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의 가을, 맑은 바람 속에 피어나는 생기

오늘은 산골마을을 걸어봅니다. 어느 산골의 가을 아침이 선선합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계곡을 따라 낮게 불어오는 바람에 서늘한 느낌마저 드는군요. 먼 산은 아직 초록이지만 길가의 나무들은 색깔이 달라지는 듯합니다. 이름 모를 나무의 구멍 난 잎새는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 가고, 밤나무 아래에는 툭툭 떨어진 밤송이가 갈색으로 변해있습니다.

초록의 색깔이 조금씩 변해가는 낮은 언덕의 풀숲에는 여기저기 작은 꽃들이 피어있네요. 어느 열매들은 붉게 익어가고요. 조용한 산골 마을의 가을은 계속해서 피어나는 꽃과 익어가는 열매들로 뭔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듭니다. 가을에도 여전히 생기 넘치는 산골마을의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봅니다. 

산기슭에 하얀 꽃들이 바람에 산들거리고 있습니다. 천천히 올라 바라보니 참취 꽃이 참 예쁘네요. 몇 장의 꽃잎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산뜻한 모습입니다. 어느 잎은 조금씩 노랗게 물들어가고 참취 꽃은 그윽한 느낌입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더라도 그렇게 곱게 피다 졌을 하얀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줍니다.      

     

검게 변해가는 구멍 난 잎새 아래에서 빨간 열매가 반짝이고 있습니다. 가막살나무의 열매가 어느새 붉게 익었군요. 햇빛이 없어도 빨간 열매에서는 빛이 납니다. 그런데 그녀들은 붉게 반짝이며 누구를 유혹하려는 것일까요?     

아직 초록이 산뜻한 풀숲에는 개여뀌의 자주색 꽃이 피어납니다. 작은 꽃봉오리가 하나 둘 터지며 분홍색 꽃이 됩니다. 작은 털별꽃아재비의 하얀 꽃들과 개여뀌의 자줏빛 꽃들이 어울려 피어있습니다. 아침 날씨는 선선하지만 부지런한 그녀들의 축제는 벌써 시작된 듯합니다.      

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시모밀의 꽃봉오리가 앙증맞습니다. 그렇게 몇 송이가 피고 있는데 왠지 얼른 여러 가지 색깔로 익어가는 씨앗이 보고 싶어 집니다. 길가에는 마치 중년의 신사 같은 갈대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마치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칼 같네요. 문득 겸손한 가을을 느껴봅니다.       

작은 개울물도 소리 없이 흐르는 조용한 산골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개울가 벼랑 위에 가는 줄기에 이름 모를 보랏빛 꽃이 살랑거립니다. 가을 햇살에 보랏빛이 번져 나오는 듯하네요. 친구에게 물어보니 꽃향유라고 하는군요. 오늘도 새로운 꽃을 보고 이름도 알게 됩니다.      

작은 계곡에는 빨갛게 익어가는 윤노리나무의 열매가 가득합니다.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빨간 열매들이 계곡물과 함께 나지막이 합창을 하는 듯합니다. 왠지 멋진 가을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 드는군요. 초록의 열매가 조금씩 노랗게 변해가던 지난 늦여름에 처음 보았는데, 벌써 이렇게 빨갛게 익어가네요. 이렇게 열매는 익어가고 가을은 깊어지나 봅니다.     

초록의 잎 사이에서 빨갛게 반짝이는 열매는 어떤 열정을 간직한 듯합니다. 먼 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떤 꿈을 꾸는 듯도 하고요.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싶은 것일까요? 길쭉한 모양의 커다란 잎새 아래의 옆모습은 마치 살짝 보조개가 들어간 미소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 미소를 바라보니 그저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아직 초록인 잎새 사이에서도, 가을 색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잎새 아래에서도 그녀들은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이렇게 붉게 반짝이며 이 가을을 더욱 빛나게 하려나 봅니다. 왠지 익어가는 것은 열매가 아니고 가을 같네요. 이제 가을은 점점 더 깊어지며 이곳저곳에서 온통 붉어지겠지요?      

산골마을의 아침은 맑은 공기와 피어나는 꽃의 향기 그리고 익어가는 열매들의 빛깔로 가득합니다. 조금씩 물들어가는 나뭇잎을 흔들며 계곡을 따라 낮게 내려오는 바람은 기분 좋을 정도로 선선하고요. 여름의 초록빛 생기가 가을의 울긋불긋한 활기로 바뀌는 느낌도 듭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쉽게 뜨거워지기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인데, 가을마다 매번 빨갛게 익어가는 열매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맑은 바람에 살랑이며 붉게 반짝이는 그녀들의 강렬한 유혹도 느껴봅니다. 왠지 새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먼 산 위에는 가을 햇살이 가득하고 산골마을에는 가을 느낌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꽃과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며 재닌 얀센의 연주로 듣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 가을 기분을 더해 줍니다. 계곡을 따라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바람에 날아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