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혹 여행을 계획한다면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 무엇인지? 여행을 혼자 가는 타입이 아니라면 분명 이때의 파트너가 누구인지 궁금해집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의 파트너는 ‘~끼리’로 다양 해졌습니다. 부부, 부자, 부녀, 모녀, 모자, 애인, 친구, 그리고 아주 간혹 사제지간 여행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물론 가족끼리 여행하는 경우는 일상이 됐습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일하는 틈틈이 아내와 휴가기간을 잘 맞춰서 여행을 하고는 했습니다. 나라안의 곳곳을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다녔습니다. 직접 차를 갖고 여행을 할 때에는 아내가 옆에 앉아 국도나 고속도로 할 것 없이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해외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썩 재미가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보유했던 마일리지를 털어 17박 18일짜리 유럽여행 프로그램을 짜서 둘이서 ‘뚜벅이’ 여행도 했습니다. 아주 흥미로웠고 많이도 걸었습니다.
보통 여행을 하면 같이 지내는 동안 동행하는 파트너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인내심이 강한 지 혹은 사치심이 있는지 등등 아주 단순한 것들부터 해서 그 체크리스트가 다양합니다. 물론 부부끼리는 이미 그러한 체크사항 정도는 넘어선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즐거워야 할 여행지에서 가끔씩 화도 내고 말도 하지 않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식의 다양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특히나 중년기에 있는 부부의 여행은 그 스토리가 비슷하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함이 있어 그 추억의 장(場)은 아름다웠을 것이라 추측도 해 봅니다.
책을 보면 보통 여자들이 이러한 타입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 아내는 ‘과정 지향형’입니다. 제 아내는 여행지에 도착하면 무엇을 볼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리고 쇼핑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미 가기 전에 그곳에 가면 어떤 색상의 옷이 사진에 잘 나오는지를 가늠해서 옷을 입는 센스는 기본입니다. 그리고 먼저 다녀갔던 여행자들의 스토리를 모두 머리에 입력합니다. 그야말로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사야 할 것들 등등 그 많은 정보가 머리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현장에서의 뜻하지 않은 정보라 할지라도 아주 빠르게 접수하고 또 적응합니다. 물론 이 정보는 아내에게 아주 유익한 정보입니다. 이는 아내에게 ‘멈춤’과 ‘탐색’을 명(命)하고 그리고 때로는 ‘지름신’을 영접하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참 기특한 것은, 지갑이 얇은 여행자의 애달픔이 있기는 했지만 도통 ‘지름신’에 당하지 않는 기개(氣槪)가 있어 다행입니다. 이때 아내가 사랑스럽습니다.
한편, 남자들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주변 포토존을 중심으로 몇 번 정도 사진을 찍고는 다음 행선지를 파트너에게 물어보는 ‘결과 지향형' 혹은 '목적 지향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일어나곤 합니다. 아주 근사한 곳에 가서는 말다툼을 하거나 혹 묵언수행하듯이 다음 행선지로 가는 모습은 사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정말 아내에게는 참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특히나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간 여행지에서의 이러한 에피소드는 아직도 ‘부부여행 주의사항 1호’입니다.
국내여행은 소규모로 운영되는 일종의 ‘여행클럽’ 형태의 버스 투어를 많이 이용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밤에 떠나는 무박 2일 여행 경우에는 밤에 출발해서 목적지에 보통 새벽에 도착합니다. 새벽에 그곳에서 일출을 보면서 일정을 시작합니다. 보통 모녀 지간이나 부자 지간 그리고 친구끼리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많아야 30명 내외로 여행팀이 꾸려지며 점심은 현지에서 맛있다고 하는 ‘맛집’을 갑니다. 물론 새벽 일찍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도 있는데 그 일정의 진행도 비슷합니다.
숲길을 호젓하게 걷기도 하고 해변가를 보며 시원한 느낌도 가져보고 특히나 옆에 아내가 있어 좋았습니다. ‘같이’ 하고 있다는 것에 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편백나무 숲길을 걸어갈 때는 나무의 향(香)은 저희 부부에게 은총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여행 클럽에서의 제 ID는 ‘한상 쫙-‘이었습니다. 항상 ‘맛집’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의미랍니다. 정기적으로 여행을 하다 보니 몇몇 사람들은 제법 눈인사 정도는 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은 산채정식 ‘한상 쫙-‘받았습니다. 아내와 같이 먹는 건 아주 맛있습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음식은 뭐든 다 맛있다”는 자신의 ‘믿음 말씀’을 연신 던지면서 잘 먹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적당히 먹고는 물러서는데 저희는 그런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 그릇 저 그릇 싹싹 비워가는 재미와 그 맛은 다음 목적지가 험지(險地)라도 용서가 됩니다.
그날은 여행팀의 리더가 저희 부부를 기다리는 분위기인 것 같아 한 마디 했습니다. 혹시 ‘박학다식(博學多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리더를 포함해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박학다식은 저희 부부를 두고 하는 말이지요, 박사와 학사는 많이 먹는다는 뜻입니다” 모두들 뒤집어졌습니다. 굳이 한자로 만들어 보자면 博學多食이 되겠군요. 아무튼 여행지에서 서로가 일치하는 것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확장하면 할수록 여행의 즐거움과 동행하는 사람과의 공유(共有)하는 행복감은 더할 나위 없이 배가(倍加)된다는 건 그야말로 진리입니다.
간혹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시간의 흐름과 추억이 교차되고는 합니다. 사진은 확실히 추억의 바다를 걷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유적지 앞에서의 포즈, 자연의 풍광에 취한 얼굴들…. 참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그 배경에 아내가 있어 더 좋았습니다.
혼자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매년 맞는 가을이 매번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가을이 깊어 갑니다. 혹 시간이 되시면 훌쩍 떠나보면 어떨까요? 물론 그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同行)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