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퍼맨'의 가을

中年 中心

by 허니

올해 초 회사에서 퇴사한 연 이사는 재작년 말까지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동기 중에서는 가장 먼저 임원 자리에 올라 선 스타였습니다. 여러 경쟁회사에서도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자타 공인의 실력자, 슈퍼맨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중심이 되어 진행했던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는 1년이 지나도록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는 실패하면서 그가 모든 걸 책임져야 했고 결국은 ‘퇴사’라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여러 구인 광고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이력서를 전송하는 등 활발하게 구직활동을 진행했습니다. 퇴사 후 2개월은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요즈음 구직활동 대신 매일 저녁 성실하게 하는 게 생겼습니다.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시고 있는 겁니다. 과거 슈퍼맨이 아니라 '술퍼맨'으로 변신했습니다.


연 이사의 변신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까요? 이제 50 중반을 달리고 있는 연 이사의 가족은 직장에 다니는 부인과 대학원생인 아들 그리고 어머니 등 모두 4명입니다. 아들은 학교 근처에 혼자 나가 생활하고 있어 집에는 연 이사와 부인, 그리고 올해 80이 되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3년 전에 연 이사의 어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치매 초기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연 이사는 2-3년 사이 상태가 그렇게 변하리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예쁜 치매’라고 불리는 연 이사의 어머니는 복지관에서 하는 어학 프로그램에 열심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동료 수강들에게서 “어머니가 강의실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걸 들은 이후에 연 이사는 덜컥 겁이 났다고 합니다. 가족은 인생에 있어서 당혹스러운 부분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부모와 결별할 수도 없고 자식의 자리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 사이의 이러저러한 다툼은 그 어떤 다툼보다 가슴 아프고 해결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코로나 여파로 중단되었던 복지관 프로그램이 2년 반 만에 재개되었지만 연 이사의 어머니는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위험성 때문에 외부활동을 하지 못하고 허리도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몸은 쇠약해졌습니다. 연 이사의 어머니는 모든 게 의존적이 되었고 당신 혼자 할 수 있는 건 혼자 용변 보는 것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답니다.


연 이사는 기억이 점점 소멸해 가는 어머니가 측은하다고 생각도 들다가도 매일 같이 하루 한 두 번 정도는 어머니와 언쟁을 한답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복용하는 것도 종종 잊어버리는 어머니와 그걸 챙기려는 아들 간의 ‘작은 전쟁’부터 시작해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대는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아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걸 연 이사는 참지 못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어쩔 줄 몰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 이사는 자신도 이렇게 "깜박깜박"하면서 인생을 살까 봐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저럴 수 있겠다”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머니 모습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기로 했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동안의 성(聖)스런 생각뿐이라고 합니다. 그런 풍요로운 마음도 순간순간의 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답니다. 그러다 보니 술이 친구기 되어 버린 셈이죠.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치매’라는 질환이 어머니를 통한 현실을 체험하는 연 이사의 가족은 허리가 불편해진 어머니가 점차 거동이 힘들어지자 짜증이 더 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살뜰하게 시어머니를 챙겨 왔던 부인도 연 이사와 같이 정서적 시련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연 이사의 누이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 1주일 정도를 지내기도 하지만 그것도 '가끔씩' 하는 행사라 사실 연 이사의 상황은 썩 개선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연 이사의 고민은 늘어갑니다. 나뭇잎은 하나 둘 땅 위로 떨어지는 계절, 문득 연 이사의 가을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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