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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면토끼 Sep 03. 2024

빨갛고 빨간.

목욕



부엌문을 나와 끼고돌면 장독대 옆에는 폭이 깊고 길쭉한 대야가 뒤집어져 있었다.


빨갛고 빨간 타원형 대야.


어느 때에는 비를 맞고 개구리밥이 피어있거나, 어느 때에는 눈을 고스란히 담아 얼음이 얼어 있거나.


김장철에는 고춧가루를 담아내거나, 한겨울에는 뜨끈한 연기를 피워내거나.





엄마는 겨울에 땀을 더 많이 흘렸다.


몸으로 피워내는 땀방울.


좁은 부엌통로에서 대야를 놓고 물을 데워 한가득 목욕물을 받았다. 


여전히 연탄불 위에서 물이 끓고 있다.


대야에 채워진 뜨거운 물에 차가운 물을 휘휘 섞고 나면 엄마의 손은 체온계가 되어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부른다.


찬기운을 막아보고자 문지방의 문을 닫아도 소용이 없고, 삐걱거리는 부엌문은 찬바람을 향해 인사를 한다.


빨갛고 빨간 대야 목욕탕.


엄마가 만든 목욕탕은 부실하지만 온도는 어느 곳보다 뜨겁다.


엄마는 아이들을 찬바람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뜨겁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야에 우리 몸을 욱여넣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피부는 아이들의 투정소리와 함께 합창되어 찬바람을 물러가게 하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모두 그녀의 손으로 벗기고 씻기고 닦이고 입힌다.


걷어올린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뚝, 뚝 대야로 이마의 땀방울이 떨어지지 않도록.


차갑게 물이 식어 아이들이 울지 않도록.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우리들의 성장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좀 더 크자 더는 빨간 대야에 의지할 수 없게 되었고, 엄마와 우리들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타고 목욕탕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여름이 좋았다.


목욕이란 거창한 이름 대신 물을 끼얹기만 하면 되었다.


겨울은 싫었다.


묵힌 때는 또 하나의 옷이 되곤 했으니까.


미취학 아동은 보다 저렴하게 비용을 지불하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이마저도 나이를 속여 들어갔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순수하게 엄마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발걸음은 재촉하며.



옷을 벗으면 하얗게 각질이 일어나는 데 그 모습을 혹시라도 누군가의 시선을 멈추게 할까 봐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탈의실 구석에 옷장이 자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때의 모습은 검었다.


지우개로 연필을 지우면 하얗던 지우개는 까만 지우개 가루가 되었다.


열심히 공부한 흔적.


엄마가 밀어주는 내 몸에서 나오는 때도 열심히 일한 흔적 같았다.


그래서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때도 거뭇거뭇한 색을 지닌 줄 알았다.


그런데 힐긋 보이는 다른 분들은 깨끗한 때는 나를 또 창피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계속 밀었다.


언제 올지 모르니까.


빨갛고 빨간 부끄러움.


목욕탕의 열기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다행이었다.


목욕탕의 수증기가 부끄러움까지 감춰주진 못했다.


집에 돌아온 날에는 군데군데 다음날부터 딱지가 생겼다. 


딱지의 흔적만큼 강렬하게 남아있는 엄마얼굴에 달아오른 열기도 함께 남아있었다.


빨갛고 빨간 엄마의 얼굴.


엄마도 부끄러웠을 텐데.


엄마도 창피했을 텐데.


엄마는 속상했을 텐데.





우리들의 때를 벗겨주던 엄마는 엄마 자신의 고생은 벗겨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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