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숙취로 고생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배는 이미 작은 바가지 하나를 얹어놓은 듯 나와있고 머리도 듬성듬성 빠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불뚝 부장’이라고 불린 지 오래다. “제발 운동 좀 하라”는 부인의 말에 시간이 없다며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고 하지 않았다. 연일 실적과 싸움을 하고 돌아온다.
경쟁 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이라도 출시되면 팀은 또 ‘비상’이다. “대응책을 내놔라”는 임원의 눈빛은 지옥에라도 끌고 갈듯하다. 팀원들을 독려하면서 야근, 회식이 많다 보니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부부관계도 예전만 못하고 점점 자신감이 떨어진다. 늘 빠릿빠릿하던 그가 언젠가부터 시원찮다. 곧 업무 평정이 시작된다. 동기보다 부장 승진이 늦었었다. 몸이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한다는 건 ‘만용’이었고 ‘사치’였다.
정 부장이 수영장에 다닌다. 40대 후반부터 시작했으니 보통 수영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것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그였지만 물가는 위험하다며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수영장 가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나이가 되었음에도 물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수영을 시작했다. 새벽 여섯 시에 시작하는 강습시간에 맞추려면 다섯 시에는 일어나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를 2개월 정도 하다 보니 자신의 몸이 물에 뜨고 심지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신세계였다.
기초반에서 중급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강습이 없는 날은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까지도 수영장에 갔다. 조금씩 수영실력이 늘어가면서 재미가 붙었고 같은 그룹의 동료들과도 안면도 트고 가끔 토요일 저녁 술 한잔 하는 사이가 되었다. 수영 관련한 동영상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나게 얘기하는 그들은 정 부장과 비슷한 나이에 여러 부분이 닮아 있어 좋았다.
사실 정 부장은 수영을 시작하면서는 물에 떠 있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이 초급반에서 중급반에 올라가서는 재미로 바꾸었다. 처음 서너 달은 잠이 부족해서 회사에서 가끔 졸기도 했지만 정 부장은 수영 예찬론자가 되었다.. 부인의 성화에 떠밀려 시작한 운동이지만 체중도 조금씩 줄어들어 나름 뿌듯함도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에게 “수영이 최고”라고 했었다.
그러나 정 부장의 이러한 성실함과 지속성은 상급반에 올라간 지 2개월 만에 깨졌다. 보통 상급반부터는 제법 하드 트레이닝을 시킨다. 적게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간혹 정 부장 또래가 있기는 하나 모두들 빠르다. 정 부장이 점차 체력적인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가뜩이나 젊은 친구들에게 밀리고 있던 터라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그래, 수영 선수할 것도 아닌데 오늘은 쉬자” 하면서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슬슬 정 부장의 수영은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했다. 수영이 경쟁으로, 의무로 변한 것이다. 수영이 힘들다는 생각뿐이다. 즐거움이 사라졌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의 마음은 딱히 어디까지, 어느 레벨 같은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건강을 위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한 달 두 달 해보니 기량이 향상되고, 새로운 반에 편성되고 또 다른 스타일의 코치를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전날 먹은 술기운이 빠져나가는듯해서 좋았다.
정 부장은 지금까지 잘해왔다. 스포츠 능력이 탁월하거나 더더욱 수영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줄곧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는 빠르게 상급 레벨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슬슬 경쟁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했고 상급반에 가면서부터는 남보다 먼저,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정 부장은 물속에서도 경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앞선 사람을 추월하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혹여 뒤에 오는 사람의 손이 발 끝에라도 닿을라 치면 더욱 조금증이 난다. 그런데 젊은 친구들과의 체력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다 보니 난감했다. 점차 수영할 맛이 없어졌다.
다시 중급반에 내려온 정 부장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중급반 코치가 물속에서 터닝하는 동작을 하란다. 물속에서 풀장 벽면을 차고 나아가는 동작은 가끔 TV에서 보기는 했다. 코치는 물 위에 떠 있는 플라스틱 라인을 가리키며 “몸을 구부리고 이 선(線)을 넘으면서 몸을 뒤집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두렵다. 몇 번이고 해 봤는데 잘 되지 않는다. 코치가 정 부장을 보고 있다. 불쑥 “저희 어머니가 남자는 선(線)을 함부로 넘지 말라고 했는데…”. 주변에 있는 회원들 모두가 한 바탕 웃었다.
인생이라는 큰 장(場)에는 목표와 도전 그리고 앞섬과 처짐이 있다. 실적과 목표를 향한 조직에서의 생활은 처음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튀어나올 때의 그 숨 막힘과 느낌이 같은지도 모를 일이다. 다양하고 다변화되고 있는 이 시대는 더욱 치열함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중년은 직진형(直進型)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글라서는 사람에게는 5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 ‘생존의 욕구’, ‘힘의 욕구’, ‘소속, 사랑의 욕구’, ’ 즐거움의 욕구’, ‘자유에 대한 욕구’가 그것이다 중년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지금껏 자신의 여러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말대로 ‘본캐’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활기 있게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재미있거나 취미로 할 수 있는 ‘부캐’ 활동이 중요하다. 그것에는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나?
정 부장은 가끔씩 수영이 지겹거나 힘들 때면 풀장 바닥에 발을 내려 그 깊이가 만만한지를 가늠한다. '멈춤', 그리고는 물 위에 길게 늘어서 있는 선(線)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단다. 즐겁지 않고 자유롭지 않은 중년을 보듬는 그만의 의식이란다.