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풀숲에서 작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맑은 미소와 낮은 호흡이 느껴집니다. 풀들은 마른 대지를 초록의 새순으로 뚫고 올라와 씩씩하게 자라 갑니다. 일 년 또는 몇 년 동안 살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듯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약간의 흙과 물과 햇빛이 있으면 살아갑니다. 이제 보니 풀숲 자체가 그녀들이네요.
그런데 누가 이 작은 생명들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그들도 이름이 있고 그들만의 삶이 있는 것을요. 농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은 대자연의 일부를 빌려 쓰는 사람들의 오만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풀들도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습니다. 그녀들의 일 년도 화려한 꽃을 피우고 커다란 열매를 맺는 다른 식물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녀들은 자연의 선택에 따라 작은 몸짓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또 누가 풀꽃을 시시하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녀들의 작은 꽃은 순수하고 또한 아름답습니다. 크고 화려한 꽃만을 꽃이라 부르는 것은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가녀린 몸집이지만, 그녀들은 기꺼이 초식동물의 먹이가 됩니다. 그녀들이 있어 생태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네요. 사람들에게도 먹거리가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느끼게도 해주고요. 그렇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찾아 부를 일인 듯합니다. 어쩌면 그녀들을 알아가는 것이 대자연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지난 몇 년간 봄에서 초여름까지 보았던 몇몇 풀꽃들을 다시 보며 새봄을 기다려 봅니다. 초록빛 생명이 자라나고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 말이지요.
초록의 수풀에서 하얀색 가운데에 노란 점이 있는 하늘색 꽃이 피어납니다. 여린 줄기를 따라 꽃이 피어 올라오는데 줄기 끝에는 연두색 꽃봉오리가 커가고 있습니다. 가까이 들여다본 꽃마리에서는 맑은 향기가 나는 듯합니다. 누군가 참 예쁜 이름으로 불러주었군요. 이곳저곳 수풀에서는 어디서든 볼 수 있어 언제나 눈길이 갑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풀숲에 얼치기완두의 연한 보라색 꽃이 피어있습니다. 작은 꽃잎에는 더 작은 빗방울이 맺혀있네요. 이리저리 마음대로 뻗어가는 가는 줄기의 초록 잎도 산뜻합니다. 그런데 왜 얼치기일까요? 사람의 입장에서는 먹을 만큼 큰 완두가 열리지 않나 보네요. 나뭇가지 사이로 봄날의 화사한 햇살이 들어오는 숲 속에는 이끼들이 가득합니다. 초록색 이끼들 위에는 노란 뱀딸기 꽃이 소담히 피어있습니다. 다가오는 햇살이 간지러운지 노란색 꽃이 활짝 웃는군요.
봄날의 부드러운 햇살이 풀밭에 가득합니다. 여러 식물들이 힘차게 호흡하며 광합성을 하고 있는데 하얀 쇠별꽃이 반짝입니다. 초록의 수풀 속에 하얀 별들이 있군요. 그런데 솜털이 보송한 꽃봉오리도 귀엽네요. 그런데 아직 갈색의 마른 잎이 남아있는 땅에서 풀들이 자라납니다. 하얀 꽃도 피어나고요. 하얀 꽃봉오리가 생긋 웃으며 활짝 피어나는 봄맞이꽃은 이름 그대로 봄을 맞이하고 있나 봅니다. 그런데 산책자에게도 환한 미소로 봄을 알려줍니다.
수풀에는 제법 큰 꽃도 피어납니다. 민들레 꽃은 노란빛이 퍼져 나오는 작은 별 같네요. 노란 꽃잎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안쪽의 꽃술은 진노랑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합니다. 이제 꽃이 홀씨가 되면 마치 초신성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가겠지요? 민들레 꽃 옆에는 꽃잎 가운데는 하얗고 바깥쪽은 파란색인 봄까치꽃이 피었습니다. 봄까치꽃은 한 겨울에도 조금 따뜻해지면 피어나더니 봄에도 활짝 피었네요. 늦가을에도 볼 수 있고요. 단 한번 피어날 뿐이니 각자가 원하는 계절에 피어나는 듯합니다.
봄날의 햇빛은 부드럽고 또 따뜻합니다. 초록이 붉어지는 잎 사이에 분홍색 꽃이 피어있습니다. 꽃 모양이 독특한데 이름이 광대나물인 것을 보니 바람이 불면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할 듯합니다. 봄소식을 알려주던 작은 냉이꽃은 벌써 씨앗이 되어가는군요. 영산홍이 활짝 핀 정원 앞에서 산들바람에 따라 조용한 몸놀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이 다가오는 마른땅에는 초록색이 많아지는데,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하얀 꽃이 올라옵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어있는 모습이 예쁘네요. 그런데 이름은 황새처럼 다리가 길어서 황새냉이일까요? 그러고 보니 황새를 닮은 듯도 합니다. 봄의 숨결 같은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언덕에는 노란 향기도 피어오릅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핀 꽃다지는 고개를 들어 어디를 바라보는 것일까요? 노란 꽃 안에 그리움을 담고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자주달개비의 길쭉한 잎 사이에 파란색 끝에 진한 자주색이 있는 길쭉한 꽃이 눈길을 끕니다. 자주괴불주머니는 꽤 욕심이 많은가 봅니다. 가는 줄기에 많은 꽃들이 사방으로 피어나네요. 노란 괭이밥 꽃은 눈이 부시지도 않는지 밝은 햇살을 가득 받고 있습니다. 작지만 화사한 모습이네요. 아마도 자매인 듯한 그녀들의 화사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합니다.
수풀 속에는 여러 작은 식물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주름잎도 있군요. 꽃은 안쪽은 하얗고 바깥쪽은 보라색인 작은 꽃이 노란 꽃술을 드러낸 채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꽃들이 지기도 하는군요. 뽀리뱅이의 노란 꽃이 초록의 꽃봉오리에서 피어납니다. 왠지 이름이 재미있네요. 그런데 작은 뽀리뱅이도 있고 키다리 뽀리뱅이도 있습니다. 거의 50~60센티가 넘어 보이는 큰 키를 자랑하기도 하는군요. 하지만 꽃은 똑같이 작고 노랗네요.
이곳저곳에서 오랫동안 노란 미소를 보여주던 씀바귀는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납니다. 완만한 포물선을 보여주며 사뿐하게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그녀들의 멋진 포즈를 한동안 바라보게 됩니다.
봄날에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있으니 음악도 듣고 싶어 집니다. 일단 음악을 한곡 듣고 나서 다시 꽃들을 보아야 할 듯합니다. 베토벤의 로맨스 2번을 율리아 피셔의 바이올린 연주로 들어봅니다. 봄날의 풀숲에서 부드러운 바람에 하늘거리는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생각해보며 아름다운 멜로디에 취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