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장’ 당하는 중년

中年 中心

by 허니

함 차장을 만나기로 한 사무실에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미팅을 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을 한참 지나서도 나타나지도 않은 함 차장을 궁금증을 안고 기다렸습니다. 보통 약속을 하고 만난 퇴직자들의 일반적인 특징 중 하나가 화가 난 듯한 얼굴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귀찮다는 표정입니다. 하물며 컨설턴트와의 약속 따위는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결국 첫날은 미팅을 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가까스로 연락을 한 후, 미팅 장소에 나타난 함 차장은 한눈에도 ‘나는 실직자’라고 할 만큼 초췌한 얼굴이었습니다. 간단히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앉은 그에게 커피 한 잔 하면서 권하면서 물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그냥 있습니다”

“혹시 이력서 준비한 거 있습니까?'

“없는데요”

“준비하셔야죠”

“네. 천천히 하지요”

“이력서 완성본이 언제까지 준비되겠습니까”

“사실 지금 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취업은 하셔야죠”

“언제고 해야죠”

“그럼 서류는 작성하는 게 우선일 것 같거든요”

“지금 당장 재취업 생각은 없는데요”


함 차장은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당당히 대기업에 들어가 집안의 자랑이었던 그가 풀이 죽어 있습니다. 계속되는 질문에 마지못해 대답하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컨설턴트도 숨이 막혔습니다.

함 차장은 호기롭게 시작한 직장생활이 자신의 뜻대로 착착 진행되는 같아 재미도 있었고 때가 되면 승진도 하는 기쁨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결혼하여 중 1 된 딸아이가 있습니다. 이 땅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17 년이라는 회사생활을 마감했습니다.


회사를 위해서는 밤과 낮이 없었습니다. 해외 출장도 숱하게 다녀왔고 관계 회사와의 회식 자리는 물론이고, 동료 직원들과 야근하고 난 후 한 잔…이런 것들이 그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회사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회사에는 실적이 좋지 않은 팀들은 통폐합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2년 전부터 진행해 왔던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에 있었으나 그때까지 잘 나가던 함 차장 팀은 별 성과가 없었던 터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답니다. 회사에서는 이 프로젝트에 회사 명운을 건다고 했습니다. 함 차장은 그 프로젝트에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부장 승진을 앞두고 있는 함 차장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타 부서 부서장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았던 실력파 함 차장의 퇴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외의 사건으로 회자되었답니다. 퇴사 후 잠시 사무실에 들른 함 차장은 자신이 사용했던 책상에 후배가 득의양양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씁쓸한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날 송별회를 해준다는 회사의 ‘배려’를 뿌리치고 ‘잠수’를 탔다고 합니다.


“회사가 미웠습니다. 17년을 충성스럽게 다녔던 회사였는데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많이 아껴주고 밀어주었던 부서의 후배들, 그리고 나를 신뢰하고 아껴주던 부장님, 임원들 모두에게 ‘그때뿐이야’ 하는 생각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함 차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운함과 아쉬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어쩌다 잠을 자면 자꾸 계곡 속 어딘가로 들어가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생각과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생각만 든다고 합니다. ‘명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에 배신감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컨설턴트가 만나자고 하니 “왜 만나자는 건지 귀찮았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생각 때문에 약속은 했지만 거절의 의미로 미팅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랍니다. 함 차장과의 첫 미팅은 참 어려웠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는데 대답이 없거나 시큰둥한 표정, 함 차장 본인도 그렇지만 마주 앉은 사람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며칠 후 함 차장이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나 좀 내버려 두세요. 제발” 그걸로 함 차장과는 미팅이 없었습니다. 참 아쉬운 시간이었습니다. 변변한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좋은 계절, 가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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