요한 서류를 챙겨 보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었고, 극도로 방어적인 모습을 취하며 나를 향한 날 선 문장들을 내뱉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재성이 어머니, 재성이가 지금 학구위반 상태여서요. 학구위반 학생의 경우 중학교 원서를 쓸 때 등본에 전 가족이 나와있지 않으면 추가 서류를 제출해야해서 연락드렸어요"



"네, 그런데요?"



"이게 상황마다 다른데, 지금 등본을 보니 재성이랑 어머니만 나와있어서요. 혹시 다른 가족은 따로 없으실까요?"



"네, 없는데요"



"아 네, 혹시 그러면 재성이 아버님이 직장문제나 다른 일로 멀리 계시는 걸까요?"



"아니 그냥 없다고요. 왜 자꾸 꼬치꼬치 물어봐요?"

 


"저도 지침 때문에 여쭤보는 점 이해 부탁드려요. 이게 상황에 따라 서류가 달라서요. 혹시 어떤 이유로 따로 계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걸 제가 왜 말해줘야 하냐고요"



"이혼일 경우는 기본 증명서를 내셔야 하고, 이혼이 아닐 경우는 따로 사유서를 작성해서 내셔야 해요"



"애 어릴 때 이혼했는데, 어쩌라고요 그러면"





민감한 질문들은 손바닥 뒤집듯 상냥한 학부모님을 비협조 민원인으로 돌변시켰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그런 질문이 불편했을 테니 마음속 방어기제가 뛰쳐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견딜만 했다.



그러나, 마음이 더 답답해지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직접 이 질문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스스로 크는 아이들이 많다. 진서는 미혼모 가정의 아이로 이사는 타 지역으로 했지만, 졸업은 기존의 초등학교에서 하고 싶어 했던 아이였다. 등본에는 외할머니, 엄마, 진서의 이름이 있었다. 엄마는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외할머니는 아무리 서류를 부탁해도 자꾸 깜빡했다. 어쩔 수 없이, 서류를 진서에게 부탁했다.




"진서야, 학교 끝나면 외할머니 모시고 동사무소 가서 너 이름으로 된 기본증명서라는 걸 한 부 떼와야 해"



"왜요? 다른 애들도 내는 거예요?"



"너 지금 사는 곳이 이 동네가 아니잖아. 그래서 필요한 거야"



"엄마한테 부탁해도 돼요?"



"엄마 연락되니?"



"선생님이 엄마한테 연락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엄마가 해주실 것 같은데"



"선생님도 해봤는데, 엄마가 연락을 안 받으셔"



"아 그래요? 그러면 제가 할머니한테 말해서 해올게요"




진서의 가정 상황을 미리 알고 있어서 대충 둘러댈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이의 입으로 아버지가 등본에 왜 없는지 굳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진서같은 경우는 양반이었다. 10월이 되어서야 아이의 가정 상황을 알게 되는 경우라면 필연적으로 아이의 눈동자와 직면해야했다. 




"은진아, 등본에 오빠랑 너 밖에 안 나와있길래 선생님이 고모한테 전화했거든? 그런데 연락이 안 돼서.. 혹시 부모님은 어디 계셔?"



"아.. 저 원래 엄마아빠랑 같이 안 살아요"



"그래? 혹시 사정이 있을까? 중학교 원서를 쓰려면 선생님이 대충은 이유를 알아야 해서"



"아..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잘 모르는데.. 오빠한테 물어볼게요"



"그럼 은진아, 이거 등본에 가족이 다 안 나와있을 때 내야 하는 사유서인데, 이거 고모한테 보여주고 써달라고 할래? 간략하게 사정을 쓰면 된다고 말씀드려주고"



"네"




다음날 은진이가 가져온 사유서에는 중학생 오빠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아빠는 3살 때 일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는 집 나감]





한 자 한 자 정성껏, 꾹꾹 눌러쓴 글씨가 아직도 기억난다. 중학생도 아직 어린 나이인데,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는데, 아이의 손으로 직접 '사유서'를 적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중학교를 보내려면 그 아이의 집안 사정을 알아야 한다. 나는 불편함을 일으키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고, 때때로 돌아오는 언짢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들에게 이 과정을 겪게 해야만 할 때는, 정말이지 백기를 들고 싶다. 차라리 못마땅함, 언짢음, 짜증남, 화남의 감정을 받는 게 더 나았다. 부정적 감정은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이 신뢰와 순응으로 잔뜩 일렁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곤 했다. 



학교를 옮기고 나니, 학구위반 학생도 없고 집안 사정을 물어볼 등본도 없다. 그래서인지 더욱 그 시절 아이들이 생각난다. 



그 때 나의 질문을 받았던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자랐길 바란다. 

녹록치 않은 세상에서 곧고 단단한 심지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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