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지금은 ‘팀’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회사의 직제를 보면 실(室), 부(部), 과(課) 등등 지금과는 좀 다르게 부르고 있을 때였으니 제법 오래전입니다. 회사는 한창 매출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기본 틀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늘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회사는 그때까지 ‘매출’을 최고의 선(善)으로 여길 만큼 모두들 영업부서를 우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 그들이 회사의 명운을 좌지우지(左之右之) 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업 부서 외에는 모두 외인부대 같았습니다.
기획실을 만들기는 했으나 영업기획 같은 것이야 영업부서에서 할 것이고 어찌하다 보면 기획실 자체가 유명무실 해 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담당 임원이 호출합니다. 회사의 발전 방안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기계획도 좋지만 3년 내 가능한 목표들을 설정해 보라는 지시였습니다.
영업부서 직원보다는 일반 관리부서 직원의 이직률이 높았고 그만큼 회사에 대한 불만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기획실 직원들 모두들 참가했는데 그냥 ‘A4 한 장과 펜’만을 갖고 빙 둘러앉아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도록 헸습니다. 주재하는 직원도 ‘대리급’이 하도록 했습니다. 모두들 놀랐습니다.
마침 담당 임원이 지나가다 그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탁자에 빙 둘러앉아 그냥 웃고 떠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직원들은 커피 한잔 하면서 그냥 얘기들을 합니다. 분명 문 밖에는 ‘회의 중’이라는 표시가 있어 회의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모두들 잡담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밖에서 들릴 정도였답니다. 저녁에 담당 임원에게 불려 가서 “뭣들 하는 거냐?” 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꼭 일주일 만에 회사의 중차대한 ‘발전 계획안’을 제출했습니다. 지난 ‘회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상급자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일방적으로 하는 지시, 그리고 하급직원들은 받아 적기에 바쁜 일반적인 회의 문화를 탈피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선 기획실을 ‘신선함’과 ‘다양함’을 추구하면서 운영하는 것을 방침으로 한 나름의 생각들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담당 임원은 흡족한 얼굴이었습니다.
담당 임원에게 보고한 후 며칠 후에 임원들과 사장의 미팅 자리에 호출되어 보고했던 내용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지금이야 그 단계들이 대폭 줄어들거나 필요 없는지는 몰라도 그때는 그런 프로세스를 밟고 있다는 것은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긍정 시그널’이었습니다. 기획실 직원 모두가 기대가 컸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주니어 보드(Junior Board)’라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많은 회사에서 '청년 중역 회의’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만 당시에는 일종의 회사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자는 것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운영하는 주체는 회사의 각 부서원 중 1-3년 차 직원으로 구성한다는 것과 그 운영내용에 대한 보고는 직접 사장에게 한다’는 것이 골자(骨子)였습니다.
지금은 흔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부서장들이 반발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뭘 알아”라는 걱정과 “회사 꼴 잘 돌아간다”는 비아냥이 함께 쏟아집니다.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나 그 활동을 이해 못 하는 여러 부서의 구성원들과 정말 많은 시간 설득도 하고 이해도 시키면서 1년 동안 이 제도를 추진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했습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신입직원들이나 2년 3년 차 직원들의 시야는 ‘풋풋함’ 그 자체이고 또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야에서 본 회사 내부의 문제 상황들을 찾아내고 점검하고 또 개선 방안들을 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소요 경비를 지출할 수 있게 제도적인 지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서서히 성과를 내기 시작한 TF 활동은 결국 매년 구성원이 바뀌면서도 ‘상설화’되면서 성공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창의적이고 훌륭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마련하는 것이 간부들의 몫이라 생각했습니다.
해오던 일을 매일 같은 패턴대로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열정이 식는 시간이 빨리 올 수도 있습니다. 보다 창의적이고 신나는 조직 문화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선 다음에는 소신을 갖고 일을 해 나갔습니다. 결국 새로운 눈으로 여러 상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그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관점을 달리 했다는 데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보거나 생각한다는 것이겠죠. 지금까지의 획일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조금은 수평적이면서도 직장 구성원에게 참여의식과 더 나아가 주인(主人) 정신을 고취시킨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기존의 활동들에 새롭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보다 창의적인 정신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했다는 면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지금 그때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뿌듯함이 있기는 합니다만 한편 지금 그 열정이나 관점이 살아있기는 한지 궁금합니다. 도로 위에 낙엽이 구르는 모습이 제법 많이 보입니다. 그 시간을 같이 구르고 있는 중년의 계절이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