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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Feb 22. 2024

교직 인생에서 만난 가장 '굳센' 남매



나이를 먹는다고 전부 어른이 되지 않듯이, 나이가 어리다고 삶의 모습이 마냥 어리숙한 것만은 아니다.


어른보다 더 어른답게, 누구보다 인생을 '굳세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도 허리를 곧게 펴고 씩씩하게 전진하아이들이 있다. 소위 말하는 '어려운 환경'의 학교에서 만났던 한 남매가 특별히 그랬다. 사로서 마음도 많이 주었고,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 괴로운 감정도 많이 받았더랬다. 존재 자체로 빛났던 그 남매는 마치 어른들의 죄책감을 덜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것처럼 참으로 굳세게 살았다. 






성은, 성 남매는 내 교직인생 중 3년을 함께했다. 무슨 인연이 이렇게 깊은 것인지, 누나인 성은이는 6학년 담임으로, 동생 성준이는 3학년과 6학년 담임으로 만났다.

 

이제는 구도심이 되어버린 작은 시골 동네에서 성은이네 가족은 유명했다. 아버지가 홀로 성은이와 성준이, 막냇동생까지 총 삼 남매를 키웠는데, 둘째인 성준이는 장애가 있고 막내는 손이 많이 는 아이였다. 경제적 형편 넉넉지 않 아이들의 위생관리도 잘 되지 않았다. 학교 끝나고 오갈 곳 없이 운동장과 길거리, 마트를 배회하는 삼 남매는 줄곧 눈에 띄곤 했다. 


성은이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세 아이를 자신이 키운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 정도가 심해지면 아이들이 경찰서에 아버지를 신고하기도 했다. 3년 동안 주보호자로서 연락했던 성은이의 아버지는 조금 충동적이고, 비협조적 분으로 기억한다.



객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남매였다. 혹여 우울감이나 슬픔의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남매는 달랐다.

 

그깟 상황이 무어 대수냐는 듯이 늘 당당하고 유쾌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어찌하냐는 듯이 개의치 않았고, 거리낌이 없었다.



 




첫째 성은이는 당찬 아이였다. 아버지와 두 남동생 사이에서 힘들 것이라 예상했던 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한 번은 전교생이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있었다. 더운 여름날, 성은이 아버지가 남동생들의 머리를 이발하면서 성은이의 머리까지 삭발을 시이다. 아무리 그래도 고학년 여학생이었다. 다른 아이였으면 울고 불고, 노발대발하며 등교 못 하겠다고 뻗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성은이는 캡 모자를 눌러쓰고 태연한 표정으로 등교를 했다.




"선생님, 저 머리 조금 기를 때까지만 모자 쓰고 다녀도 될까요?"



"그래. 그렇게 해. 근데 성은아 머리 어쩌다가 자른 거야?"



"아빠가 동생들 머리 자르는데, 저도 데려가서 잘라 버렸어요"



"아빠? 억지로 하신 거야?"



"저는 조금 자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인 줄은 몰랐죠. 어제는 좀 그랬는데, 오늘은 괜찮아요. 그럭저럭 시원한데요?"



이미 잘라버렸는데 뭐 어쩌겠냐는 성은이의 담담한 표정이 기억난다. 쉬는 시간에 자신의 밤톨 같은 머리를 만져보라며 친구들과 장난치는 모습에서 성은이의 성숙함이 느껴졌다. 아이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종종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난동을 피울 때도 성은이는 굳세게 헤쳐나갔다. 



"선생님, 어제 아빠가 술 먹고 또 그래서 경찰관 아저씨 불렀어요."



"또? 성은이 너 괜찮니?"



"네, 아빠가 술 안마실 때는 괜찮잖아요. 가끔 저럴 때는 도움받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어제는 술 적게 먹겠다고 경찰관 아저씨랑 약속도 했어요."



"아휴, 고생했어"



"저 이제 아빠 잘 다루는 것 같아요. 그?"




성은이는 히죽 웃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분명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 6학년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일인데, 한 발 한 발 내디뎌 결한 후 씩 웃어 보이는 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졸업 즈음이었다. 자신이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발표할 때 성은이의 모습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성은이는 'CEO'라는 글씨와 함께 아버지와 남동생과 있는 모습을 그려 넣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CEO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벌거예요. 그리고 아빠가 혼자 저희 키우느라 고생하셨으니 집이랑 차를 사주고, 둘째는 아프니까 계속 치료할 수 있도록 병원비를 주고, 막내한테는 맛있는 것 많이 사줄 거예요"




CEO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듯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빛나는 모습에서, 이 아이가 그 누구보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동생 성준이는 몸집이 작고,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3학년 때는 수시로 교실을 뛰쳐나가며 학교를 배회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6학년 때는 자리에 앉아있을 만큼은 차분해졌고 간단한 두 자릿수 연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특수선생님의 노고였을 것이다.


집에서는 남동생에게 치이고 교실에는 친한 친구 하나 없는 상황이었지만, 성준이는 학교 오는 것을 좋아했고 자신만의 세상에 흠뻑 빠져 지냈다. 항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룡과 로봇 그림을 그려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선물로 주었다. 친구들이 하는 일은 늘 같이 해보고 싶어 했고, 잘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기가 죽거나 소심한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성준이와의 일화가 기억에 난다. 어느 날 성준이가 유성매직으로 자신의 얼굴에 고양이수염을 잔뜩 그린 적이 있다. 그 조그만 얼굴에, 잘 지워지지도 않는 매직으로 수염을 그려놓고 한껏 뛰어다니던 성준이가 귀엽고 웃겼다.





"성준아, 왜 얼굴에 고양이를 그렸어?"




얼굴에 잔뜩 묻은 매직을 지워주며 물었다.




"고양이.. 고양이가 되고 싶었어요!"




티 없는 웃음이란 이 아이를 보고 나온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밝게 웃으며 말하는 성준이의 모습은 순수했고, 감동스러웠다. 성준이는 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온전히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위로와 걱정은 실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남매는 참 굳센 모습이었다. 그저 묵묵한 응원이면 힘이 될 터였다. 








혹자는 내 나이가 아직 한창 때라고 말하겠지만, 기억을 여럿 반추할 수 있을 만큼 살아보니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굳세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더라. 오히려 굳건해지긴커녕 어릴 적보다 더 쉽게 마음에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기치 못한 사건들에 무릎이 꺾여버릴 때도 있다.


굳세게 산다는 것은 살아온 나날들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남매가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어린 나이임에도 주어진 것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려 작은 몸짓들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요즘 같이 '굳세게'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끔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인생은 폭풍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 속에서도 춤추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그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그때의 그 모습이면, 뭐든지 다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응원 말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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