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보니 하나하나 이름도 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문득 이 꽃은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이란 무엇인가요? 이름이란 어느 대상을 일컬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연이 아니고 인간의 문화네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매우 실용적이었을 것입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오래전에 누군가 무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전해지면서 일반화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정치적 통합에 따라 우세한 지역의 이름이 표준어가 되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어떤 꽃을 처음 보게 되면 이름이 궁금해집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이제 꽃을 알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현재의 우리는 문명인인 것이네요.
그런데 꽃의 이름이 조금 이상한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닮은꼴 또는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물의 이름은 서로 교차해서 차용되기도 합니다. 많은 사물의 단어가 그러하니 꽃이라 해서 다르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어떤 꽃의 이름은 부르기가 민망하기도 합니다. 개무슨꽃, 쇠무슨꽃, 쥐무슨나무, 광릉무슨꽃, 애기무슨풀, 며느리무슨... 몇몇 꽃의 이름에는 유래도 불분명한 독특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꽃의 이름은 사람의 언어입니다. 언어는 문화이고 그 문화의 특성을 좌우하는 것도 언어입니다. 그들만의 언어로 대상을 특징화하는 것이 그들의 고유문화일 것입니다.
요즘 민망한 이름들을 개명하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개무슨꽃 보다 봄까치꽃이, 며느리무슨보다 가시모밀이 더 사랑스러운 이름이네요. 그분들의 활동에 동의와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뜻이 어려운 한자어로 된 꽃 이름도 개명하면 어떨까요? 욕심일까요?
그런데 학자들은 계통분류를 하기도 합니다. 식물의 근연관계를 밝혀 거대한 진화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것이겠죠. 어떤 식물은 상위 개념이 되기도 하고 각 분류 항목의 대표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각각의 종은 현재까지의 진화의 최종 결과이며, 각각 동동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어떤 꽃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은 각 개인의 취향이기는 합니다만.
꽃은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녀들 스스로도 알고 있고 그렇게 진화했을 것입니다. 누구는 벌과 나비를 누구는 또 다른 곤충들을 유혹하면서요. 그런데 우리도 꽃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아마도 자연이 만든 황금분할과 색깔의 조화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꽃의 이름도 예쁘면 안 될까요? 꽃이라면 꽃 같은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아름다운 꽃에 대한 예의일 듯도 합니다.
어느 시인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몸짓들을 인식하고 그의 이름을 올바로 불어주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듯합니다. 아마도 그냥 그들이 아니고 특별한 이름의 그로 알게 된 듯합니다. 그렇게 관심을 주게 되어 그의 마음에도 꽃이 피듯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겠지요. 그렇다면 아름다운 꽃을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준다면 더 아름답게 다가올 듯도 합니다.
어느 봄날에 초록으로 변해가는 풀숲에는 작은 꽃들의 미소가 가득하네요. 우리들은 이렇게 봄을 맞고 있다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합니다. 파랗고 하얀 봄까치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살짝 내려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느끼며 활짝 웃고 있네요.
화사한 햇살을 받고 있는 쇠별꽃은 덥지도 않은지 활짝 웃고 있습니다. 그냥 별꽃이라 부르려고 했더니 별꽃은 따로 있군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별꽃도 보고 싶어 집니다.
어느 가을날에 본 가시모밀의 꽃봉오리가 앙증맞습니다. 잎은 노랗게 물들어가고 꽃은 몇 송이가 피고 있는데 왠지 얼른 여러 가지 색깔로 익어가는 씨앗이 보고 싶어 집니다.
꽃들은 다들 각자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르고 이름도 다르네요. 산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녀들에게 음악을 한곡 들려주고 싶어 집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을 들어봅니다. 어떤 생각이 깊어지며 산책자의 마음에도 점점 꽃이 피어나는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