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의 두 가지 풍경

날씨가 제법 포근합니다. 왠지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쪽에는 벌써 홍매가 피었다고 하는군요. 봄소식은 언제나처럼 남쪽에서부터 들려오나 봅니다. 그런데 그늘진 곳에는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햇살이 가득한 양지쪽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요. 군데군데 흰 눈이 쌓인 갈색의 풍경을 보게 됩니다.

파란 겨울 하늘에는 흰 구름이 흘러가고 그 아래에는 아직도 달려있는 붉디붉은 미국 낙상홍의 열매가 하늘거립니다. 한 겨울에 붉은 열매를 보니 더욱 따뜻한 기분이 듭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제법 많은 열매들이 남아있군요.      

아직 눈이 남아있는 바위틈에서 영산홍이 한가롭습니다. 초록과 갈색이 섞인 잎새가 흰 눈 위에서 가볍게 춤을 추는 듯합니다. 산뜻한 모습이네요. 그런데 가는 솜털이 나있는 초록 잎새의 가운데가 뭔가 붉네요. 안에서 꽃눈이 커가고 있는 것일까요?      

바위 앞의 낙상홍에는 아직 붉은 열매들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주름이 많아지고 흑갈색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왠지 씩씩한 느낌도 듭니다. 긴 가지 끝에서 그저 유유자적한 모습입니다. 잔주름에서 배어 나오는 잔잔한 미소를 바라보자니 산책자도 따라서 미소 짓게 됩니다.     

양지쪽의 붉은 낙상홍 열매들은 이 계절을 조금 더 따뜻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비록 몇 알 남지 않았지만 탄력 있는 붉은 미소만큼은 풍부하네요. 살짝 주름진 미소 또한 붉기만 합니다. 마른 가지마다 붉은 열매들이 하늘거리며 가벼운 율동을 보여줍니다. 춤이라도 추는 것일까요? 어느 가지의 두 알의 열매는 다정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조용한 겨울의 노래를 부르는 듯도 합니다. 부드럽고도 달콤한 그런 노래 말이지요.     

눈발이 세차게 날리던 며칠 전의 겨울 풍경을 다시 봅니다. 차가웠던 날씨지만 눈이 내려 상쾌하기도 했습니다. 긴 가지 끝에 달려있는 낙상홍의 붉은 열매에는 별 같은 눈꽃이 피어나는 듯합니다. 비록 주름이 졌지만 그녀의 뜨거운 미소에 눈은 녹아내리기도 하고요. 차갑지만 차갑지 않은 듯한 눈은 그녀의 머리에서 하얀 왕관이 되는군요.     

아직 초록빛이 남아있는 영산홍의 잎에 하얀 눈이 쌓입니다. 주변은 어둑하고 차갑지만 눈꽃은 점점 커져갑니다. 눈을 맞는 잎과 가지들은 날카로운 느낌마저 듭니다. 뭔가 알싸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도 하고요. 그런데 쌓여가는 흰 눈이 산책자에게는 포근한 느낌입니다. 어쩌면 이글루를 짓고 살아가던 이누이트족의 디엔에이가 산책자와도 닮았기 때문일까요?      

     

눈이 내리는 한 겨울은 차갑고 거친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이 계절에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눈이 쌓인 잎이 별 같기도 하고 눈사람이 허공에 큰 대자로 누워있는 듯도 합니다. 산책자도 쌓인 눈에 한번 누워볼까요? 작은 잎에 많은 눈이 쌓여갑니다. 그런데 또한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화살나무의 가는 가지 사이로 겨울 잠자리 한 마리가 눈을 맞으며 날아가는 듯합니다. 자세히 보니 화살나무 마른 열매껍질의 한가로운 율동이군요.       

겨울에는 찬바람도 불고 눈도 내리고 또 차가운 햇살이 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날씨에도 식물들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즐겁게 살아가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저 묵묵히 살아갈 뿐인데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고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를 들어봅니다.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곡이지만 오늘은 마음이 가라앉으며 침착해지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하얀 눈이 남아있는 맑고 투명한 겨울날에 듣기 때문인 듯합니다. 더구나 차가운 눈 속에서 새순이 돋으려 하고 아직 붉은 열매들이 남아있기도 한 겨울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